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Motown : A Journey Through Hitsville USA
보이즈 투 멘(Boyz II Men)
2007

by 한동윤

2007.12.01

한편으로는 안타까움의 연속이었다. 환상의 하모니로 90년대로부터 최고의 중창 그룹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필라델피아의 청년들은 새천년에 들어서면서부터 급격하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새 앨범을 발표해도, 여전히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는데도 평단과 팬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들을 붙어다닌 수식을 달가워하지 않던 누군가가 부린 심술이었다면 차라리 맘은 한결 편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결과를 유발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는데, 하나는 데뷔작과 두 번째 앨범이 워낙에 강한 에너지를 내보였기에 청취자들의 기대치가 그에 맞춰 자연스럽게 높아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21세기 흑인 음악 문법이 멜로디보다는 리듬을 중심에 두면서 제아무리 노래를 잘하고 유려한 선율을 뽐내던 그들이라도 대중의 선택에서는 다음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을 꼽을 수 있다. 내적 요인이 되는 전자보다 외적 요인인 후자는 편곡 방향과 콘셉트를 최근 유행하는 음악에 맞게 잡으면 금방이라도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 문제다. 그러나 보이즈 투 멘은 불황의 늪에서 헤어 나오려고 트렌드에 영합하지 않았다. 기계로 만든 현란한 사운드가 아닌 사람의 목소리로 앨범의 내용을 채웠다. 여전히 그들은 가장 원초적 악기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낸다고 믿는 것 같다.

여기에서도 세 멤버의 사근사근한 목소리와 그것이 합쳐져 완성하는 화음은 단연 일품이다. 특히, < Full Circle > 이후, 4년 만인 작년에 온전한 신작이라 할 수 있는 < The Remedy >를 선보였지만 일본에서만 발매된 것이기에 새로운 노래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어느 때보다 컸을 것이다. 여기서 왜 신곡을 담은 것이 아닌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어차피 전 세계적으로 음반 시장의 불황이 계속되는 마당에 옛 노래들을 리메이크함으로써 구매층을 넓혀보자는 건 고릿적 판단이요, 푼돈 벌이도 안 되는 장사가 아닌가. 이들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다. 그런 정황을 봤을 때, 이 앨범은 한때 남성 보컬 그룹 시대를 주도했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에 가까울 것이다. 옛날처럼 포근한 음악을 들려주자는….

최근의 자극적이고 어지럽기만 한 노래들. 처음엔 귀에 잘 들어오는 듯하며 누구나 어렵지 않게 차트 정상을 훑지만 몇 번 들으면 기억에서 사라지고 말 인스턴트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전은 다르다. 언제 들어도 온기가 스민다. 지난날의 명곡을 통해서 꾸밈과 충격적 소재만 넘쳐나는 이 시대를 돌아보자는 의미, 모든 악기를 사람이 직접 연주하고 보이즈 투 멘 특유의 화음을 앞세운 것은 아날로그적 기조를 담은 잔잔하고 나지막한 의견 표출이다.

타이틀에서 말해주고 있듯이 그들이 재해석한 음악은 모타운의 히트곡에 제한을 두었다. 리듬 앤 블루스의 대중화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레이블인데다 필라델피아 출신이지만 모타운 음악을 좋아해 그곳과 계약을 맺고 활동했듯 자신들에게 원동력이 되어준 그 시절의 노래와 뮤지션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다.

앨범의 총감독은 많은 스타 가수를 배출한 TV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들(American Idol)>의 심사위원인 랜디 잭슨(Randy Jackson)이 맡았다. 방송에서는 몇몇 참가자들에게 '어쩌다 보니 기회나 잘 잡은 사람'이라든가 '히트작이라곤 하나 없는 프로듀서'라는 빈축을 사기도 하지만 오랜 기간 밴드와 세션으로 활동을 해왔기에 각 악기와 소리를 잘 이해하고, 조율할 줄 아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그의 능력 덕에 각 곡에서는 올드 소울이 지닌 분위기와 감성이 깔끔하게 재현되고 있으며 악기들의 질감을 헤침 없이 잘 다져진 소리를 낸다. 뭉뚱그려지거나 어느 하나만 툭 솟아난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전체적으로 고른 배합을 갖췄다.

포 탑스(The Four Tops)가 부르고 모타운을 이끌던 프로듀싱 팀 홀랜드 도지어 홀랜드(Holland-Dozier-Holland)가 작곡한 'It's the same old song / Reach out I'll be there'는 오리지널의 펑키한 맛을 제대로 살렸다. 앞 곡에 비하면 템포가 조금 달리는 'Reach out I'll be there'이지만 통통 튀는 기운을 사그라뜨리지 않고 잘 연결하고 있다. 'Easy'는 아카펠라 화음을 중점에 두었는데, 원곡에서는 그냥 저음으로 단출하게 깔리던 후렴의 코러스가 이들의 버전에서는 무척이나 밝아졌다. 옅긴 해도 은은한 아취가 있어 그 화사함에 가사처럼 일요일 아침이 연상된다.

이 외에도 차분함과 서정미가 돋보이는 드바지(Debarge)의 'All this love'와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노래를 리메이크한 'Ribbon in the sky'는 성탄절과 연말을 앞둔 요즘 분위기에 무척이나 잘 어울릴 듯하며, 패티 라벨(Patti LaBelle)과 호흡을 맞추는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은 베테랑 보컬리스트들의 깔끔한 실력이 금세 듣는 이들의 귀를 사로잡을 것 같다.

전체적인 완성도는 지난 2004년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 Throwback, Vol. 1 >보다 한층 견고하다. 기껏해야 'You make me feel brand new'나 'Let it whip' 정도가 팬들의 호감을 샀을 뿐, 나머지 곡들에서는 그리 좋은 품질을 담보하지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이번은 확실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전에 대한 고찰, 랜디 잭슨의 군더더기 없는 사운드 조리 능력,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세 멤버의 선려한 음성이 강한 흡인력을 과시한다. 보이즈 투 멘에게만큼은 영원할 것만 같았던 21세기의 인색함이 갑자기 누그러졌나보다고 생각할 수 없는 근거가 여기에 있다.

-수록곡-
1. Just my imagination (Running away with me)
2. It's the same old song / Reach out I'll be there
3. Mercy mercy me (The ecology)
4. The tracks of my tears
5. Money (That's what I want)
6. Easy
7. I was made to love her
8. All this love
9. Ribbon in the sky (Acapella)
10. Ain't nothing like the real thing (feat. Patti LaBelle)
11. There'll never be
12. Got to be there
13. War
14. End of the road (feat. Brian McKnight)
한동윤(bionicsou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