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 스톤(1943-2025), 흑백을 허문 게임 체인저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Sly & The Family Stone)

by 염동교

2025.06.24



“프린스는 어떤 음악갑니까?”라는 토크쇼 진행자 아세니오 홀의 질문에 마일스 데이비스는 “제임스 브라운과 마빈 게이, 슬라이 스톤의 합성물이죠”라고 답했다. 출생년도상 마일스(1926년)와 프린스(1958년) 중간에 위치한 슬라이 스톤은 군계일학 재능과 천변만화 음악색으로 “흑인 음악 천재” 계보를 이었다. 지미 헨드릭스와는 또다른 방법론으로 프린스와 레니 크라비츠같은 “기타 든 흑인 록커”의 원조로 기능했다. 1960-70년대 당시로선 물과 기름과도 같은 흑백의 소리 혼종의 선구자였다.

무릇 제임스 브라운이나 마빈 게이보다 언급이 적다. 1982년 마지막 정규 음반 < Ain’t But The One Way >의 참패와 1970년대의 들쭉날쭉 디스코그래피로 저평가 여지를 남겼다. 멜로디 중심의 국내 라디오와도 덜 맞았다. 굳이 아쉬운 후기 경력을 포장할 필요는 없으나 신명 나는 앨범 아트의 1973년 작 < Fresh >까지 약 7년간의 순도만으로 개척자 칭호는 충분하다.



여타 소울 권위자들과의 차별점은 사이키델리아. 모타운과 스택스에 1960년대 중반 해이트애시배리(Haight Ashbury) 중심의 샌프란시스코 사운드를 견지한 “멜팅팟 지향주의”였고 보 브럼멜스(The Beau Brummels)과 그레이스 슬릭 같은 해당 지역 음악가와 협업했다. 리듬 앤 블루스의 굴곡진 그루브에 애시드 록의 중독성을 엮은 사이키델릭 소울과 다채로운 컨셉트에 재즈와 록 영향의 진보적 소리를 결합한 프로그레시브 소울의 포용성은 펑크(Funk) 사상 최초의 다인종 집단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으로 귀결했다. 마이클 잭슨과 프린스의 블랙 앤 화이트 이전에 슬라이가 있었다.

경험 쌓기용으로 치부되기 아쉬운 두 초기작 < A Whole New Thing >(1967)과 사이키델릭 소울 클래식 ‘Dance to the music’을 수록한 < Dance To The Music >(1967)을 지나 < Life >(1968)부터 전성기를 개시했다. 작사 작곡 편곡은 물론이요 직접 설립한 스톤 플라워 프로덕션(Stone Flower Production)으로 제작까지 도맡았으며 패밀리 스톤의 “화목과 통일” 정체성도 이때 정점을 기록했다.

흑인 공민권 운동과 히피즘을 포착한 1969년 < Stand! >와 1960년대 미국 정치사회 격동을 비관주의로 바라본 1971년 작 < There’s A Riot Goin’ On >처럼 메시지도 마빈 게이와 커티스 메이필드 같은 사회주의 소울 음악가와 진배없었다. 수차례 샘플링된 ‘Family affair’ 와 ‘Thank you (falettinme be mice elf agin)’ 속 견고한 편곡은 힙합과 재즈 펑크의 초석을 다졌다. 



종적을 감췄다시피 한 1980년대는 “천재의 몰락” 혹은 “패밀리 스톤의 종결” 등 비관적 반응을 야기했다. 약물 중독과 창작력 고갈로 이어진 악순환을 극복 못 한 채 범작조차 부재한 허송세월 했다. 2011년에 나온 마지막 정규 음반 < I’m Back! Famly & Friends >도 이목 집중에 실패했다. 예술가의 흥망성쇠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삶은 실로 영화적이었으며 힙합 그룹 더 루츠의 드러머 퀘스트러브가 연출한 2025년 음악 다큐멘터리 < Sly Lives! >가 이를 반영했다.

그가 빚은 그루브는 21세기 대중음악의 주요 문법인 힙합을 통해 끊임없이 되살아나며 아프리칸-아메리칸 록스타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본보기로 작용한다. 소리 결합을 넘어 다인종 구성원과 성(性)·인종 불문 화합의 메시지로 이어진 흑백의 경계 분쇄는 트럼프의 반이민정책과 BLM(Black Lives Matter)의 2010-20년대와도 상응한다. 명곡 ‘Everyay people’ 속 '더불어 살아가야 해요, 우린 모두 동등하며 평등하죠(We got to live together / I am no better and neither are you)'처럼 인생 예찬과 인종 화합을 설파한 슬라이의 세계관과 예술은 작금에도 유효하다.
염동교(ydk881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