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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ree Is Burning
드비타(DeVita)
2026

by 박시훈

2026.04.04

감미로운 알앤비와 어딘가 서늘한 소울, 10대 시절을 보낸 시카고와 음악 생활을 개진한 한국, 이러한 양면성을 품듯 영웅과 독재자 사이를 오가는 아르헨티나의 영부인 에비타에서 착안한 활동명까지. 지금껏 드비타의 행보는 규정할 수 없는 무언가를 특정 형식 안에 가둬 놓는 일과 같았다. 데뷔작 < Créme >는 한 장르로써의 평면적인 잣대를 거부했고 팝적인 감각을 그러모은 < Naughty > 역시 정형화된 문법 밖에서의 노래를 감행했다. 흐릿한 경계 속에서 비로소 자유를 얻은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얇은 울타리마저 걷어냈다.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출발하는 첫 정규작 < The Tree Is Burning >은 그동안의 정체성을 새롭게 정의한다.  

앨범 제작 당시 드비타는 삶에서 가장 고된 시기를 보냈고 이를 음악으로 풀어냈다고 밝혔다. 이렇듯 수록곡들에 차용된 성경 속 구절과 종교적인 규율은 한껏 뒤틀어져 있다. 첫 곡 ‘Judas reborn’부터 자신을 타락한 죄인으로 서술하는 이야기는 과도한 욕망을 경고하는 기존 이카로스 신화를 해체한 ‘The climb’에서 구원을 향한 집착으로 확장된다. 근래 대중음악에서 보기 힘든 작법일뿐더러 노랫말의 운용력도 남다르다. 습관적인 신앙심으로 현실을 외면하는 ‘Amen’과 선악과를 먹었음에도 하염없이 간청하는 ‘YHWH’ 등 은유적 표현을 무기로 삼아온 뮤지션의 기지, 오직 극한의 고통을 느낀 자만이 발화할 수 있는 문장들이다. 

독특한 도화지에 채색을 담당하는 조력자들의 활약 또한 크다. AOMG 시절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테림과 전곡에 참여한 소공의 지휘 아래, 혼란에서 평온으로 이르는 장정은 구간마다 강한 결속력을 얻는다. 피아노 편곡 위주의 흐름을 극적으로 전환하는 ‘Tricycle’의 EDM 사운드는 자칫 답답할 법했던 접합부를 느슨하게 풀어주고 왜곡된 보컬로 쌓아 올린 ‘Changes’에서의 각종 효과음은 인터루드 이상의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오케스트라 구성을 동력 삼아 안식을 향해 노를 젓는 ‘Sailing’과 스산한 트랩 비트 위로 스스로를 끌어안는 ‘Lamb’ 역시 저마다의 특색이 또렷하다. 영적인 가사와 이를 받쳐주는 선율 모두 어느 한 곳에 치우쳐지지 않고 조화롭게 울려 퍼진다. 

알앤비의 하위 분파도 애절한 찬송가 모음도 아닌 불명의 음반에서 드비타의 음악관은 오히려 선명해진다. 주변을 의식하거나 과거의 흔적을 되짚을 필요도 없이, 자신의 아픔을 꺼내 응시하는 과정은 그를 더욱 독보적인 존재로 빚어냈다. 촘촘하게 짜인 만듦새와 매끄러운 이음새가 콘셉트의 진입 장벽을 허물었고, 이 모든 것을 지탱하는 절실한 목소리는 한 개인을 넘어 타자의 대입까지도 가능케 한다. 다면적인 음악가의 모습은 잠시 접어 두고 인간 조윤경의 결의로 가득 채운 순례길. 앞으로 어떤 페이지가 펼쳐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지만 올곧은 자아를 찾아 떠났던 구도자의 뜨거운 발길만은 오래도록 아른거릴 것이다.

-수록곡-
1. Judas reborn 
2. The climb 
3. Amen [추천]
4. YHWH
5. Tricycle [추천]
6. Changes
7. Kyrie
8. Sailing [추천]
9. Lamb [추천]
10. Hallelujah
박시훈(sihun66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