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폭동 속에 울려 퍼진 '레이디 소울'
1967년 여름은 '사랑의 여름'으로 결부되지만 디트로이트 흑인폭동으로 얼룩진 '비극의 여름'이기도 했다. 그해 7월 자동차공업도시 디트로이트에서는 분노한 흑인들과 정부군이 대치하는 살벌한 내전상태가 야기되었다.
이 경천동지의 사태는 급진적 흑인운동을 폭발시킨 계기를 제공했고 흑인음악의 주류를 사회의식으로 무장된 '소울'로 변화시켜 놓았다. 사회개혁 및 반전운동 물결이 거세지면서 록음악이 정치성을 띠었듯 흑인의 리듬 앤 블루스도 강성(强性)의 소울로 바뀌게 된 것이었다.
뉴욕 할렘(64년), 로스엔젤레스 와츠(65년)에 이은 디트로이트의 흑인폭동에 때맞춰 소울은 '블랙 파워'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백인들도 비록 흑인의 것이었지만 강한 자극을 전달하는 소울 음악을 애청하기 시작했다. 67년 백인지배의 미국사회는 갑자기 흑인 소울의 광풍이 휘몰아쳤다.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 바로 '소울의 미국사회 공습'을 가한 선두주자였다. 오티스 레딩,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 샘 앤드 데이브(Sam and Dave) 등도 이 시기에 각광받은 소울 스타였지만, 대중적 호응에 있어서는 아레사 프랭클린을 따를 수 없었다. 그녀는 '소울의 여왕'(Queen Of Soul)과 '레이디 소울'(Lady Soul)이라는 영예로운 칭호의 주인공이었다.
아레사 프랭클린은 67년 백인들에게 흑인들에 대한 존경을 요구했다. 그래서 부른 '존경'(Respect)은 오티스 레딩이 두 해 전 부른 것이었으나 그녀에게 '해석'이 넘어오면서 디트로이트 사태와 맞물려 의미가 배가되었다. 이 곡은 디트로이트의 빈민가가 화염에 불타오르면서 성난 흑인시위대의 찬가로까지 불렸고 결국 빌보드 싱글차트 정상에 등극했다.
이 해 아레사는 이 곡말고도 '널 사랑하는 만큼 한 남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어'(I never loved a man the way I love you), '당신을 사랑해'(Baby I love you),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You make me feel like a natural woman) 등 총 4곡을 싱글차트 톱 10에 진입시켰다. 이로써 그녀는 백인들에게 소울의 대변자로 이미지를 굳혔으며 68년 초 디트로이트 시장 제롬 카바나는 '아레사 프랭클린의 날'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 음반은 기념비적인 67년 히트작들을 비롯해 아레사 프랭클린이 74년까지 어틀랜틱 레코드사에서 발표한 황금의 레퍼터리를 모아놓은 앨범이다. 그녀의 전성기를 수놓은 소울의 걸작들을 접할 수 있으며 '소울의 다이너마이트'라는 또 하나의 별명만큼 폭발적인 그녀의 가창력을 확인할 수 있다.
콜롬비아 레코드사에 소속되어 있다가 실적을 올리지 못한 후 어틀랜틱사로 이적한 67년부터 그녀는 히트곡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경쾌한 리듬으로 98년 디바들의 라이브 공연에서 그녀가 불러 다시 인구에 회자된 곡 '여러 바보들'(Chain of fools)과 '생각해봐'(Think) 그리고 '난 작은 기도를 드려요'(I say a little prayer)는 68년의 발표 곡들이다. 당시 차트 4위에 오른 '생각해봐'는 아레사가 직접 가사를 쓴 곡으로 특히 노래 중 그녀가 '자유'를 목놓아 외치는 순간은 듣는 이로 하여금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정신을 풀어헤쳐 자유로와지라... 자유 자유를 갖자. 자유 자유 지금 당장 자유를 달라.
'스페니시 할렘'(Spanish harlem)은 벤 이 킹(Ben E King)의 60년 오리지널로 아레사가 리메이크하여 71년 차트 2위까지 올랐으며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다. '록 스테디'(Rock steady)도 같은 해 발표되어 9위에 올랐던 곡이다. 이 곡은 또한 아레사가 작사 작곡한 노래로 남의 것만 불러 히트시키는 가수라는 이미지를 불식시켰다.
아레사의 전매특허는 말할 것도 없이 아무도 따를 수 없는 경이적인 가창력이다. 그의 노래는 가스펠에 기초한 생동감으로부터 샘솟는 것이었다. 음의 높낮이 템포 호흡 등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면서도 깊은 가스펠의 필(feel)을 유지하는 능력은 도무지 사람이 하는 것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완벽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다. 나중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매니저가 된 당시의 평론가 존 랜도는 후일 『롤링 스톤』지에 “그녀는 다채로운 무드 템포 언어 스타일을 포괄할 수 있음을 입증했으며 더구나 그것의 최고 수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썼다.
그녀가 얼마나 노래를 잘했는가를 말해주는 67년 '널 사랑하는 만큼 한 남자를 결코 사랑하지 않았어'를 취입할 때의 에피소드가 있다. 피아노 앞에 앉아 울부짖기 시작하며 시작된 2시간의 세션에서 기타의 댄 펜과 드럼의 로이 호킨스 등 연주자들은 그녀의 보컬 카리스마에 그만 넋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들은 녹음이 끝난 뒤 “우리가 이런 환상적인 레코딩에 참여한 것 자체가 영광이며 기쁨”이라며 어울려 춤을 추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이미 부른 곡을 리바이벌해 철저히 자기 것으로 만든 데서 그녀의 특장점인 '곡 해석력'이 나타난다. 오티스 레딩의 곡 '존경'과 벤 이 킹의 '스페니시 할렘'이 그 증거다. 오티스 레딩이 아레사가 '존경'을 부른 것을 듣고는 경악한 나머지 “난 내 곡을 잃어버렸어. 저 여자가 내 곡을 빼앗아갔어”라며 허탈해 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90년대 말의 디바 셀린 디온이 리메이크한 '넌 날 자연스런 여자로 느끼게 해'는 캐롤 킹과 제리 고핀 컴비의 작품으로 다시 한번 그녀의 경계선 없는 무한한 음역과 숨죽이는 보컬 파워를 확인해주는 걸작이다. 셀린 디온이 굳이 이 곡을 택한 이유는 아마 '최고'에 도전해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레사는 증명한다. 잘 만들어진 악보보다 잘 부르는 가수가 위대하다는 것을. 즉 노래의 최종적인 해석자는 다름아닌 가수라는 사실을. 이 점을 인정하는『타임』지는 아레사를 금세기의 문화예술인 20인 중 한 사람으로 뽑았고 영국의『모조』지는 음악관계자의 설문을 통해 압도적인 차이로 그녀를 '사상 최고의 가수'로 선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