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는 다른 길을 지향했던 이브의 본격적인 노선 굳히기다. 이달의 소녀에서는 그룹의 정해진 콘셉트를 착실히 소화했다면 솔로 활동에선 쉽게 벗어날 수 없었던 선을 넘나들고 있다. 세련되고 중독적인 후렴구의 'Viola', 몽환적인 아웃트로로 틱톡에서 바이럴된 'Dim'은 K팝에서 흔치 않은 미니멀한 구성의 하이퍼 팝이었다. 솔직한 이야기를 더해 미래를 어렴풋이 예고한 < I Did >를 지나 그는 대담하게 직진했고, 그 끝에 내적 혼돈을 일렉트로닉 뮤직으로 가공한 < Soft Error >가 탄생했다.
뾰족한 개성을 발현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챙겼다. 'White cat'의 두꺼운 스타일로폰, 'Soap'의 왜곡된 샘플링, 'Aibo'의 이펙터 강한 기타 연주까지 과장된 요소가 노래 곳곳에 투입됐다. 극대화된 지점이 있어도 균형이 잡힌 건 섬세한 프로덕션 덕분이다. 벌스, 코러스, 브릿지 등 각 구간 이음새는 매끄럽고 피처링을 포함한 보컬 톤도 균일해 마치 한 사람처럼 자연스럽다. 특히 비슷한 스타일의 선도자 핑크팬서리스가 합세한 'Soap'은 몽글몽글한 질감 위로 엷은 목소리를 채워 이브만의 신비로움을 구현했다. 입력값이 지나쳐도 끝내 듣기 좋은 트랙이 된 바탕에는 정제된 변환 과정이 존재한다.
주제 처리는 한층 더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어두운 신시사이저의 반복으로 분절적인 흐름을 만든 'Do you feel it like I touch'와 찢어지는 듯한 음향 효과, 현란한 드럼 비트를 대동한 'Study'가 청각을 쉴 새 없이 자극한다. 언어로 설명하지 않아도 심리적 균열 상태를 직관적으로 대변하는 과잉된 감각이다. 이어 차분하게 끝맺는 ‘Mom’은 분위기 면에서 이질적이어도 감정 정리와 해소라는 맥락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가사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던 전작 ‘Gone girl’과는 달리 내면세계를 사운드에 직접 투사한 점이 과감하다.
차근차근 발전을 거듭한 결과 이브는 아티스트를 넘어 신의 대안적 존재로 부상했다. 독립을 택하고도 그는 여전히 K팝이란 테두리 안에서 프로듀서가 직조한 트랙, 준비된 안무와 함께 움직인다. 방식은 여느 아이돌과 똑같지만 산출한 음악이 명확히 다르니 늘 예측 가능했던 이 영역에선 독특함이 살아난다. 복잡한 고민이 확신과 자신감으로 만개할 날엔 또 어떻게 변하게 될지. 정형을 벗어난 신선한 오류의 매력이다.
-수록곡-
1. White cat [추천]
2. Soap (Feat. PinkPantheress) [추천]
3. Aibo (Feat. Bratty) [추천]
4. Do you feel it like I touch
5. Study
6. M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