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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스트라이크
신인류
2025

by 정기엽

2025.04.10

따뜻한 햇살이 감싸안는 계절감이 일렁인다. 듣는 동안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흙먼지 속 운동회가, 초목의 그림자에 파묻힌 시집 속 활자가, 내달리는 버스에서 목격한 아스팔트 경계 사이 꽃 등이 떠오른다. 가사에 애를 쓰는 뮤지션의 음악에서 묻어나는 다정함 덕분에 생기는 잔상일 터. < 빛나는 스트라이크 >는 최고가 아니어서 박수받지 못하고, 최악이 아니기에 위로받지 못하는 모두를 위한 응원가 모음집이다.


오프닝부터 다 겪어야만 진가를 드러내기에 2번 트랙부터 재생하기 꺼려지는 부류의 음반이 있다. < 빛나는 스트라이크 >가 그렇다. 1분 내외 ‘Intro: 빛나는 스트라이크’의 웅장한 선율이 갑자기 자전거 핸들 꺾듯 방향을 바꾸는 연주가 ‘리턴 투 피크닉’의 후주에 다시 반복될 때의 아름다움은 순차적으로 들을 때만 느끼게 된다. 비관적인 상대에게 위안을 주는 노래처럼 먹구름 같은 기타 잔향이 산뜻한 신시사이저로 바뀌는 순간은 메시지를 음악에 순조롭게 이식한 결과다. 건넨 위로가 통했음을 대사 없이 자연스레 들려주는 장치인 셈이다.


일본 1970-80년대 퓨전 재즈 혹은 시티 팝의 부드러운 질감을 수용한 ‘미완성 효과’와 행진곡스러운 시작이 야기하는 예상 범주를 구간마다 탈피하면서도 조화를 품는 ‘이상하고 아름다운’은 사랑 노래로 앨범의 청량한 기조를 잇는다. 그 중앙부 희망의 청각화 같은 ‘Huf’와 ‘정면돌파’로 명장면을 맞이할 때까지 고공행진은 끊임없다. 전자의 아웃트로 기타와 후자의 신시사이저 리듬은 응원가의 정석처럼 느껴진다. 잊고 있던 생의 찬란한 구석을 용맹함으로 다듬는다.


앞선 트랙의 기운을 이어 괴물로 여겨지는 이들에게서 귀여운 면을 보는 시선을 장난스럽게 각인하는 ‘Kaibutsu’의 신나는 에너지는 ‘두 개의 제안’의 도입까지 이어지다가 차분함을 택한다. 급격한 분위기 반전보다 완곡한 절제로 청자를 떨구며 언제 저무는지 모를 해처럼 자연스럽게 스산한 온도를 자리 잡는다. 신인류의 잔잔한 전작들을 좋아했던 이들에게 익숙한 색깔을 꺼내면서도 앨범의 화사한 톤을 유지했다. ‘송곳니’의 도입에 동화 같은 매력이 덧씌워지는 전개는 좋은 예시다. 건반과 현악기가 견고한 미학을 지킨다.


29세에 바치는 찬가 ‘일인칭 관찰자 시점’까지, 전체에 두루 풍성한 편곡과 디테일한 질감 표현이 지속되며 첫 정규 앨범인 만큼 노력한 흔적이 여실히 귀로 와닿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 < 괴물 > 등 직접적으로도, 여러 곡에서 간접적으로도 레퍼런스가 느껴지지만 감상을 해친다기보다 20대 청춘의 메들리로 새겨졌다. 신인류가 자신들이 듣고 본 경험을 통해 희망이 남 일 같던 몽상가들에게 선물한 이야기에는 삼진 아웃도 웃어넘길 낙관의 잔류가 흐른다.


-수록곡-

1. Intro: 빛나는 스트라이크

2. 리턴 투 피크닉 [추천]

3. 미완성 효과

4. 이상하고 아름다운

5. Huf [추천]

6. 정면돌파 [추천]

7. Kaibutsu

8. 두 개의 제안

9. 용이 되고 싶은 아이

10. 송곳니 [추천]

11. 일인칭 관찰자 시점 [추천]

정기엽(gy24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