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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섬
9와 숫자들
2014

by 이기선

2015.01.01

9와 숫자들은 여러모로 화려하지만 또 정갈하다. '커튼콜'에서 익살맞게 울리는 신디사이저가 9(송재경)의 보컬을 만날 때 숨을 한 번 죽이고, 범생이처럼 얌전한 듯하나 이곳저곳 넓게 퍼져있는 음악의 스펙트럼이 단정한 가사를 만나 다시 한 번 걸음을 땅에 묻는다. 사회라는 지옥으로 발을 옮겨가는 청춘을 위한 송가가 울려 퍼지고 그 곡의 제목 또한 'job to do'가 아닌 '잡 투 두'가 되는 곳. 9와 숫자들은 이렇게 다시 본연의 감정과 기질을 조용히 눌러 담았다.

노래하는 목소리와 가사 전달에서 9와 숫자들이 기존의 밴드와 선을 그었듯 이번 앨범도 면면에서 빛나는 부분이 눈에 띈다. 전작 < 유예 >에서 그랬던 것처럼 젊은 청춘의 상실과 혹은 그런 개인사의 안타까움을 전하는 곡들이 많지만 막상 노래 가사에 그리 집중해 듣지 않는다면 쉽게 오해할 부분이 많다. 그만큼 9의 노래는 절대 흥분하지 않고 그저 상황을 처연히 읊조릴 뿐이다. 곡을 재생할 때 먼저 들어와 꽂히는 신디사이저나 기타의 멜로디 라인에만 맘을 빼앗겼다면 서글프고 거친 속내를 놓치기 쉽다.

전작에서 감명을 받았다면 그 감흥을 연장할 수 있을 트랙이 즐비하다. 특유의 멜로디 라인을 살리고 있는 '실버 라인'이나 '숨바꼭질'은 9와 숫자들의 장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정적으로 시작해서 층을 겹겹이 쌓아올린 뒤 절정을 이끌어내는 '잡 투 두'는 앨범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노래임과 동시에 < 유예 >의 '착한 거짓말들'과 같은 마무리를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하나의 연상 작용을 일으킬 것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이미지를 소박한 연애사로 치환하는 '한강의 기적' 역시 인상적이다.

< 보물섬 >은 여러모로 밴드의 넓어진 외연을 보여주지만 그만큼 변화에 취약한 그늘 또한 노출한다. 앞서 세 차례 선공개곡을 공개하며 신보에 대한 가닥을 보여주던 시기에도 특별히 이전과의 차별점은 잡히지 않았다. 이들이 이야기를 서술하는 방식이나 사운드를 운용하는 방식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점하는 것은 사실이나 이러한 특징들이 결국에는 이전 이들이 걸어온 궤적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이다. 계속 손을 찌르던 날카로운 압정이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은 아닐까 괜한 걱정이 든다.

-수록곡-
1. 보물섬
2. 실버 라인
3. 숨바꼭질 [추천]
4. 깍쟁이
5. 높은 마음
6. 잡 투 두 [추천]
7. 커튼콜 [추천]
8. 초코바
9. 톱니바퀴
10. 한강의 기적 [추천]
11. 겨울 독수리
12. 창세기 [추천]
13. 북극성
이기선(tomatoapp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