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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cute anymore
아일릿(ILLIT)
2025

by 한성현

2025.12.04

처음 듣고 난 직후의 감상은, ‘이렇게 느려도 돼?’였다. 다시 들어보니 그 정도는 아니지만 직전 EP < Bomb >의 ‘빌려온 고양이’와 ‘Jellyous’를 생각하면 당혹스러울 정도의 변화다. 그런데 나쁘지 않다. 키치한 가사를 욱여넣는 과정에서 종종 멀미를 유발했던 그전과 달리 거의 낱말 단위로 해체하여 취향을 무심하게 나열하는 가사에 팀이 표방하는 알쏭달쏭한 10대의 감수성이 비로소 구체화된다. 잠에 취한 채 메모장에 적은 낙서로 재구성한 아이유의 ‘팔레트’를 듣는 기분이다.


내면으로는 아일릿 정서의 심화 과정을 꾀하고 바깥에서는 장르적 확장성을 챙겼다. 영미권 알앤비의 최신 경향을 따른 ‘Magnetic’, 순정만화풍 J팝 편곡을 끌어안은 ‘Almond chocolate’과 ‘빌려온 고양이’에 이어 이번의 중추는 1990년대 가요의 유행이었던 레게 팝이다. 2분 초반으로 지나치게 짧은 러닝타임과 흐릿한 가사 전달력이 야속하지만 시대간 접점 하나만으로 이들의 혼합적 음악은 정돈되어 설득력을 갖춘다. 줄곧 트렌드 기반 현지화에 힘썼던 팀이기에 더욱 반가운 ‘K’ 복각 시도.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