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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조각
장기하
2026

by 신동규

2026.10.17

새 음악을 만드는 데 있어 노랫말과 선율 중 무엇을 먼저 써 내릴지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무언갈 떠올린 뒤 이를 듣는 매체로 구현한다는 점, 뮤직비디오 등으로 대표되는 시각 요소는 대체로 작업 말미에 둔다는 사실이다. 주는 언제나 음악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 전제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그 사이 순서는 달라져도 좋다. 얼굴들 명의로 낸 최후의 음반도 어언 십 년을 향해 가는 시점 속 일인 음악가 장기하의 첫 정규작은 이의 증명이다. 정돈된 생각을 한 편의 시에 담고, 동명의 무성영화로 그린 다음, 이에 맞추어 소리를 조각한다. 그의 가창 스타일에 대중이 가진 굳은 생각을 뒤로 하고 방식을 비틀어 형식의 단조로움을 타파한 기지가 빛난다.


장기하의 이름 앞에는 여전히 ‘독보적’, ‘개성’, ‘재치’ 따위의 단어가 줄을 서지만, 그가 가진 힘은 이러한 수식으로 쉽게 대체할 수 있는 밀착된 문장에 있다. 2008년 ‘싸구려 커피’가 안긴 충격은 여전히 상징적이고, ‘그 때 그 노래’의 담담함이나 ‘그건 니 생각이고’의 통쾌함은 물론 최근 ‘부럽지가 않어’가 전한 간결의 미학은 그룹 활동 이후로 그를 처음 만난 세대에게까지 신선함을 선물했다. 결국 핵심은 가사인 셈이다. 우리네 생활상을 덧대지 않고 그대로 읊으면서도 본인만의 인생철학을 담아내는 것. 어렵지 않게, 잘난 척 없이. < 산산조각 > 또한 마찬가지로, 첫 번째 정규 앨범인 만큼 작품 단위로의 음반 미학마저 유려하게 엮어낸다.


직접 연주한 전기 기타로 명확한 지점에서 반전을 주며 기선 제압에 성공한 ‘말도 안 되는 얘기’의 전개와 < 공중부양 >의 미니멀리즘 사운드를 잇는 ‘나만 그런 걸까 봐’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한순간에 몽땅’의 변칙은 작품에 극적 요소를 더한다. 무거움을 덜기 위해 노력한 초입이 익숙한 맛을 뽐낸 구간이었다면, 머리 곡 ‘너나 나나’를 기점으로 한 후반부는 각 곡의 첫 도입부터 반복되는 후렴구까지 장기하 표 진중하고도 익살스러운 노랫말의 진수와 같다. 음악성 또한 이쪽이 월등한데, 동일한 절정을 맞이한 ‘나뭇잎이었네’와 ‘해, 해, 해, 해, 해였네’는 작업의 시작이 하나의 시에서 시작되었음을 다시금 일깨우는 한편 클래식 구성을 적극 활용하여 작품의 첫 곡과 대칭인 마지막 노래의 여운을 부각한다.


십수 년간 캐릭터를 쌓아 올려 왔음에도 특유의 창법과 직관성 탓에 발전을 논할 땐 유난히 박수 소리가 적었던 지난날이었다. 장기하의 음악은 언제나 똑같다고 혀를 차며 그저 재미난 가수 정도로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살이 다 겪어본 듯한 애늙은이의 낱말도 어느새 성숙과 진실의 외투를 입어 뒤따른 청춘들의 지침이 되었고, 밴드 시절부터 전자음에 기댄 오늘날까지 소리의 변화 또한 인디 신의 다양성을 제고하기 충분했다. 그렇게 베테랑이 된 그가 앨범에 앞서 일인이역의 연기와 영화 제작이라는 어려운 길을 택한 일은 그래서 가치있다. 혹자는 무모하다 할지라도 시장에는 다양한 방향의 화살표가 떠다녀야 한다. 그의 말마따나 그저 하고 싶어서 한 걸 테지만, 대중음악을 바라보는 작금의 획일된 시선에 독특한 경험이 하나 던진 것만으로도 박수를 보낸다.


-수록곡-

1. 산산조각

2. 말도 안 되는 얘기 [추천]

3. 나만 그런 걸까 봐

4. 한순간에 몽땅 [추천]

5. 내 건데

6. 너나 나나 [추천]

7. 나뭇잎이었네 [추천]

8. 해, 해, 해, 해, 해였네 [추천]

9. 자야 돼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