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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Music May Contain Hope.
레이(RAYE)
2026

by 박수석

2026.05.29

삶은 희극인가 비극인가. 레이의 지난날은 분명 후자에 가까웠다. 소속사는 별다른 이유 없이 앨범 발매를 미뤘고 길어지는 방황 속에서 섭식 장애와 약물 중독까지 뒤따랐다. 홀로서기 후 발매한 < My 21st Century Blues >는 그렇기에 단순한 데뷔작이 아니었다. 묶여 있던 재능의 후련한 분출이자 인고의 시간에 대한 보상이었다. 2024년 브릿 어워드 6관왕과 더불어 작년 그래미 시상식 무대까지 오른 그는 지나온 흔적을 되돌아보며 다음 이야기를 써 내려간다. 두 번째 각본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가기까지의 기록, 인간 승리의 드라마다.
 
웅장한 오케스트라가 먹구름이 드리운 서막을 올린다. 솟아날 구멍 없는 하늘 아래 ‘I will overcome.’이 새기는 결의엔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리라는 비장함마저 흐른다. 관현악이 주조한 극적 효과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뒤이어 ‘Winter woman.’ 속 비발디의 선율로 이어진 협연은 주인공과 객석 사이의 벽을 허물며 서사에 감정적 호소력을 부여한다. ‘Click clack symphony.‘의 지휘를 한스 짐머에게 맡긴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대한 스케일과 그에 걸맞은 야심 찬 연출이 긴밀하게 맞물린다.

장면이 바뀌면 작품은 브로드웨이의 한복판으로 배경을 옮긴다. 재즈와 소울에 있는 레이의 근간을 생각하면 1900년대 초반의 빅 밴드로 탈바꿈한 이 편성이 주무대인 셈이다. 어느새 한 편의 오페라에서 뮤지컬로 변모한 앨범은 관객과의 거리를 한층 좁히며 쇼 비즈니스의 본분을 다한다. ‘Beware.. the south London lover boy.’, ‘Skin & bones.’ 등 그루브 넘치는 넘버들이 화려한 브라스와 훅을 터뜨리니 볼거리가 풍성하다. 딥 하우스로 풀어낸 ‘Life boat.’처럼 무리한 확장이 흐름을 방해해도 시대를 횡단하는 앙상블 덕에 극의 탄력은 중반을 지나며 도리어 배가 된다.

절정을 장식해야 할 순간, 보컬은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가장 밝게 빛난다. 숨 쉴 새 없이 대사를 소화하는 ‘Where is my husband!’도 짚어야 할 대목이지만 하이라이트는 ‘I know you’re hurting.’처럼 고전적인 소울 디바의 존재감을 재현한 곡들이다. 특히 ‘Nightingale lane.’의 역창은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장중한 울림을 동원해 근래 대중음악에서 느끼기 힘든 몰입감을 선사한다. 과할 정도로 많은 장치를 동원한 이번 기획이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은 데는 시종일관 집중력을 유지한 가창의 공이 크다.

지난한 과거에는 안녕을, 다가올 미래에는 환영을. 그림자가 채 가시지 않은 전작과 달리 < This Music May Contain Hope. >가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또렷하다. 종장에서 흐르는 따뜻한 멜로디는 곧 개화가 다가왔음을 알리는 완연한 봄기운. 레이의 무르익은 역량은 장황한 구성이 주는 부담도 충만함으로 소화해 내며 성대한 커튼콜을 받을 자격을 스스로 증명했다. 고난 끝에 꽃핀 음악은 아름답다.

-수록곡-
1. Intro: girl under the grey cloud.
2. I will overcome. 
3. Beware.. the south London lover boy. [추천]
4. The WhatsApp Shakespeare.
5. Winter woman.
6. Click clack symphony. (Feat. Hans Zimmer)
7. I know you’re hurting. [추천]
8. Life boat.
9. I hate the way I look today.
10. Goodbye Henry. (Feat. Al Green) [추천]
11. Nightingale lane. [추천]
12. Skin & bones. [추천]
13. Where is my husband! [추천]
14. Fields. (Feat. Grandad Michael)
15. Joy. (Feat. Amma, Absolutely) [추천]
16. Happier times ahead.
17. Fin.
박수석(pss105274@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