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Acoustic Summer
뮤지션에게는 기존의 이미지를 전복시키는 앨범을 발표해야만 될 시기가 찾아온다. 그것은 팬들의 반응에 따른 작용점이 음악을 주재하는 마스터에게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전환기의 물결은 항상 음악인의 성숙된 자세와 연륜이 뒷받침되기 마련이다. 그래야만 변화가 뜀틀의 발판이 될 가능성이 높으며, 섣부른 도전은 오히려 쇠락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십상이다. 걸작이란 이름의 영향력은 바로 내공의 다른 말이기 때문이다.
군대에서 헤어진 연인을 정리하는 심정으로 발표했다는 전작 <헤어진 사람을 위한 지침서>의 지지부진은 진정 어린 자세에 비해 새로움이 첨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계속된 윤종신의 이별에 대한 예의바른 정한은 이 앨범에서 지겨움 혹은 궁상으로 그 신선도가 떨어졌으며 이제는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늘>에서 윤종신이 내보인 카드는 복고라는 측면에서 전작들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어쿠스틱으로 양념한 빠른 비트는 이전과 딴판으로 느껴지게 한다. 특히 앨범의 홍보를 전적으로 도맡은 이규호의 '팥빙수'는 반복되는 가삿말과 소재의 특이함, 재미있는 단어 선택, 경쾌한 리듬 등으로 그의 이미지를 쇄신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거기에 여름이라는 계절 감각은 가을과 겨울의 어두운 심상을 한껏 그려냈던 지난 작품들과는 거리를 두게 만들고 있다. 또한 매미소리의 '그늘'에서부터 스윙과 브라스가 전편을 수놓는 복고풍의 '시원한 걸'과 '해변 무드 송' 등 입으로 따라가기 힘든 비트를 쏟아 붓는 10대들의 댄스 음악과는 포착점을 다른 곳에 놓고 있다. 이것은 범국민적 정서에 도전하는 한국판 'Surfin' USA'다.
이런 외적인 변모에도 불구하고 역시 윤종신의 힘은 발라드에 있다. '바다 이야기', 'Because I love you', '수목원에서'로 이어지는 정통 발라드 3부작은 과거의 성공적인 노선을 떠올리게 하며 기존의 팬들을 안심시킨다. 이것은 비단 뮤직비디오에서 보여주는 '촌스러움'과 고색 창연한 향수효과를 말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서정적 결말을 이끄는 가사와 후렴구를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멜로디 전개에서 진정한 그 빛을 발한다. 이것이 발라드계에서 그를 빼놓을 수 없게 만드는 표식이다. 앨범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는 홍보용 광고판인 '여름'을 배제하고 점점 본색을 드러낸다.
한철 장사를 위한 이런 음반은 짧은 기간만을 위해 봉사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크리스마스 노래가 딱 한 달 장사를 하듯 말이다. 그렇지만, 매년 여름이면 빠지지 않고 울려 퍼지는 '해변으로 가요'나 미국 그룹 비치보이스(Beach boys)의 곡들처럼 다시 돌아오는 계절에 환영받을 수 있는 여지는 충분히 남아 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모두는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다. 1위를 하더라도 몇 달 후면 잘 기억나지 않는 곡이 많아지는 것은 공급자들에게는 기계적 분업을 따분하게 요구하므로.
윤종신은 이 앨범으로 어떤 변화를 모색한 것일까? 그의 허스키해진 음색은 심오하고 변화무쌍한 곡에도 잘 어울릴 것 같지만, 발라드 이상 가는 장르를 만나기는 힘들 것이다. 휴식처럼 쉬어 가는 이 앨범이 그에게 던지는 화두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