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Créme
드비타(DeVita)
2020

by 손기호

2020.06.01

사운드 클라우드를 시작으로 기린이 설립한 레이블 에잇볼타운(8BallTown)에서 존재를 드러낸 드비타는 어글리덕, 박재범 등에게 감각을 보태며 다음 단계에 대한 암시를 깔아놓았다. 당위성을 얻으며 에이오엠지로 이적한 그에게 주어진 과제는 관심만큼 커진 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일이었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드비타는 삶이란 주제로 다섯 편의 필름을 제작했고 직접 영사기를 돌리길 마다하지 않았다. 상영관 이름은 ‘Crème de la crème’, 최고 중의 최고라는 뜻의 < CRÈME >을 선택했다.

프롤로그 'Movies'로 드러낸 드비타의 의지는 뚜렷하다. 따뜻한 전자 피아노의 음색과 대비되며 재생되는 누아르의 총격 장면은 바다가 보이는 안락한 빌라 뒤 라공(Villa du Lagon)에 머무는 대신 선택한 차가운 아티스트의 길을 의미한다. 시카고를 기반으로 활동했던 그는 같은 지역의 젊은 음악가들이 그러했듯 자기 과시로 점철된 주류 흑인 음악을 거부하고 네오 소울, 힙합 등에 자신 혹은 타인의 인생을 투영한다.

작품을 통해 누군가에게 영감을 전달해야 하는 예술가의 고민은 ‘EVITA!’로 정제된다. 자신에게서 발현된 색이 획일화되지 않고 다채롭게 해석되길 바라며, 가치에 따라 상반된 평가를 받았던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인물 에바 페론의 애칭 에비타를 전면에 내세운다. 경쾌한 1980년대 드럼 비트와 신시사이저로 뼈대를 이루는 알앤비 넘버는 보컬과 랩을 오가며 특정한 형태에 구속되기를 거부한다.

다양성에 대한 욕망은 장르의 구사에서도 나타난다. 피아노 반주 위로 섬세한 감정을 그린 ‘All about you’와 기타, 스트링으로만 편곡된 ‘1974 Live’, 코드쿤스트가 프로듀싱한 ‘Show me’까지. < CRÈME >의 수록곡은 옴니버스 영화처럼 공통된 소재를 각각의 형태로 연출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바탕에 깔린 서로 다른 곡들의 개성적 충돌은 주요 트랙의 부재와 앨범의 서사적 유기성을 떨어트린다.

드비타는 잊히는 걸 죽는다고 생각하며 시대에 기억되기 위해 3년이란 시간에 걸쳐 영화관 < CRÈME >을 세웠다. 화려한 예고편으로 이목을 집중시킨 만큼 맥거핀처럼 한순간의 자극으로 끝날 수 있던 그의 등장은 치밀한 복선이 됐고 이제 그 회수를 기다릴 때다.

-수록곡-
1. Movies
2. EVITA!
3. All about you
4. 1974 Live
5. Show me [추천]
손기호(gogokiho@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