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이한 소문이 사실이었다. 기타리스트 김일로가 꿈에서 엿들은 기타 선율을 전위 음악가 카코포니에게 연주해 바쳤다고 하더라. 신비로운 만남으로 시작한 듀오 문소문은 전설이 지닌 스산한 활력을 음계에 옮긴다. 한 소녀의 등장으로 문소문의 정체성을 표현한 1집이 한편의 야화가 줄 수 있는 공포에 치중했다면, 신보는 형식의 확장과 새로운 서사에 핵심을 둔다. 이번에는 귓속에 두려움을 불어넣던 < 붉은 눈 > 속 구미호가 미래도시를 활보하며 수집한 민담 한 가닥이다.
기술 특이점을 넘은 발전된 세상에서 유일한 낭만을 간직해 전하는 노인을 다룬 이야기다. 세밀한 연주와 사운드 연출이 기본적으로 이 비정한 가상 세계를 관객과 튼튼하게 이어준다. 윈드차임이 속삭이듯 문을 연 ‘낭만을 빌려주는 노인’의 메인 리프와 전자악기 효과음이 괴상한 분위기를 내뿜으며 배경을 건설하고, 웅장하고 삭막하게 묘사된 우주적 전경에 ‘Hansel and Gretel’의 코러스는 약간의 우화적 색채를 덧입힌다. 듣는 것만으로도 이 음악극의 화폭이 직관적으로 그려진다.
무거운 상상을 곁들였으나 난해함의 벽을 많이 낮췄다. 이런 날 선 종류의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다. 대중음악적인 강세를 주어야 할 곳에는 분명하게 주고 필요할 때 시원하게 해소한다. 구성진 가락을 품은 ‘흘러내리는 바벨탑’은 팝과 내통하고, ‘Extropy’에서는 심지어 포효하는 록의 절정을 맞는다. 청각적 장애물을 헤치고 나면 안심되는 구간과 멜로디가 등장하고, ‘언제나’를 필두로 후반부에 강조되는 카코포니의 보컬은 긴장 상태의 청중을 무사히 끝까지 안내한다. 앨범 전체에서도, 개별 곡에서도 구전의 본질인 흥미 유발과 유희의 미학을 놓치지 않았다.
우리 문화를 향한 세계적 인정과 변용을 안에서부터 강요받으며 한국 고유의 것에 대해 고심하는 세상이다. 이들은 소문이라는 형식에서 출발해 설화적 이미지를 갖추고, 그 상상력을 공연예술로 이어가며 이 담론에 나름 입체적인 길을 개척했다. 그 기반은 당연한 것들을 그저 받아들이지 않고 던지는 물음들에 있다. 코즈믹 호러나 과학 세계의 배경음악은 꼭 한스 짐머 풍 정석 음악이어야 할까, 데이비드 보위가 만든 외계인이나 < 듄 >과 같은 서양 공상과학 속 묘사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 문소문이 훌륭하고 음흉한 해답을 내민다.
-수록곡-
1. 낭만을 빌려주는 노인 [추천]
2. Hansel and Gretel [추천]
3. 흰 그림자의 증명
4. 시소
5. Extropy [추천]
6. 언제나 [추천]
7. Dear the perfect you
8. 슈퍼맨
9. 흘러내리는 바벨탑 [추천]
10. 갈증 혹은 더러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