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입체감은 <아바타>(Avatar)를 능가한다고 단언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지만 경이로운 영상미를 선사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셉션>(Inception)과 <매트릭스>(The Matrix)의 상상 공상 망상적 시각화를 결합해낸 것과 진배없는 또 다른 환상세계! 프렌치 일렉트로닉 듀오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처음으로 자신들의 전자음악에 오케스트라를 결합해 창출해낸 신나고 웅장한 면모도 영화를 쾌감과 감동으로 확실히 보강한다.
<트론: 새로운 시작>(Tron: Legacy)은 1982년 처음으로 개봉된 디즈니의 파격적 하이테크 영화 <트론>(Tron)을 리메이크 한 작품. 70mm 실사액션과 CG, 손수그린 애니메이션을 결합해 실험적으로 만든 컬트의 고전을 20년이 흐른 지금, 21세기 최첨단 기술력과 촬영기술을 동원해 재창출했다.
사실 오리지널과는 다른 또 다른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오리지널 감독이었던 스티븐 리스버거의 비전과 정신만은 그대로 유지하되 불가능이 없을 정도로 발전된 컴퓨터기술로 구현한 최첨단 영상을 보여준다. 더구나 첨단 스테레오스코픽(3D)기술이 사용된 영화는 <아바타> 촬영에 쓰였던 것보다 훨씬 더 첨단 카메라를 사용해 기존의 어떤 영화와도 차별화되는 비주얼을 선사하고자 했다. 1980년대 <트론>의 놀라운 등장에 못지않게 경이로운 충격을 즐겨 맞을 수 있을 것이다.
제프 브리지스(Jeff Bridges)와 브루스 박스라이트너(Bruce Boxleitner)가 원작의 배역에 28만에 복귀한 <트론: 새로운 시작>은 게임개발자 케빈 플린(제프 브리지스)이 갑자기 실종된 후 20년을 고아처럼 자란 그의 아들 샘 플린(개럿 헤들런드)이 알 수 없는 호출을 받고 플린의 아케이드를 통해 부친처럼 그리드로 순간 전송되는 과정을 발단으로 추후 그 안에서 펼쳐지는 험난하고도 신나는 모험과 여정을 그린다.
하지만 영화가 단순히 재미만을 쫓는 것은 아니다. 쿠오라가 특히 관심 있는 쥘 베른(Jules Verne)을 포함해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주역이 언급되기도 하고, 신의 존재와 같은 창시자 플린과 창시자인 그를 배신하고 반역을 저지른 클루 그리고 동료 알렌의 분신 트론, 불안전한 인간과 완벽을 추구하지만 그 역시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잉태된 두 자아간의 삼파전을 사실상의 핵심으로 케빈의 유토피아적 분신 쿠오라와 아들 샘 사이에 절묘하게 오가는 로맨틱한 연대감, 디스토피아적 현실에 대한 비판의 진중한 메시지를 혼합적으로 담고 있다. 물론 논리적으로 불가해한 부분들이 있어 플롯의 짜임새가 떨어지는 것은 감수해야 할 부정적 요소.
그 사이의 세월동안 디지털세계는 점점 더 거대해지고 시각적으로 굉장히 충격적으로 아름다운 그리고 훨씬 더 위험하게 변화했다. 독특한 컴퓨터 프로그램인 쿠오라(올리비아 와일드), 때론 전사로도 활약하는 그녀의 도움으로 케빈은 도대체 믿기지 않는 놀라운 풍광을 가로질러 유저들의 현실세계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특히 브리지스는 케빈이 자신을 형상화해 만든 마스터 프로그램 클루(C.L.U)까지 1인 2역을 소화해 관심을 더 모은다. 이외에도 그리드의 엔드 오브 라인 클럽을 운영하는 프로그램 캐스터 역에 마이클 쉰, 클루의 충성스런 프로그램이자 정보국장 자비스 역에 제임스 프레인, 가장 용맹스런 클루의 부하 린즐러 역에 아니스 체파, 그리고 젬 프로그램 역에 보 가렛이 조연으로 출연해 눈부신 활약을 보여준다. 극중 프로그래머 에드워드 딜린저 역으로 잠시 깜짝 등장하는 킬리언 머피(Cillian Murphy)의 세련된 모습도 반갑다.
원작과는 또 다른 “새로운 시작”은 조셉 코신스키(Joseph Kosinski)가 연출했다. 그는 XBOX(엑스박스), HALO(헤일로), SONY PLAYSTATION(소니 플레이스테이션), 링컨, 허머, 시보레 등의 CF를 제작했으며 건축과 프로덕션디자이너 그리고 음악과 엔지니어링에 조예가 깊은 감각파 감독. 2010년 성탄절을 겨냥한 디즈니의 하이-테크놀로지 대작영화의 사운드트랙에는 다프트 펑크(Daft Punk)가 합세했다. 디지털세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개하는 영화인만큼 전자음악의 선구자인 프랑스 일렉트로닉 듀오의 투입은 실로 유효적절한 선택.
코신스키 감독은 다프트 펑크가 이 영화에 관심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할리우드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면서 리메이크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일렉트로닉 듀오의 음악스타일 역시 <트론>에서 영향을 받았기에 서로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본 코신스키는 곧 이들에게 주제곡 작곡을 맡겼고, 둘은 영화 제작초반부터 작곡에 들어갔다. 주제곡은 그 후 3년에 걸쳐 완성되었고 관현악과 일렉트로닉, 그래뉼라 등이 결합된 독창적인 음악이었다. 프랑스 2인조는 주제곡뿐 아니라 사운드 디자인에도 참여했다. “이 영화에는 총 100여 분간 음악이 나온다. 그 음악은 비주얼과 매우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영화 제작초반부터 작곡을 시작했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다. 이제는 주제곡 없이는 이 영화를 상상도 할 수 없다."고 코신스키는 말했다.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언급하자면, 다프트 펑크는 프랑스가 배출한 2인조 전자음악단이다. Guy-Manuel De Homem-Christo(기 마누엘 드 오맹 크리스토)와 Thomas Bangalter(토마스 방갈테르)로 구성된 작곡가 겸 뮤지션 듀오는 1990년대 초반 프랑스 하우스뮤직분야에서 부상해 'Da funk', 'Around the world', 그리고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와 같은 차트 히트곡들을 연달아 내놓으며 지구촌 대중음악팬들에게 각인되었다. 그야말로 대중음악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거물로 우뚝 선 것이다. 시장성은 물론 두말할 것도 없다. 그들은 특히 외관적인 면에서도 상술의 귀재라 할만 했다.
오토바이 탑승자 헬멧을 쓰고 초현대적인 바디슈트를 입은 채로 무대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선보였다. 검은 펑크(funk)을 태운 일렉트로닉 록과 함께 독특한 패션으로 갈아입은 그들만의 차별화전략은 다소 비현실적이면서 공상적인 인상으로 팀을 특징화시키는데 성공했다. 혹자는 블루 맨 그룹(Blue Man Grou)이나 슬립낫(Slipknot)을 연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방갈테르는 이전 영화음악을 한 경험이 있었다.
2002년 독립작곡가로서 극히 논란의 여지가 많았던 프랑스영화 <돌이킬 수 없는>(Irréversible, 2002)을 스코어링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프트 펑크라는 그룹명을 걸고 영화음악을 작곡한 최초의 시도다. 그만큼 역작이란 말이다. 이들은 디지털월드에 카메오로 직접 출연해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를 연상시키는 캐스터 역에 마이클 쉰이 클럽의 분위기를 화끈 달아오르게 해보라는 요청에 일렉트릭 뮤직을 디제잉했다.
오리지널 <트론>의 음악을 작곡한 웬디 카를로스(Wendy Carlos)의 선례를 따라 다프트 펑크는 런던에서 녹음한 90인조 교향악단을 포함해 그들의 일렉트로닉 팔레트를 확장했다. 결과적인 사운드는 그야말로 굉장하다. 일렉트로닉 스코어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차치하고라도 이는 그렇지 않다. 경우가 다르다. 신서사이저를 단순히 합승차원에서 나눠쓴다든지 더 심하게는 오케스트라를 모방창출하기 위해 쓴 일렉트로닉 스코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피침(被侵)되는 인간세상과 그 대척점에서 인류를 추월하려는 디지털세계와의 충돌을 다룬 대단히 중요한 주제들을 내포한 <트론: 새로운 시작>은 내용 그 자체로 전자음악을 써야할 타당한 이유다. 다프트 펑크를 구성하는 두 음악적 팔레트에서 능숙하게 융합된 음악은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탁월한 사운드트랙 공급원이다.
전자음악의 양식적인 면에서 거기에는 조금의 존 카펜터(John Carpenter), 약간의 브래드 피델(Brad Fiedel), 다소의 방겔리스(Vangelis)와 조르지오 모로더(Giorgio Moroder) 그리고 확실히 웬디 카를로스의 음악적 성분들이 다프트 펑크의 고출력 에너지 리듬감을 통해 혼합되고 여과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선구적 전자음악작곡가의 스코어들보다 더 큰 범위와 더욱 영향력이 큰 서정성을 가진다. 카를로스가 오리지널 <트론>에서 주제와 관련해서 쓴 직접적인 묘사는 없지만 그의 흔적은 산재해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 접한 신서사이저 영화음악보다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런던교향악단에 의한 대규모 오케스트라의 기백이 적절히 가미되어 감화력은 배가된다. 인간적인 훈훈함과 열정을 전자장비에 의한 분위기와 배합함으로써 감정을 조율하는 중심요소로 작용할 뿐만 아니라 대단한 권위와 진지함을 두루 전송해 화상의 전달력을 증폭시킨다.
당연히 한스 짐머(Hans Zimmer)의 음악과 견주는 이도 있을 것이다. 특히 짐머의 최근 스코어 <인셉션>(Inception)을 들 수 있다. 'Recognizer'를 들어보라. 코드진행과 리듬적인 악상들에서 유사한 오케스트라의 분위기가 감지되지만 리모트 컨트롤(Remote Control) 소속 작곡가들이 이제껏 작곡한 그 어떤 것을 초월하는 정교함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다양한 분위기를 내는 음조나 음색들, 표본유형들, 그리고 1980년대의 신스 팝 사운드에 대한 향수어린 회귀 등의 구성요소가 <트론: 새로운 시작>을 더 입체적이고 변화무쌍하게 특화시킨다. 이 타입의 이전 다른 스코어들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새로운 시작”의 성과물. 짐머와 그의 동료나 문하생들이 자신들의 일렉트로닉 팔레트를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반면 다프트 펑크는 거대한 음폭을 최대한 망라해 무한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오프닝 'Overture'은 영화의 주제곡을 소개한다. 영웅적인 면을 강조하는 곡은 아론 코플랜드(Aaron Copland)의 클래식 'Fanfare for the Common Man'(서민들을 위한 팡파르)을 어렴풋이 떠올리게 할 정도로 금관악기의 팡파르가 웅대한 분위기를 이끈다. 'The Grid'는 제프 브리지스의 마음을 뒤흔들 만큼 드라마틱한 내레이션을 특별히 포함해 외계의 생경한 느낌처럼 이질적인 소리를 낸다. 스트링과 일렉트로닉 앙상블로 전하는 메인테마의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다. 서곡과 함께 영화의 도입부를 웅장하게 연다.
스코어에서 결정적인 큐들 'C.L.U', 'Flynn Lives' 그리고 'Finale'는 영화의 서사적인 풍모에 준하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테마곡인 한편 'End titles' 큐는 현대적이고 도전적으로 휘몰아치는 경쾌한 비트의 전자음 반주를 동반한다. 단순한 리듬과 비트의 반복적 패턴으로 달팽이관에 전자음을 쏴댄다. 진부하게 매력적인 고전적 러브테마도 있다. 'Adagio for Tron'은 매우 아름다운 첼로독주를 특징으로 심금을 울리지만 후반부로 전개되면서 암류하는 전자음과 고조되는 현 그리고 웅대한 브라스와 결합하면서 격정을 더 강화한다. 진혼과 드라마, 서사적 구조가 기막힐 정도로 절묘하게 융합되어 나타나며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전자오르간 반주에선 필립 글라스(Philip Glass)의 'Pruit Igoe & Prophecies'에 필적하는 영감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갈 만큼 강렬하고 웅장한 풍모를 과시한다.
액션에 쓰인 음악은 활발하고 강력한 사운드 질료들을 복잡하게 융합하고 용해함으로써 매우 효과적인 승부를 건다. 'Rinzler', 'The game has changed', 'Fall' 그리고 'Disc wars'와 같은 큐들이 그러하다. 추진하는 전자음을 겹겹이 증축하고 순화시키는 사운드디자인 그리고 우레와 같이 급속히 발전하는 타악기가 지속적으로 감정을 조율하는 현악 악절 위를 난타를 가하는 식이다.
'Outlands'는 반복 고조되는 현으로 역동적인 에너지를 가하는 한편 큐의 종반을 향하면서 활력이 쇠퇴하는 금관악기 효과가 돈 데이비스(Don Davis)의 관현악편곡 스타일을 연상시킨다. 'Rectifier'는 전조가 되는 혼의 폭발과 불길한 스트링의 음산하면서도 강렬한 불협화음으로 다가오는 위험을 감지할 수 있게 한다. 엘리엇 골든썰(Elliot Goldenthal)의 관현악작법과 유사한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일렉트로니카의 순간들은 무그 신서사이저의 명징한 화음이 인상적인 'The Son of Flynn', 둔중한 베이스 전자음이 지속적으로 깔리는 'Armory', 타악사운드와의 조화가 터미네이터를 언뜻 연상시키는 'Arena', 율동과 리듬감의 매끄러운 조화가 그야말로 끝내주는 'End of line', 잔뜩 고조된 공격성으로 몸을 흔들도록 자극하는 댄서블 테크노 'Derezzed', 관현악과 융화되면서 돌연 우아해지는 'Solar Sailer'에서 만끽할 수 있다.
'End of line'과 'Derezzed'는 특히 캐스터가 운영하는 “엔드 오브 라인”클럽에서의 화끈한 액션과 기막힌 조화를 이룬다. 이 일렉트로니카 사운드트랙들은 대단히 매력적이고 최면을 걸 듯 몽환적인 분위기가 압권. 큐로써 쓰인 이 곡들 중 일부는 1990년대 트랜스뮤직(Trance music)의 도취적인 몽롱함을 내포하고 있다. 방갈테르와 오맹 크리스토의 음악적 배경을 고려하면 정말 완벽한 감각적 조화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더불어 샘이 아버지 플린의 아케이드에 들어서 전기를 넣은 후 저니(Journey)의 'Separate way'(각자의 길)와 유리드믹스(Eurythmics)의 'Sweet dreams'(달콤한 꿈)이 내러티브적 음악으로 흐르게 함으로써 1980년대를 반추하게하면서 암시를 주는 음악사용도 매우 감각적이다.
꽤 신선하고 인상적인 데뷔다. 다프트 펑크는 <트론: 새로운 시작>을 통해 영화의 세계에 멋지게 입문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구성요소로서 뿐만 아니라 음악 그자체로도 대단히 매력적이고 신난다. 자신들의 음악과 질적으로 상통하는 디지털영화세계에서 자유로운 해방감을 마음껏 펼쳐냈다. 처음으로 자신들의 음악에 오케스트라를 융합해낸 일렉트로닉 사운드디자인은 지난 몇 년간 우리가 지겹게 들어온 오래된 사운드샘플과 다른 차원에서 생동감 넘치고 장대한 임팩트를 가한다. 오케스트라와의 통합 작곡이란 면에서 분명 높이 평가할 부분은 있지만 그렇다고 혁신적인 건 아니다. 그게 어떤 식이든 성대한 만족감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어두운 극장을 차라리 댄스플로어로 오인해도 좋을 만큼 클럽숭배자들의 소도구로 더 적합할 페티시 스코어!
-수록곡-
1. Overture(서곡)
2. The Grid(그리드)
3. The Son of Flynn(플린의 아들)
4. Recognizer(레커나이저/인식기)
5. Armory(무기고)
6. Arena(경기장)
7. Rinzler(린즐러)
8. The Game Has Changed(게임이 바뀌었어)
9. Outlands(외지)
10. Adagio for Tron(트론을 위한 아다지오)
11. Nocturne(야상곡)
12. End of Line(엔드 오브 라인)
13. Derezzed(화소분해)
14. Fall(낙하)
15. Solar Sailer(솔라 세일러/태양열 선)
16. Rectifier(렉터파이어/수정자)
17. Disc Wars(디스크전쟁)
18. C.L.U.(클루)
19. Arrival(도착)
20. Flynn Lives(플린이 살아있다)
21. Tron: Legacy (End Titles)(트론: 새로운 시작 종영인물자막)
22. Finale(대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