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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lvet Summer
레드벨벳(Red Velvet)
2026

by 이재훈

2026.09.26

레드와 벨벳의 경계가 긍정적으로 허물어진 최초의 사례다. 서로 다른 둘의 공존은 오랫동안 레드벨벳의 숙원 사업이었다. 레드의 요소 중 단순한 후렴을 수용한 최초의 레드-벨벳 곡 ‘피카부’는 세련된 비트로 인해 자연스럽게 벨벳으로 분류되었다. 정규마다 각 콘셉트를 정의하는 관습에 따라 세 번째에는 레드-벨벳을 공식적으로 정의하려 했지만 ‘Chill kill’에서는 제대로 섞지 못했고 이후 ‘Cosmic’은 시도에 의의를 둘 수밖에 없었다. 2년 만에 돌아온 레드벨벳은 이전의 시행착오가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 실패를 극복했다. 


꾸준한 시도의 결실이다. ‘Surfin' boy’의 적절한 리듬 활용 방식은 하루아침에 나오지 않았다. 레드벨벳은 데뷔곡 ‘행복’이나 저스틴 비버의 ‘Sorry’를 빼닮은 ‘Some love’처럼 꾸준히 뎀 보우 리듬을 탐구했다. 그간의 연구는 ‘Surfin' boy’를 박자감 하나에 의존하지 않는 방향으로 이끌었다. 존재감이나 안무를 각인시키기 위해 혹은 보컬을 가리기 위해 끝까지 하나로 밀고 나가는 여타 다른 K팝과 다르게 그들은 5명의 목소리를 위해 레게 리듬을 일부분에 제한한다. 그 결과로 풍성한 변주 구성과 황홀한 하모니가 앞으로 부각될 수 있었다. 


큰 기대에 비례한 아쉬움도 존재한다. 무드 클립 영상에서 일부를 먼저 들을 수 있었던 두 곡이 특히 그렇다. 스캥크 주법과 함께 신나는 펑크(Funk)일 줄 알았던 ‘Hot girls cold vibe’의 뒷면은 차분하게 가라앉았고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소리만으로 연결되지 않는 두 파트에 개연성을 부여하기 어려웠다. 가사가 없던 ‘Orchestra’의 첫인상은 헨리 맨시니의 ‘Lujon’을 훌륭하게 재해석하며 그동안 성공적이었던 클래식 샘플링 시리즈를 확장할 줄 알았다. 그러나 멤버들이 부르기 힘들었다고 토로할 정도로 발음을 고려하지 않은 가사, 이야기에 치중해 없다시피 한 라임 구조 모두 ‘Orchestra’를 편안하게 감상하기 어려운 곡으로 만든다. 


힘을 주려다 조금 더 비틀어버린 구간을 지나면 한결 산뜻한 분위기로 돌아간다. 극단적인 반복도 서슴지 않던 과거에서 조금은 정제된 ‘Hula hoop’는 중독적이면서 따라 부르기 좋게 약간의 공간을 허용한다. ‘행복’의 당찬 소녀가 시간이 지나 부르는 것 같은 ‘Hawaii’는 왜 그들의 초기 콘셉트가 아카펠라 그룹이었는지 상기시킨다. 두 곡 모두 보컬의 견고함이 중요했다. 가창자의 기본기가 드러나는 가벼운 곡을 어렵지 않게 소화하며 다시 목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어쿠스틱 질감이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일관성도 챙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음악이다. 고도로 산업화된 K팝은 이제 수많은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지금 유행하는 장르는 무엇인지, 어떤 노래가 퍼포먼스에 용이할지, 가창에서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해야 할지, 숏폼으로 재가공할 수 있는지 등 고민해야 할 요소가 너무 많아졌다. 많은 사공의 손을 거친 곡이 단순히 하나의 음악만으로 존재할 수 없게 된 시대에 레드벨벳은 여전히 소중한 5명의 하모니를 들려주기 위해 긴 잠을 깨고 가장 높이 올라가 날았다. 


-수록곡-
1. Surfin' boy [추천]
2. Hot girls cold vibe
3. Orchestra
4. Hula hoop [추천]
5. Hawaii [추천]
이재훈(sngovv@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