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습과 퇴보 사이의 기로에 섰다. 프로그레시브 하우스 붐의 선봉장으로 높인 인지도를 팝스타와의 콜라보레이션까지 이어갔던 제드는 2010년대 후반 2년 연속으로 ‘Stay', 'The middle'을 연달아 빌보드 싱글 차트 탑 10에 올리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허나 트렌드가 변화하자 다른 스타 DJ들과 함께 빛을 잃고 침잠할 수밖에 없었다. 9년 만의 정규작으로 위기 극복을 꾀하나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오프닝 ‘Out of time’부터 잔향이 느껴진다. 활동 초기를 대표하는 ‘Clarity’, ‘Addicted to a memory'와 유사하게 훅의 멜로디를 초반부에 제시해 무드를 조성한 후 여성 싱어가 등장하는 전개를 택했기 때문이다. 한편 ‘Shanti’는 팝으로 이동하던 과도기 시절 그레이(Grey)와 함께했던 ‘Adrenaline’을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으며 ‘No gravity’는 2024년 버전 ‘Happy now’에 가깝다. 즉 < Telos >는 자신의 디스코그래피를 되짚어보며 매듭지으려는 시도다.
엘리 굴딩, 라이언 테더 등 유명 가수와 함께하면서도 그들의 목소리와 프로덕션의 개성 양쪽을 살렸던 지난날과 다르게 현재의 그는 균형을 잡지 못한다. 요절한 싱어송라이터 제프 버클리의 동명 곡을 리믹스한 ‘Dream brother’는 원곡의 기타 리프를 안이하게 늘여 놓아 보컬의 장점이 희석되었다. 엔딩 ‘1685’는 역으로 비트가 뮤즈의 색깔에 잡아먹히고 만다. 바흐의 ‘평균율 1번’을 샘플링해 음악의 아버지를 향한 찬사를 보내나 가벼운 팝 중심의 앞선 전개를 고려했을 때 다소 뜬금없는 등장이다. 점차 고조되는 신시사이저 이후 돌연 나타난 오케스트라는 한껏 끌어올렸던 분위기를 단숨에 소강시키며 작위적으로 마무리 짓는다.
특기인 갭리스 구성을 가져왔으나 임팩트가 덜하다. 각 곡의 양 끝을 단순히 이어붙이는 용도로만 사용하여 소리 상의 일체성이 덜한 탓이다. 데뷔 앨범 < Clarity >의 ‘Codec' - 'Stache', 전작 < True Colors >의 ’Daisy' - 'Illusion'에서 보여주었던 절묘한 트랜지션을 떠올렸을 때 더욱 아쉬운 대목이다. 전반적으로 신선함이 부재할 뿐만 아니라 이전의 방법론을 따라가면서도 발전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되풀이 속에서 번뜩임의 편린이 감지되기도 한다. ‘Sona'는 포크 밴드 올람(the olllam)과 협업해 아일랜드 전통 악기 일리언 파이프를 드롭에 활용하고 말미 변주에서 자연스럽게 ‘Lucky’의 메인 곡조가 어우러지게 했다. 팝의 문법을 따라간 ‘Automatic yes'는 후기 제드 특유의 통통 튀는 사운드와 존 메이어의 피처링이 잘 맞물린다. 전형성을 탈피하지는 못했지만 그 완성도가 준수한 트랙들이다.
‘Telos'는 그리스어로 끝 혹은 목적을 뜻한다. 원대한 제목처럼 그간의 역사를 한데 모아 커리어 총망라에 나섰으나 결국 호시절의 마이너 카피 또는 동어반복으로 귀결되었기에 아티스트에게 풀리지 않는 고민을 남길 작품이다. EDM 신이 플로어 위주 클럽 튠과 메인스트림 작법의 일부로 양분된 상황에서 어느 편에도 특출나지 못한 두루뭉술함은 제드의 미래에 대한 우려를 낳는다. 이 고비를 넘길 새로운 돌파구가 절실하다.
-수록곡-
1. Out of time (Feat. Bea Miller)
2. Tangerine rays (With Ellis) (Feat. Bea Miller)
3. Shanti (With Grey)
4. No gravity (Feat. Bava)
5. Sona (With the olllam) [추천]
6. Lucky (Feat. Remi Wolf)
7. Dream brother (Feat. Jeff Buckley)
8. Descensus (With Mesto) (Feat. Dora Jar)
9. Automatic yes (Feat. John Mayer) [추천]
10. 1685 (Feat. M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