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No.9
김종서
2005

by 이민희

2005.08.01

어떤 가수하면 상징처럼 떠오르는 장르적인 스타일들이 있다. 앨범 전체의 맥락으로 창작의 범위를 이해하기보다는 성공을 거둔 타이틀 곡만으로 가수의 이미지가 좌지우지되는 게 일반적이기에, 그런 제한적인 관용의 시선을 견지한다면 시나위 시절부터 시작해 최근 몇 년까지 목에 핏발을 세우고 열창하던 이 사나이는 당연히 록커로 널리 알려져 있다.

록 보컬리스트인 김종서는 밝고 찬란한 노래를 부르면 업템포의 록이 되고 나긋한 곡을 부르면 록 발라드가 된다. 록이라는 골격은 변치 않고 김종서의 분신으로 남아 그를 지켜주고 있다. 생각하기 나름으로 페르소나라 할 수 있을 고마운 둥지일 수도 있고 확장을 방해하는 부담스러운 굴레일 수도 있는데, 지금의 김종서에게는 후자인 것 같다. 어쩌면 둘 사이에서 망설이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직관은 그를 록커로 규정하고 있지만 4년만에 발표한 최근의 9집은 보컬을 강조한 게 아니라 뮤지션으로서의 자질이 더욱 또렷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건 '싱글'이라는 부분 아니라 '앨범'이라는 전체에 적용되는 얘기다.

타이틀 곡 '별'은 에너지를 심하게 아낀 록 발라드이다. 특유의 가녀린 듯 하지만 사실은 깊고 튼튼한 가성과 그 극적인 효과를 적절히 활용했고, 반면 과거의 메탈이라는 불안정한 백그라운드가 아니라 아주 정돈되어 있는 발라드의 전개 방식을 따르고 있다. 제도권의 록이란 너무 거칠어서는 안된다는 걸 정확히 알고 있는 김종서는 고품격이고 세련된 질감의, 하지만 어렵지 않은 음악을 완성했다. 박인영이 맡은 스트링 편곡도 이 별을 더욱 반짝이게 하는 데에 크게 일조한다.

거기서 드러내지 못한 정력은 가치중립적인 신화를 바탕으로 한 '칼네아데스의 편지'(배가 난파되었고 두 명이 살았는데 한 명을 의도치 않게 죽이고, 남은 자는 무죄 판결을 받게 되지만 평생 죄책감으로 여생을 보낸다는 내용의 제목), 김진표의 사포 같은 랩을 실어 파괴적인 사운드를 완성한 'Metropia', 피아(Pia)의 멤버들이 세션에 참여해 밀도 있는 연주를 들려주는 'Toxin' 등에서 토해낸다.

여전히 김종서는 사자후를 토하며 열창하는 미덕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록이라 볼 수 없는 'The mint'로 라벤다향 민트향을 날리는 노래를 선사하며 티타임을 권하기도, '신기루' '소야(小夜)' 같이 느리고 쳐지는 분위기로 낭만을 전하기도 한다. 한편 직접한 프로그래밍이 가장 돋보이는 'Lamia'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또 'Marry me'는 독특한 박자감과 새로운 발성으로 정체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멜로디가 도드라지지 않는 이 곡은 여느 곡만한 밀착감은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신선하게 들린다.

'별'과 '소야'의 편곡을 제외하고 작사 작곡 편곡 프로그래밍 등 모든 걸 해치운 김종서는 물론 전처럼 스스로가 주도하는 앨범을 완성했다. 9집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보면 김종서의 스펙트럼이 넓다는 것을 깨닫고 새삼 놀라게 된다. 히트곡 몇 곡으로 찍힌(?) 록커라는 사회적인 규정이 얼마나 편협했는지도 알 수 있다. 하지만 9집에서 가장 저자세인 곡 '별'을 타이틀 곡으로 낙점한 우리의 김종서는 여전히 록 파워나 록의 미학을 실천하는 가수이지 앨범으로 승부할 수 있는 야망의 재목이기를 주저하는 것 같다. 침착한 선택이 못내 아쉬워지는 4년만의 회귀.

-수록곡-
1. Tube
2. Lamia
3. The mint
4. 별
5. Marry me
6. 칼네아데스의 판자
7. Metropia (feat. 김진표)
8. Diamond forever
9. Toxin
10. 신기루
11. 소야(小夜)
12. 별 (radio edit)

전곡 작사 작곡 프로듀스 : 김종서
이민희(shamch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