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마부 그의 이름은 여러 가지였다. 이십대의 그는 수많은 예명을 만들고 지우면서 부모님이 주신 이름을 다 찢어버리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방황과 분노가 조금은 사위어지고 오랜 외출을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순간, 조금은 어색하지만 낯익은 사내, 백현진이 서있다.
어어부프르젝트는 1997년에 데뷔해 총 3장의 앨범을 냈다. '실험'이라는 두 단어로 인디씬에서 전설이 된 그들은 때로는 키치가 난립하고 부조리에 대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복잡다단한 모습으로 전개되었다. 반면 자신의 이름 석 자로 돌아온 솔로곡은 잔잔하고 아름다운 서정성까지 엿보인다. 장영규와 함께 한 그룹 활동이 온갖 색이 낭자하는 유화였다면, 기타와 피아노 그리고 간헐적인 비트로 이루어진 솔로앨범은 깨끗한 수묵화다. 탐 웨이츠(Tom Waits)가 연상되는 가래끼고 다듬어지지 않은 저음은 더욱 남성적인 기개를 담아 굵은 선을 그어간다.
그의 노래는 참 사적이고 개인적이다. 특히 사랑노래들은 이별 후 그의 경험에서 튀어 나와 구체적인 상황을 선명하게 그려낸다. 음악의 속도는 줄었지만 그의 특기인 아방가르드한 실험성은 여전히 번뜩인다. '목구멍'의 양의 울음소리를 내거나 (라이브에서 그는 정말 진지한 표정으로 양울음소리를 흉내 내곤 한다) '어떤 냄새'에서 “가스 기기”를 진지하게 절규한다. 자살을 앞둔 '어른용 사탕'의 심각한 상황 속에도 울지도 웃지도 못할 기묘한 설정이 이어진다.
정제되지 않는 멜로디와 보컬은 때로는 음악보다는 텍스트와 내통하고 있다. 특히 '아구탕에서 나온 네 명'은 탑골공원 근처에서 외국남자가 한국남자와 뽀뽀를 하다가 린치를 당한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하고 있는데, 이 곡에서 음악은 극적효과 외에는 별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9분을 훌쩍 넘는 긴 러닝 타임 속에서 그는 이야기 전달에 치중한다.
백현진의 가사는 메시지를 억지로 우겨 넣어, 함부로 계몽하거나 설득하지 않는다. 다만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 하면서 그 상황을 설명한다. 이는 마치 문학의 간접경험과 비슷하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간에 그의 음악은 자신의 이야기만을 재생시킨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상황이나 과정에 따라 갖가지의 이야기와 경험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것이 그의 음악이 비어있으면서도 가득 차고, 남의 이야기면서도 내 삶의 조각이 되는 연유다.
-수록곡-
1. 무릎베개 [추천]
2. 학수고대했던 날 [추천]
3. 목구멍 [추천]
4. 어머니 검도 교실
5. 닉의 고향
6. 깨진 코
7. 어떤 냄새 [추천]
8. 여름 바람 [추천]
9. 눈물 닦은 눈물
10. 보험 회사 대중탕
11. 어른용 사탕 [추천]
12. 아구탕에서 나온 네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