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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 Bad Memories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
2026

by 박승민

2026.11.01

새삼스럽지만 애벌랜치스는 더 이상 < Since I Left You >같은 작품을 만들 수 없다. 수십 년간 낡은 판을 뒤적이며 샘플을 발굴해 온 멤버 로비 채터는 < Wildflower >를 계기로 기존 창작관의 한계를 실감하고 방대한 양의 수집품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단 한 장의 음반으로, 하루 동안, 하나의 곡을 작업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러한 선회와 더불어 데뷔 이래 26년의 세월을 거쳐 점점 팝에 가깝게 작법을 바꾸면서도 흐릿한 과거를 향한 애착이라는 정신만은 여전하다. 다만 특정한 시점을 회고하기보다 소리를 다루는 태도 자체에서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전작들과 다르게 이번에는 모두가 낙관에 차 있었던 자신들의 청춘으로 현대인을 끌어당긴다. 그것도 애틋한 미소를 한껏 머금은 채.


커버 아트의 플로피 디스크와 아이팟이 곧 시대적 좌표와도 같다. 1980년대에서 2000년대 초까지 당대 시기마다 유행했던 스타일은 지금의 음향과 뒤엉켜 반짝인다. 소울 장르의 원곡을 통통 튀는 프렌치 하우스로 비튼 ‘I give everything I have 2 u’와 제이미 엑스엑스의 < In Waves >에 먼저 실었던 짤막한 버전을 완성한 누 디스코 ‘Every single weekend’가 대표적이다. 친숙한 사운드로 정공법을 취하는 와중 ‘Like clockwork / Hit by traffic’ 속 저지 클럽 리듬이나 ‘Far away’의 드럼 앤 베이스를 불쑥 들이밀며 계속해서 허를 찌른다. 지난 두 앨범에 도사렸던 사이키델릭의 기운을 몰아내고 가득 채운 즐거움. 누군가는 열화로 간주할 변화지만 노스탤지어와 유치함을 절묘히 조화시켜 온 애벌랜치스기에 끝내 그 애정 어린 시선에 함께 웃음 짓게 된다.


허나 이들은 감상자가 정취에 젖도록 순순히 내버려 두지 않는다. 곳곳에 배치된 TV 광고와 고전 게임 효과음이 연거푸 눈앞을 스치며 잔상을 남기는 가운데 과거와 현재가 한데 뒤섞인다. ‘Together’에서는 영원을 노래하는 합창과 흘러간 나날에 눈물짓는 가사 사이 도시바 시그널을 넣는가 하면 돌연 나타난 기계음이 클리닝 테이프를 돌리듯 앞선 곡의 흔적을 지운다. 그간 인터루드로 트랙을 연결하는 방식을 애용해 왔음에도 한층 과감하게 느껴지는 시도다. 자칫 잘못했다간 흐름을 끊고 말 부산함이 각별히 다가오는 까닭은 이면에 겹겹이 포개진 소리에 있다. 각각 글리치와 리듬 패턴을 담당한 전자음악가 이케다 료지와 카디자 알 하나피가 다채로운 질감을 빚어낸 주역이다. 감성적인 넘버 틈에서 완급을 조절하는 풋워크 ‘SUV heaven’과 어릴 적 부모님 몰래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던 밤을 되살리는 ‘Unicorn Quest™’ 등 주된 정서를 공유하는 조각들을 모아 음반 단위의 큼지막한 콜라주를 구현했다.


이 세상에서는 전날의 애벌랜치스 역시 향수의 재료가 된다. 1집의 플런더포닉스가 ‘No bad memories’로, 힙합을 중심 삼았던 2집이 ‘Vida’로, 유독 애상적이었던 3집은 ‘All the time in the world’로. 보컬 피처링의 비중을 < We Will Always Love You >보다 줄이면서도 모든 게스트가 제 몫을 다한 덕에 인상적인 장면이 또렷이 새겨진다. 반세기 넘게 신시사이저를 다뤄 온 선구자 수잔 치아니의 육성에 따라 차곡차곡 쌓은 감정을 터뜨리는 ‘Our love is alive’도 그렇다. 음악을 처음 접하고 음계를 흥얼거리던 동심으로 돌아가 ‘도레미파솔라시도’를 외워 본다. 여러 시간대를 부산하게 오간 끝에 도착한 시작점이다. 그러나 결국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법. 각성의 역할을 맡은 ‘Final credits’를 지나 호소노 하루오미의 오르골을 닮은 음색으로 마음을 감싸안는 ‘The pavement light’가 더없이 포근하다. 떠나간 시절에 보내는 러브레터.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을 만지작대던 유년기를 떠올린다.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채널을 마구 헤집던 기억이 머릿속을 스친다. 세대와 장소는 다를지언정 만든 이와 듣는 이의 추억이 맞닿는 경험이다. 오래전 하얗게 바랜 사진에 다시 색을 입히는 과정이 31개의 기록으로 새겨졌다. 물론 이들이 회상하는 그 무렵에도 당연히 슬픔은 존재했다. 내레이션으로 참여한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가 아역 배우로 누렸던 영광을 잃어버리고 방황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 No Bad Memories >. 모난 파편이 닳아 둥근 조약돌이 되듯 세 역사가의 손에서 한때의 흔적은 참으로 낭만적이고 온순한 형태로 빛을 발한다. 기술의 발전이 실수할 기회조차 앗아가는 오늘날, 애벌랜치스는 서툴고 부족한 동시에 사랑스러웠던 지난날로 우리를 인도한다.


-수록곡-

1. Bd-R

2. Together (Feat. Nikki Nair, Jessy Lanza & Prentiss) [추천]

3. Xerox Altalink B8055 (Feat. Ryoji Ikeda)

4. I give everything I have 2 u (Feat. Loaded Honey)

5. Every single weekend (Feat. Jamie xx) [추천]

6. Friends forever

7. Blue shadows (Feat. Karen O)

8. Logoland

9. Like clockwork / Hit by traffic (Feat. Khadija Al Hanafi)

10. All the time in the world (Feat. Rivers Cuomo, Vegyn & Baby Marlboro) [추천]

11. 3D glasses not included

12. Vida (Feat. Erick the Architect) [추천]

13. Paradise island (Feat. Khadija Al Hanafi & Mike Patton)

14. Unicorn Quest™ (Feat. Ryoji Ikeda)

15. Far away (Feat. John Glacier & Khadija Al Hanafi)

16. He lives in the old world [추천]

17. Can’t get over losing you (Feat. Portraits Of Tracy) [추천]

18. Watch out! It’s cloudy (Feat. Khadija Al Hanafi)

19. Highfield (Feat. Panda Bear)

20. EL Dorado TV spot (Feat. Haley Joel Osment)

21. Under yr power [추천]

22. SUV heaven (Feat. Khadija Al Hanafi)

23. One more fantasy (Feat. Carly Simon) [추천]

24. Break out corporate tag (Feat. Ryoji Ikeda & Portraits Of Tracy)

25. Magic wand (Feat. Barry Can’t Swim) 

26. Superfun!™ TV spot (Feat. Mike Patton & Haley Joel Osment)

27. No bad memories [추천]

28. Our love is alive (Feat. Suzanne Ciani & Barry Can’t Swim) [추천]

29. Total recall (Feat. Mike Patton)

30. Final credits (Feat. Loaded Honey) [Loaded Honey Version]

31. The pavements light (Feat. Haruomi Hosono)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