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열다섯 해. 2011년 < 충전 >으로 데뷔한 이래 수차례 멤버 변화를 거쳐 1인 체제로 거듭난 전기뱀장어는 복잡해진 홍대 지형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자리를 지켜 왔다. 경쾌한 팝 록 사운드와 맑게 갠 하늘 같은 보컬은 여전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려 했다고 밝힌 < 동심원 >을 건너, 꾸준하게 쌓아 온 디스코그래피에서 제일 변칙적인 동시에 본래 매력을 고스란히 간직한 불꽃이 환하게 타오른다.
8비트 칩튠을 불쑥 들이미는 시작부터 신선하다. 항상 스킷이나 인터루드를 배제하며 음반을 견고하게 채웠던 이답지 않은 파격에 자연스레 몰입하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 이어지는 ‘불*꽃’은 속도감 가득한 연주가 가뿐한 기류를 이끄는, 지극히 전기뱀장어다운 트랙이다. 특히 첫 번째 코러스 이후 박수 소리와 함께 자취를 감췄던 기타가 반짝이는 신시사이저와 돌아와 박자를 맞추는 순간의 희열이 각별하다. 안티 팬에게 내비치는 자신감 혹은 만화 < H2 > 속 풋사랑 양쪽으로 읽히는 가사 ‘경기 끝나고 잠깐 얼굴 좀 볼래’까지, 그간 인디 신에서 여러 차례 차용해 온 스포츠 콘셉트를 누구보다 잘 이해한 산물이다.
익숙한 결의 ‘16.6’을 중앙에 배치한 가운데 헤비니스에 대한 욕망을 품은 앞뒤를 살펴보자. 역동적인 드럼이 거센 폭풍우처럼 귓전을 뒤흔드는 ‘숯’과 후반부 1분 동안 말 그대로 폭주하는 ‘혁명의 연인들 (Remastered 2026)’에서 보여준 뛰어난 기량이 밴드의 새로운 강점을 부각한다. 잠시 청량함을 내려놓고 분위기에 맞게 내지르는 가창 또한 완성도를 견인한 핵심 요소다. 역으로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에서는 해파의 육성과 포개어진 채 짤막한 문장들을 읊조리며, 가장 느린 빠르기의 ‘일렁’에 이르러선 아련히 속내를 털어놓기도 한다. 한 가지 색채가 뚜렷한 목소리로도 너른 폭의 표현력을 발휘한 결과 25분의 러닝타임이 만족스럽게 꾸려졌다.
현재의 황인경이 과거의 자신에게 건네는 악수. 엔딩에서 토로하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겨우 이것뿐인걸’이라는 말은 곧 청자에게 넌지시 보내는 응원이자 회한이 섞인 자조일 테다. 그가 직접 쓴 앨범 소개에서도 드러나듯 지나온 여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침잠하기엔 여태까지의 궤적을 응축해 쏘아 올린 폭죽이 너무나도 크고 밝다. 9회 말 투 아웃 풀 카운트 상황, 마운드에 선 투수가 온 힘을 다해 공을 던진다. 스트라이크 존에 꽂히는 모습을 멀뚱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결정구다.
-수록곡-
1. 불
2. 불*꽃 [추천]
3. 숯 [추천]
4. 16.6
5. 혁명의 연인들 (Remastered 2026)
6.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때 (Feat. 해파) [추천]
7. 일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