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올해의 가요 앨범
싱글 중심의 호흡 가쁜 시스템 속에서도 여전히 음반의 미학은 살아 숨 쉰다. 많은 이들의 기대 속에서 등장한, 오랜 기다림을 겪고 나타난, 그리고 창작자의 고난과 고통을 안고 탄생한 숱한 앨범이 올해도 많은 음악 팬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 가운데서 2015년 한 해를 특히 빛낸 10 장의 앨범을 이즘이 간추렸다. 글의 순서는 순위와 무관하다.
딥플로우 – 양화
스트리밍 시대에 앨범의 미를 과시한 역작. 전체적인 그림이 탄탄하다. 딥플로우가 원한다면 뮤지컬로도 만들 수 있다.
제목 < 양화 >에 걸맞게 양화대교를 중심으로 두 이야기(兩話)를 펼친다. 전반부는 홍대를 위시한 한국 힙합에 대한 애증, 묵직한 '잘 어울려'와 굿판 '작두'가 화려하다. 다리를 건너 영등포에 다다르면 아들 류상구의 마음이 안쓰럽다. 잘해왔음에도 가장은 가족에게 미안하다. 폭넓은 감정의 요동이 자연스럽게 흐른다. 노련한 프로듀싱보다 한 남자의 인생이 설득력을 제공했다. '내 얘기' 하는 본토 힙합의 본질을 모범적으로 안착시켰다. 앨범 자체뿐 아니라 이후의 영향까지 빛날 명반이다. (전민석)
두 번째 달 -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마르코 폴로가 돌아왔다. 벌써 10년 차, 이제는 초보 여행자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필체를 구사한다.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듯 밴드는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구성원들 스스로 소통의 노하우를 체득하게 되었다. 아이리시, 국악 크로스오버, 모던 재즈 등의 다양한 양식과 낯선 국적의 악기들을 혼합했음에도 산만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곡을 이끌어가는 주선율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두 번째 달이 지향하는 음악은 서로 균형을 맞춰가는 악단 형이다.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는 하나의 방향성과 전통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바탕으로 팀은 월드 뮤직이라는 이국적 외형 안에 '우리'라는 친근한 이미지를 꽃피웠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는 작품이다. (홍은솔)
이센스 - The Anecdote
극적인 발매 과정은 앨범 감상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됐다. 덕을 봤다기보다,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일련의 사건이었다. 음악에 녹인 인생 농도가 짙다. 이센스의 방황이 < The Anecdote >로 설명된다.
이 진솔함을 구현한 짐승 같은 랩은 2007, 8년부터 기대 받아왔다. 찬란해야만 했던 구속의 시기를 지나 홀로서면서, 이국의 붐뱁을 만나면서 날개 달았다. 작품은 정수를 건드린다. 90년대 힙합 명작들이 주던 고유의 매력을 정갈하게 담아냈다. 유기적인 흐름도 놓치지 않는다. 그중 'The anecdote'에서 'Back in time'으로 뒤집히는 정서가 놀랍다. 새벽 공기처럼 명징하다. 이외에 'Writer's block'은 물론이고, 수록되지 못한 '비행'과 'Sleep tight'마저 독했다. 비참한 예술. 자조적이고 혼란스럽던 그의 삶이 이토록 매혹적이다. (전민석)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 썬파워
4년이라는 오랜 산고 끝에 나온 앨범이다. 김나언(키보드), 박태식(드럼)이 합류해, 조웅(보컬) - 임병학(베이스)의 2인 체제를 완전히 해체시켰다. 전반적인 톤부터, 제작 방식까지 달라지면서 귓가를 맴돌며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던 목욕탕 사운드는 조화로운 무지갯빛 화음으로 변했다.
시스템은 바뀌었지만 그들의 질주는 여전히 날카롭고 긴장감 넘친다. 이는 무작정 빠르게 달리는 폭주가 아니라 원숙한 속도 조절로 짜릿한 쾌감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기어를 바꾸듯 돌연 템포를 바꾸는 변주는 지루할 틈 없이 '이완'과 '활기'를 불어넣기에 충분하다. < 썬파워 >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온기'와 '건강미'까지 두루 갖췄다. 카랑카랑하고 밝아진 기타톤과 보컬, '성숙'을 담은 가사는 밴드의 새로운 전환기로 질주한다. (김반야)
라이프 앤 타임 - LAND
삶(Life)과 시간(Time)은 모두 '흐른다'는 속성을 가진다. 유려하고 거침없이 그들의 음악도 '흘러간다'. 기계처럼 반복적이거나 패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 자체가 생명력을 가진 것처럼 자유롭게 살아 파닥거린다. 이는 세 멤버의 숙련된 내공과 휘몰아치는 캐미가 뻔한 '정형성'은 모두 부숴버린 덕분이다.
이들은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노래한다. < LAND >로 들어가면 '빛'이 있고 '꽃'이 피며 '숲이' 나타난다. 그리고 가끔은 '급류'에 휩쓸리기도 하고 번잡한 'city'에 머물기도 한다. 내면의 깊은 곳을 파고 또 파는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가장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그래서 위대한 '세상'을 그려냈다. 앨범 자체가 소리로 만들어진 하나의 정교한 세계이며, 세계관이다. 그렇다보니 마치 여행자처럼 눈 앞에 펼쳐진 사운드스케이프를 경외감과 설렘으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김반야)
이승열 - SYX
지난 모습들끼리 충돌하고 뒤섞여 새로운 형상을 만든다. 그 진화의 경로가 마치 정반합의 구조와도 같다. < SYX >에는 그 위력이 극점에 달한 < Why We Fail >에서의 흡입력 높은 멜로디도 존재하고, 난해함이 극단으로 치닫는 < V >에서의 실험적인 사운드도 살아있다. 게다가 이번에는 전자음악의 갖은 요소를 덧대, 앞선 결과물들로만은 유추할 수 없는 또 다른 양상을 이끌어냈다. 단순한 구조와 격정으로 치닫는 전개가 묘하게 공존하는 일렉트로니카-록 'Asunder'서부터 이국적인 이미지를 담은 얼터너티브 록 'Ave', 헤비한 블루스 'To build a fire', 앰비언트 식 구성을 가진 '노래1'에 이르는 여정 속에서 이승열은 이제 평범한 팝 싱어송라이터가 아닌, 갖은 창의력으로 중무장한 과학자의 모습을 보인다. (이수호)
보아 - Kiss My Lips
모든 곡을 프로듀싱한 보아를 통해, 이제 K-pop의 선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앨범을 균형 있게 만들 만큼 성장함을 알 수 있다. 직접 쓴 멜로디와 여성스러운 보컬에는 'K팝 뮤즈'로서의 품격과 단단함이 녹아있다. 댄스부터 어쿠스틱까지 다양한 색채를 지닌 곡에, 드럼비트와 신스를 집어넣어 퍼포먼스의 개입을 열어놓은 점은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이다. 때문에 절제와 성숙을 지향하고 있어도, 댄스가수로서의 보아가 공존하며 모든 수록곡이 그의 느낌 아래 정돈된다. 송라이터라는 새로운 역할에 자신의 무드를 은은하게 녹여내고 경력에 맞는 우아함을 찾아가고 있어, 이전과는 다른 대견함이 들게 하는 보아다. (정유나)
이스턴 사이드 킥 - < 굴절률 >
역동하는 에너지가 꿈틀댄다. 광포한 포스트 펑크-그런지의 통쾌함은 록 씬에 거세된 '파워'를 되찾을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3년 만의 컴백 < 굴절률 >은 밴드의 진화를 표상하는 작품으로, 더욱 성숙해지고 거칠어진 사운드를 담아내며 깔끔한 멜로디 전개로 높은 흡인력을 지녔다. 여기에 순우리말로 핵심만을 찌르는 가사, 영미권과 다른 특유의 사운드로 '우리의 것'을 찾아나가는 정신까지 탁월하다. (김도헌)
한돌 - 한돌타래 571 가면 갈수록
제목의 571은 한글 창제 이후 571년에 발표된 앨범이라는 뜻이고 한돌타래는 한돌음악으로 생각하면 된다. 그 한돌타래가 5년 만에 돌아왔다. 모처럼 듣는 찡한 이 땅에 대한 사랑, 우리말 한글 사랑이 전편에 가득하다. '꽃길 따라서 구만리/ 꿈길 따라서 구만리/ 참 아름다운 내 나라/ 내 꿈이 걷는다, 걷는다..'('내 꿈이 걷는다') '넝쿨이 너의 몸을 칭칭 감았구나/ 얼마나 아프더냐 얼마나 서럽더냐..'('슬픈 한글날')
우리 시대의 감각, 언어와 전혀 다른 우리 고유 것을 강조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거기에 우리 삶의 상흔(傷痕)을 자기반성과 연민을 겸해 풀어놓은 게 감동이다. '뒷산에 도라지꽃 어른거리네/ 이 바다가 마르면 가게 되겠지..' 이 노래 '도라지꽃'의 부제는 '일본군 위안부로 살았던 세월'이다. 우리의 감성, 취향, 말 그리고 음악이 얼마나 미국화, 영국화 되었는가를 역으로 말해주는 앨범. 낯설지만 뭉클하다. (임진모)
더 모노톤즈 - Into The Night
두 주먹 쥐게 하는 강력 '에너지'도 있고 귀를 편히 감는 '멜로디'도 있다. 펑크와 개러지에다 1990년대와 그 이후 로큰롤 경향을 전투적으로 내걸지만 'Blow up', 'The beat goes on', 'Brown eyed girl'과 같은 곡들이 말해주듯 비틀스, 비치 보이스, 롤링 스톤스 등의 요소가 병치, 혼합되어 청취 친화력을 놓치지 않는다.
'곁'을 두르는 큰 사운드와 '속'의 친근한 느낌이라는 두 스타일의 대치를 단색(單色) 즉 모노톤으로 엮어낸 건 경이로운 컨버전스다. 이건 트렌드를 타는 센스가 아닌, 차승우와 멤버들이 쌓은 오랜 내공의 폭발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레트로의 수렴을 통해 지극히 모던하게 사운드 쾌도난마를 빚어낸 것이다. 연말에 나온 늦깎이 '올해의 앨범'! (임진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