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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
딥플로우(Deepflow)
2015

by 박승민

2025.04.13

이즘이 비정기적으로 미처 리뷰하지 못했던 작품을 되짚어봅니다. 이번 리뷰는 이즘에서 ‘2015 올해의 가요 앨범’으로 선정한 딥플로우의 < 양화 >입니다.


한국 힙합은 2010년대 급속도로 몸집을 키우고 화려하게 빛났다. 방송을 계기로 대중성을 획득해 주류로 올라가는 이들과 문화의 순수성을 지키자고 역설(力說)하며 뭉치는 이들이 모두 존재하던 전성기. 2015년의 딥플로우는 둘 중 명백히 후자에 해당했다. 끝까지 신념을 굽히지 않겠노라 공언하며 척박한 토양에서 뿌리 내린 나무 비스메이저는 언더그라운드의 상징이며 기준이자 모범 답안이나 마찬가지였다. < Heavy Deep >의 혈기 넘치고 야망 가득한 젊은이는 그렇게 한 레이블의 수장이 되었다.


그리고 < 양화 >는 그의 파노라마에서 제일 극적인 장면들이 담긴 컷이다. 오프닝 ‘열반’의 첫 벌스에서 처음으로 뱉는 라인 “난 이미 꿈을 이뤘다고 봐”가 곧 앨범 전체를 대변한다. 단어를 씹어 삼키듯 강세를 주는 특유의 발음으로 자본과 영합하는 이들에게 ‘잘 어울려’라며 ‘불구경’의 조소를 날리는 태도는 각기 트랙의 훌륭한 완성도로 설득력을 얻는다. 하이라이트 ‘작두’의 굿판 배경과 태평소를 제하고도 작품 전반에서 영어 문장을 최소화하며 라임을 형성하는 방식, ‘역마’에서 그려내는 영등포의 풍경과 역마살의 모티프, 누군가의 틀에 박힌 삶을 그대로 투사한 ‘Cliche’가 음반에 ‘한국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게 한다.


트랙 리스트 정중앙에 위치한 ‘나 먼저 갈게’를 기점으로 움직이는 초점은 딥플로우가 뛰어난 래퍼일 뿐만 아니라 노련한 프로듀서임을 체감하게 만든다. 전곡을 홀로 혹은 티케이(TK)와 공동 프로듀싱했다는 사실 역시 강력한 증거다. 스킷을 활용한 트랙 간의 연결과 공간의 구체화, 전설들을 초빙해 정통성을 자랑하는 전반부에서 미생의 면모를 드러내는 후반부로의 전환은 마치 양화대교를 거쳐 마포에서 신길로 이동하는 것처럼 매끄럽다. 에너지 넘치는 넘버를 대부분 앞쪽에 배치했음에도 그가 풀어내는 서사를 따라 결말까지 감상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는 예나 지금이나 음악으로 자신의 약점과 상처를 내보여 왔다. “새 앨범이 잘 팔리면 그때 가 얘기하자고, 생각만 해도 신나, 근데 그게 말처럼 쉽나?”(‘역마’)에서 “약속의 장소는 어쩌면 다름 아닌 내 엄마의 품”(‘Dead line’)으로 시나브로 고조되던 감정선은 아버지를 향한 편지 ‘Bucket list’에 다다라 비로소 폭발한다. 다소 전형적인 전개일지언정 여러 가사를 촘촘히 엮어내어 내러티브를 쌓아 올리는 솜씨가 정교하기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가게 되는 구성이다. 실제 가족의 이야기를 크루로 절묘하게 치환한 엔딩 ‘가족의 탄생’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내비치는 자신감의 발로다.


VMC의 방송 출연 이래 수차례 디스전이 잇따르고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레이블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작금, 혹자는 이 일련의 성공담을 두고 철지난 과거 시제라 평할 수 있다. 허나 그러한 일면조차 전부 딥플로우의 일부이자 한국 힙합의 역사임을 기억해야만 한다. 게다가 그는 본작 발매일로부터 정확히 5년 후 내놓은 < Founder >에서도 앨범을 통해 속마음을 고스란히 털어놓지 않았는가. < 쇼 미 더 머니 > 시리즈가 막을 내리고 홍대에서 피워냈던 꽃이 다시금 주목받는 현재 반드시 돌아봐야만 할 찬란한 유산, 이것이 < 양화 >가 지닌 가장 큰 의의다.


-수록곡-

1. 열반 [추천]

2. 불구경 [추천]

3. 낡은 신발 (Feat. 태완 & sean2slow)

4. 잘 어울려 [추천]

5. 당산대형 (Feat. DJ Soulscape, Don Mills & VASCO)

6. 작두 (Feat. 넉살 & Huckleberry P) [추천]

7. 빌어먹을 안도감 (Feat. Odee)

8. 나 먼저 갈게

9. 양화 (Feat. Soulman) 

10. 역마 [추천]

11. Cliche (Feat. Kayon & 차붐)

12. Dead line (Feat. Ven) [추천]

13. 개로(開路) (Feat. Dragon A.T & 샛별)

14. Bucket list (Feat. 우혜미) [추천]

15. 가족의 탄생 (Feat. Don Mills & 우탄)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