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Songs In Red And Gray
수잔 베가(Suzanne Vega)
2001

by 고영탁

2001.10.01

지난 2장의 앨범에서 전자음, 인더스트리얼 등 사운드 실험을 거쳤던 수잔 베가. 그러나 이 앨범은 그 두 작품과는 달리 예전의 단순했던 포크 록으로 회기한 작품이다. 물 흐르듯 부드러운 어쿠스틱 사운드가 지배적이어서 평온한 포크 음악을 만끽할 수 있다. 말하자면 '옛 팬들과의 조우'를 희망하는 앨범?

사실 이런 변화는 예고된 거였다. 앨범 녹음 전 베가는 이미 자신의 프로듀서이자 남편이던 미첼 프룸과 결별한 상태였고, 이번 앨범을 위해서는 어쿠스틱 사운드를 잘 매만지는 루퍼트 하인(Rupert Hine)을 프로듀서로 영입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별에 따른 상심은 어쩔 수 없이 노랫말에 상당 부분 반영되어 내적으로 침잠하는 곡들이 눈에 많이 띈다. '혼자 하는 카드놀이(Solitaire)', '헤어진 여자의 산책(Widow's walk)' 같은 곡 제목만 보더라도 그녀의 감정 상태를 짐작할 수 있다.

그중 'Soap and water'는 헤어짐이라는 삶의 비의(悲意)를 담담히 읊조린다.

"비누와 물은 내 손에서 그 날을 지운다. 고통스런 내 피부에서 소금을 씻어간다. … 비누와 물은 내 인생에서 그 해를 깨끗이 없애버린다. 우리가 감정을 짓밟고 눈물 흘린 모든 것을 정리해라. 우리가 남편과 아내라고 불렀던 그 베인 상처를 치유해라."

단연 베스트 트랙이자 역시 어쿠스틱 사운드와 수잔 베가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빛을 발하는 'Songs in red and gray'에서는 딸과 만나면서도 자신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전 남편을 향해 "내가 그 실을 끊었나요? 아니면 당신이 끊었나요? … 내가 결코 부르지 못할 이름이었나요? 아니면 내가 보이지 조차 않나요?"라며 실연의 상처를 숨기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컬의 미세함과 어쿠스틱 사운드를 극대화시킨 이 앨범은 '이별'에 관한 하나의 거대한 몽타주다. 몸과 마음 그리고 음악이 하나가 된 정말 빼어난 작품이다. 수잔 베가는 개인적인 슬픔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지금 상실감에 허덕이고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음반으로 마음의 위안을 삼을 만 하다. 과연 이별이나 아픔은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는 또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긍정적인' 역할도 하는 듯.

-수록곡-
1. Penitent
2. Widow's Walk
3. [I'll Never Be] Your Maggie May
4. It Makes Me Wonder
5. Soap And Water
6. Songs In Red And Gray
7. Last Year's Troubles
8. Priscilla
9. If I Were A Weapon
10. Harbor Song
11. Machine Ballerina
12. Solitaire
13. St.Clare
고영탁(taakiz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