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n Colour >의 무지개가 흑백의 음파로 변해 한데 모였다. 전작이 제이미 엑스엑스의 넓은 스펙트럼을 그대로 펼쳐낸 결과물이었다면 < In Waves >가 만들어내는 물결은 사뭇 다르다. 앨범 제작과 투어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았던 지난 9년은 그에게 오랜 고민의 시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보다 플로어 친화적인 형태로 발현된 고뇌는 2024년 전자음악 트렌드를 가로지르며 끝없는 곡선의 궤적을 남긴다.
각종 소스를 절묘하게 이어 붙이는 감각이 여전한 한편 출처에서 음반의 방향이 엿보인다. 메인 루프 위에 로빈(Robyn)의 피처링과 하우스의 요소를 접붙인 ‘Life’, 보컬 샘플의 피치를 조절하며 개러지 드럼과 발맞추는 ‘Treat each other right’는 모두 1970년대 펑크(Funk)/소울의 사운드를 빌려와 탄생했다. 브라스의 탁월한 사용이 돋보이는 킬링 트랙 ‘Baddy on the floor’ 역시 1981년 발매된 케니 버크(Keni Burke)의 ‘Let somebody love you’ 인트로를 제이미 엑스엑스 식으로 재해석하고 디스코 황금기에 뿌리를 둔 DJ 허니 디종(Honey Dijon)이 힘을 보탠 결과물이다.
플런더포닉스의 대가 애벌랜치스(The Avalanches)가 가세한 후반부의 두 트랙은 이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오래된 소리를 매만지는지 알 수 있게끔 한다. 모여 춤추자며 최면을 거는 'All you children'과 < We Will Always Love You >를 연상케 하는 따뜻한 합창의 ‘Every single weekend (Interlude)'는 동일한 보컬 찹(Chop)을 공유하지만 그 성질이 판이하다. 단순한 활용을 피해 먼지 쌓인 레코드에서 세심하게 샘플을 골라내고 덧붙이는 솜씨다.
이러한 과거로의 회귀는 단순 답습이 아닌 영국의 초기 나이트클럽 신을 기리는 의미를 지닌다. 그가 구현한 그 시절의 무대는 ‘Stranger in a room', ‘Loud places'에서 내비쳤던 불안과 외로움이 사라진 무한 긍정의 공간이다. 각 곡에 우울한 목소리를 보탰던 디 엑스엑스(The xx) 멤버들마저 ‘Waited all night'에선 항상 이런 순간을 기다려 왔노라고 노래한다. 자칫 교조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Treat each other right’ 속 사랑과 평등의 메시지조차 훌륭한 완성도로 인해 납득 가능해진다.
전작의 ‘Gosh’를 비롯한 트랙들에서 지적되었던 단점은 하나의 아이디어를 길게 늘이는 과정에서 구성이 헐거워진다는 것이었다. 6분 길이의 ‘Breather’는 종전의 비판을 단숨에 불식한다. 고압적인 베이스라인과 리듬 패턴을 자유자재로 변주하는 손길 아래서 어느 공간이든 레이브의 현장으로 변모시키는 제이미 엑스엑스의 마법이 발현된다. 작은 스테이지 위의 댄서와 광대한 지구를 병치하며 댄스 문화의 가치를 역설(力說)하는 엔딩 ‘Falling together’까지 그의 청사진은 줄곧 굳고 우직하다.
선택과 집중이 만든 성공이다. 넘쳐나는 창의성을 한 길에 응집하자 긴 공백기는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 되었다. 솔로 활동 초반부터 ‘All under one roof raving’ 등의 싱글에서 드러냈던 지난날의 클럽을 향한 동경이 드디어 결실을 맺은 모양새다. 형형색색의 물감이 가득한 팔레트를 내려놓고 단색의 파동을 쏘아 보냈으니,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굴절로 몸을 들썩일 수밖에.
-수록곡-
1. Wanna
2. Treat each other right [추천]
3. Waited all night (Feat. Romy & Oliver Sim)
4. Baddy on the floor (Feat. Honey Dijon) [추천]
5. Dafodil (Feat. Kelsey Lu & John Glacier & Panda Bear)
6. Still summer
7. Life (Feat. Robyn) [추천]
8. The feeling I get from you
9. Breather [추천]
10. All you children (Feat. The Avalanches) [추천]
11. Every single weekend (Interlude)
12. Falling together (Feat. Oona Doherty)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