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기타리스트들의 기타리스트, 제프 벡ㅣ박수석의 겟 어 기타
제프 벡(Jeff Beck)
대중음악의 곁은 기타가 지켰다. 이 무한한 가능성의 ‘작은 오케스트라’를 분신 삼아 많은 사람들이 연주 혼을 불살랐고 소수의 혁신가들이 일으킨 현의 진동은 시대의 거대한 흐름마저 뒤흔들었다. 이즘은 흘러간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빛낸 기타리스트의 전설들을 선정해 조명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지판(指板)이라는 대지 위에 그들이 남긴 굵직한 발자국을 좇는다.

기타를 잘 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이 질문에 필자의 레슨 선생님께서는 고심 끝에 이렇게 답했다. 정확도, 박자감, 톤 메이킹 등 따질 부분은 많겠지만 확실한 건 좋은 연주자라면 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을 자신만의 색깔이 있어야 한다고. 이는 궁극적인 목표가 정교한 연주를 넘어 자아를 투영한 아름다운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말과 같았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받아들였던 이 답변은 이제 와 돌이켜보면 다른 누구 아닌 제프 벡의 이름이 떠오르게 하는 가르침이었다.
흔히 노래하는 듯하단 표현을 쓰지만 본능적인 터치는 그보다도 생활 속의 대화에 가까웠다. 울면서 흐느낄 때면 목이 막히고 화를 쏟아낼 때는 의도치 않게 음이 틀어지기도 하지 않나. 제대로 된 음정을 낼 수 없었던 첫 자작 기타의 영향으로 추정되는 오묘한 음감과 기발한 해석을 곁들인 선율이 융합하니 손끝으로 읊는 구절들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걸어 온다. 연습생들이 훈련을 위해 쉬이 그의 곡을 집어 들지 못하는 이유도 이 뉘앙스가 워낙에 독특하기 때문이다.
힘들이지 않는 편안함 뒤에는 오랜 시간 갈고 닦은 절묘한 기교가 숨어 있다. 악기의 몸체에 있는 브릿지는 줄을 지탱하고 여기에 장착할 수 있는 트레몰로 암(Tremolo Arm)을 누르거나 당기면 현의 장력이 일시적으로 바뀌어 음의 높낮이가 달라진다. 제프 벡은 격렬한 비브라토나 잠깐의 효과음을 주는 일반적인 활용을 넘어 미세한 아밍(Arming)을 넣어가며 음 하나하나에 섬세한 억양을 부여했다. 피크로 치기도, 때로는 손으로 때리기도 하며 얻은 다종다양의 하모닉스와 시시각각 노브를 조정하며 얻은 강약 조절까지. 이렇게나 할 일이 많은 탓에 라이브 무대를 보면 여유로운 왼손에 비해 그의 오른손은 쉴 틈이 없다. 과시가 아닌 음악적 자기표현의 수단으로써 테크닉을 적확히 사용했던, 진정한 의미의 ‘테크니션’이었다.

시작은 1965년 에릭 클랩튼의 뒤를 이어 합류한 야드버즈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불화로 팀을 떠나 마무리는 좋지 못했지만, 일찍이 앰프 피드백을 발굴한 ‘Shapes of things’나 초기의 퍼즈로 인도풍 선율을 풀어낸 ‘Heart full of soul’은 이내 파도처럼 몰아칠 하드 록과 사이키델리아의 첫 물결이 되었다. 이후 자신만의 음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 꾸린 제프 벡 그룹과는 함께 총 4장의 앨범을 발매했다. < Truth >와 < Beck-Ola >까지는 블루스 록의 범주임에도 ‘Beck’s bolero’ 같은 트랙이 클래식 작곡가 모리스 라벨로부터의 영감을 새로이 풀어내며 실험성을 내비쳤고, 록이 여러 갈래로 가지를 치던 1970년대 초의 < Rough And Ready >와 < Jeff Beck Group >은 본격적으로 재즈의 색채를 드러내며 이어질 행보에 대한 단초를 남겼다.
솔로 아티스트로서 내디딘 첫 발 < Blow By Blow >(1975)는 곧 커리어 최고의 하이라이트로 밝게 빛났다. 시작부터 끝까지 예상치 못한 창의성과 표현력이 흘러넘치는 이 명반엔 일렉트릭 기타가 선사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매력이 담겨 있다. 절절한 감성으로 국내에서 제프 벡의 대표곡으로 자리 잡은 ‘Cause we’ve ended as lovers’는 물론, 익살스러운 라인의 ‘Constipated duck’과 끈적한 리듬으로 급격히 감속하는 ‘Air blower’까지 어느 하나 빼놓기 힘든 트랙들이 가득하다. 이듬해 < Wired > 또한 전작의 기세를 잇는 재즈 퓨전 수작. 두 작품 모두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각각 4위와 16위에 오르며 가사 없는 순수 기악곡만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위력을 과시했다.

비슷한 활동 시기와 야드버즈를 거쳐 갔다는 공통점, 그리고 순위 매기기 좋아하는 일본 매체의 영향으로 인한 에릭 클랩튼과 지미 페이지와의 비교는 애호가들 사이에선 이미 익숙하다. 에릭 클랩튼은 친숙한 선율로 오랜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았고 지미 페이지는 레드 제플린에서 비교적 짧은 시간에 큰 충격을 선사했다면, 제프 벡을 이들과 나란한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끊임없는 혁신과 도전 정신이다. 1980년대 팝의 댄서블한 분위기를 충실히 반영한 < Flash >(1985)와 다가오는 새천년의 전자 음악 기류를 놓치지 않은 < Who Else! >(1999)로 새것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하지 않으며 시대와 호흡했고, 그 사이 피크를 버리고 오로지 손가락 탄현에 몰두하는 등 기술적인 면에서도 언제나 제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질병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각종 협업을 이어가며 왕성한 활동을 유지했다.
어느 곳이든 해당 분야의 종사자에게 더 인정받는 이들이 있다. 기타 세계에서는 제프 벡이 그렇다. 이번 시리즈의 시작을 연 국내 연주자들과의 인터뷰 당시 ‘인생 아티스트’로 연달아 호명된 그는 내로라하는 인물 사이에서도 고고하게 빛나는 독자적 연주 영역을 구축했다. 록이 꽃을 피우던 1960년대부터 반세기 넘게 흐른 2020년대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그 여섯 줄에 천착한 수행자. 이 거장이 보여준 고결한 헌신과 그것으로 빚은 음악은 예술가라면 오래도록 되새겨야 할 영원한 귀감이다.
이미지 제작 : 박시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