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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
도자 캣(Doja Cat)
2025

by 정하림

2025.11.11

한바탕 치른 전쟁은 한 번이면 되었다. 그간의 인기를 쌓아 올린 'Say so'와 'Kiss me more'식 작법을 완전히 전복시킨 전작은 공격적인 래핑으로 래퍼가 아니라는 비판에 정면으로 맞섰다. 팬들과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가사와 악마에 빙의한 호러 콘셉트에서도 중독성은 여전했고, 덕분에 ‘Paint the town red'과 같은 유혈이 낭자한 모습에도 도자 캣은 승리의 전리품으로 차트 1위곡을 챙겼다. 해묵은 감정을 후련하게 분출한 후 그는 일말의 아쉬움 없이 팝으로 복귀한다. 


원래 위치로 돌아왔으나 배경은 한참 과거다. 위켄드를 시작으로 너도나도 문을 두드리고 있는 1980년대를 그 역시 테마로 삼았다. 리드 싱글 'Jealous type'부터 디스코를 접목한 매끄러운 신스팝인 데다 낯선 사랑도 쿨하게 넘기는 'Stranger'를 포함한 앨범 곳곳에서 극적인 색소폰 연주가 울려 퍼진다. 가성으로 멜로디를 유려하게 쓰다듬는 'All mine'의 창법에선 프린스의 영향이 짙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본체지만 역점은 회귀보다 복고에 맞춰진다.


문제는 구현 방식이다. ‘Couples therapy'부터 ‘Lipstain'은 마치 하나의 트랙을 펼친 듯 자연스레 흘러가지만 구성이 비슷하다. 신시사이저 중심의 선율, 일관되게 다듬어진 목소리 톤, 1절이 지나며 등장하는 랩이 공식처럼 굳어지고 중반부에 위치한 타이틀 ‘Gorgeous’도 이를 충실히 따르고 만다. 관능적인 보컬과 묵직한 트랩 비트가 대비를 이루는 'Act of service‘와 'Make it up’도 'Agora hills’의 자매품에 가깝다. 각각을 살리지 못하고 유사성에 의존한 결과는 유기적을 넘어 획일적이다.


그러니 변덕스러운 ‘Aaahh men!’과 쫀득한 코러스가 반복되는 ‘Silly! fun!’이 반갑다. 논란을 부르더라도 예측불허 캐릭터는 화제성의 바탕이었고 이와 반대되는 깔끔하고 캐치한 후렴구는 래퍼인 그를 팝스타로 올려놓았다. 음반 전체보다 개별 곡 위주 청취가 익숙해지는 현실에서 일체감을 조성한 시도는 높이 평가해야 하나 목표를 신경쓰며 작품은 평면적으로 변했다. 성적이 저조한 것도 같은 맥락. 결국 자기다운 순간이 가장 번뜩이고 타인도 사로잡는다.


도자 캣의 다재다능함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넓은 음역대에서 노래와 랩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스킬로 여러 장르를 소화해 냈고 어렸을 적부터 쌓은 탄탄한 춤 실력은 무대에서 그를 더 빛나게 만든다. 다만 변화가 확연했던 < Scarlet >, 다채로운 음악 스타일의 < Planet Her >에 비하면 < Vie >는 관계 속 내면의 이야기라는 역동적인 주제를 가지고도 지나치게 안전하다. 응시하는 시대와는 다른 평이한 앨범 커버가 복선이었을까. 사실 삶(Vie)은 그렇게 천편일률적이지 않다.


-수록곡-

1. Cards

2. Jealous type [추천]

3. Aaahh men! [추천]

4. Couples therapy

5. Gorgeous

6. Stranger [추천]

7. All mine [추천]

8. Take me dancing (Feat. SZA)

9. Lipstain

10. Silly! fun! [추천]

11. Acts of service

12. Make it up

13. One more time

14. Happy

15. Come back


정하림(sielsia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