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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mb
아일릿(ILLIT)
2025

by 한성현

2025.07.03

아일릿의 디스코그래피는 앞 단계의 요소를 하나씩 차용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두 번째 EP < I’ll Like You >가 ‘Magnetic’을 나눠 가진 것을 보자. ‘Cherish’는 도입부 나레이션과 후렴의 작법을 따와 비교적 부드러운 사운드에 붙였고, 후속곡 ‘Tick-tack’은 신시사이저 아르페지오를 게임풍의 칩튠 비트와 의성어로 비틀었다. 마치 진화론의 분화 구조를 보는 듯하다.

챙길 게 늘어날수록 어수선해지기 쉽다. ‘빌려온 고양이’에서는 그게 셋이나 된다. 프렌치 하우스 리듬과 ‘Tick-tack’을 닮은 코러스, 그리고 올해 초 발매한 ‘Almond chocolate’의 풍부한 현악기를 치환한 일본 애니메이션 스코어 인용. 개별적으로 봤을 때는 재밌는 변주와 계승이나 하나로 묶는 개연성은 부족하다. 제목의 재치 있는 속담은 고양이 추임새로 인해 납작해지고 여기에 마법소녀 콘셉트까지 가미하니 구심점이 모호하다. 가장 오래 남는 것은 마무리 장식으로 생각했으나 다른 향을 다 덮어버리는 샘플이다.

퍼포먼스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난 수록곡에서 상대적으로 정돈된 모양새를 보여준다. 드럼 앤 베이스를 툭툭 던지는 ‘Jellyous’는 개러지 스텝을 사용한 전작의 ‘Iykyk’가 보여준 댄스와의 궁합을 상기시키고, ‘Magnetic’의 몽롱함을 인디트로니카 비트로 증폭한 ‘Little monster’는 커리어 전체로 놓고 봐도 상위권에 들어갈 트랙이다. 음역대를 낮춰 한층 편해진 멤버들의 보컬과 마음속 불안을 작은 괴물로 지칭해 먹어 치우겠다는 가사가 만나 ‘자연스러운 10대를 추구’하는 그룹의 표어에 비로소 설득력을 부여한다.

가수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장르 음악 색채가 짙은 곡이 정체성을 더 잘 구현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Lucky girl syndrome’의 후속작이 되기에 ‘Oops!’가 다소 건조하고 ‘밤소풍’은 너무 빨리 끝나는 등 노래 자체가 약한 것도 맞지만, 히트곡 ‘Magnetic’이 전자음악 신의 주목 또한 받았음을 고려하면 아일릿의 잠재력은 오히려 좁게 파고들 때 발휘된다는 재밌는 결론에도 닿는다. 온 사방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상황은 다행히 끝나지 않았나. 노선을 어디로 두든 슬슬 가지치기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록곡-
1. Little monster [추천]
2. 빌려온 고양이 (Do the dance)
3. Jellyous [추천]
4. Oops!
5. 밤소풍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