앨범 이미지
The eraser
톰 요크(Thom Yorke)
2006

by 임진모

2006.06.01

정성하 적어도 < Kid A > 이후 라디오헤드(Radiohead)의 음악적 방향타는 톰 요크였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무한 반복되는 단순하지만 불안한 피아노 샘플과 앰비언트(Ambient)를 연상시키는 몽환적인 전자음의 잔향과 비트에서는 톰 요크의 복잡암울한 정신세계가 반영되어 있는 것 같다. 후반부에는 무그(Moog) 샘플과 함께 템포를 빠르게 하였지만, 일관된 ‘침울한 평화’가 반전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곡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는 톰 요크의 답답한 읊조림과 음산함마저 느껴지는 찌릿한 백 보컬이다. 특유의 폭발력을 드러내지 않고 참은 것은 다소 아쉽기도 하지만. 내심 생각해왔던, 톰 요크 개인에 대한 지독히 개인적인 이미지와 오성에 정확히 들어맞는 ‘톰 요크 시그니처 송(Signature song)’.


윤지훈 < Kid A > 이후 라디오헤드의 음악적 실권자가 누구였는지 확답을 주는 노래이다. 혹시라도 라디오헤드의 초기 록 음악을 기대했다면 대 실망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는 기대치를 충족시켜준다. 음악적으로 급격한 전환을 이룬 후에 팬덤과 비평의 양극화를 가져왔음에도 꿋꿋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만을 고수하는 것만큼은 박수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멜로디와 전자음, 둘 중에 그가 가장 잘 하는 것이 무언지 판단하는 건, 그가 아닌 타인의 몫이다.


이대화 솔로 앨범 속에서도 < Kid A > 이후의 수수께끼, 혹은 파라노이아 같았던 분위기는 여전하다. 약에 취한 듯 가라앉게 만드는 불길한 화음의 반복,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비트, 노래의 범주를 벗어난 원초적인 중얼거림, 코러스라기보다는 커튼처럼 드리우는 공간감 있는 신음 소리. 모든 것이 라디오헤드 후반기의 음악과 닮았다. 사운드의 실험도 여전하다. 초반부터 곡을 지배하는 건반 소리는 샘플링한 음향을 퍼즐처럼 조각내어 리듬에 맞게 잘라 붙여 넣은 듯이 들린다. 실연과의 인연을 끊고, 전적으로 스튜디오의 음향 편집으로만 침잠한 모습이 예전 그대로다.


< Kid A > 이후의 앨범이 워낙 임팩트가 강했던 탓에, 이젠 별로 놀랍진 않다. 오히려 좀 더 상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실험을 기대했으나, 이젠 음향과 사운드에 관한 실험은 어느 정도 멈춘 듯하다. 너무 독하고 컴컴해서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잘 음미해보면 은근히 서정적이기도 한 곡이다. 특히, 후반부에 보이는 리듬의 반전은 아주 매력적이다.


소승근 라디오헤드의 후반기 음악보단 쉬워진 것 같지만 대중음악이라고 하기엔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창조하는 음악은 여전히 “내 편만 들어”라고 강하게 고집을 피운다. 확실히 톰 요크는 아직까지는 자의식 강한 자신만의 음악을 탐미하는데 더 많은 열정과 노력을 바치고 싶어 한다. 그의 이러한 태도가 향후 20년 후에 어떻게 평가될지 정말 궁금하다.


김두완


-메모-

# 피의자 직업 : 뮤지션 (O) / 록커 (X)

# 도발 조짐 시기 : < Kid A >

# < Kid A >~ < Hail To The Thief > 주동자 여부 : 매우 다분하나 공모자들 단독 범행 사례가 없어 정확한 판단 불가.

# 도발 사유 : 단순 본능.

# 재발 가능성 : 단순 본능.

# 사용 도구 : 기계

# 최근 관심사 : 기계

# 장래 희망 : 진정한 ‘라디오헤드’


윤석진 톰 요크가 제시한 21세기 형 프로그레시브 록. 기본적으로 라디오 헤드 시절의 앨범 < Kid A >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으나, 보다 신랄하고 비타협적인 실험정신이 농축돼있다. 마케팅 지향, 기획 화된 그룹들이 난무하는 록 계에 이런 작가 정신이 존재하는 것이 놀랍고 반갑다.

임진모(jjinmoo@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