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과장이 섞이긴 했지만 '장기하에 비견되는 여자 아티스트'라는 말도 나왔다. 앨범은 발매 1주일 만에 3000장이 팔렸고, 현재 추가 주문까지 매진 행렬이다. 네이버 오늘의 뮤직엔 5월 첫째 주 '이주의 국내 앨범'으로 선정되었고, '괜찮다'는 입소문도 알음알음 퍼지고 있다. 결론은, 오지은의 2집 < 지은 >은 현재 인디 씬에서 가장 화제가 되는 앨범이다.
음악이 매우 신선해서일까? 아니다. 혹은 장르적 깊이와 스타일리시함이 마니아들을 열광시킬 정도여서? 그것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지은의 팬이 된 이들도 적지 않겠지만, 신선한 시도와 장르적 깊이로 무장했다고 평가되기엔 무리가 따르는 앨범이다. < 지은 >은 스스로가 곡을 쓰고 홍대 앞 인맥을 동원해 다양한 편곡을 취한, 그 동안 늘 들어오던 인디 계열 싱어송라이터 앨범 중 하나다.
차별 점은 오히려 캐릭터, 그리고 가사에 있다.
일단 '록'을 한다. 요즘은 인디계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들이 '홍대 얼짱'으로 불리며 '예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추세지만, 이걸 역행해 거칠고, 삐딱한 '밴드' 음악을 시도했다. 타이틀곡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는 후렴 부분에 강한 기타 반주가 흐른다. 잠깐이지만 징징대고 찌릿한 솔로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애써 보컬 볼륨을 앞으로 뺀 측면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최근 트렌드에 반(反)하고 있다.
밤에 겪는 불안, 고통, 절망을 노래한 '진공의 밤'에서 록적인 색깔은 가장 세게 표출된다. 스마일즈,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의 정중엽이 기타, 베이스를 맡았고, 혼돈스런 감정을 노래하는 곡의 주제와 쌍을 이뤄 블루지하고 어지러운 사이키델리아를 연출한다. 현장감이 우선인 라이브 연주에서 훨씬 맛이 배가될 곡이다.
살짝 거친 목소리 음색도 한 몫을 한다.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같은 밝고 가벼운 노래에서도 마냥 귀엽거나 예쁘지 않다. 너무 미(美)화하려 하지 않고 본래 가진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로 적절한 중성적 보컬 연기를 펼친다.
가사도 음악의 '날것' 분위기를 닮아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어떤 면에선 꽤 '털털'하다. 제목들도 '잊었지 뭐', '요즘 가끔 머릿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처럼 구어체가 많다. 오지은의 가사는 시(詩)적이거나 기발한 상징과 비유를 구사하진 않지만 공감이 되고, 재밌으며, 때론 통찰력이 번뜩인다. 재밌는 것들을 조금 길지만 인용해본다.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 날 사랑하고 있다는 너의 / 마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닌지 / 날 바라보는게 아니고 / 날 바라보고 있다는 너의 / 눈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날 사랑하고 있는게 아니고' 中)
“자학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 어른이 되어가는 건 지혜가 생겨나는 것 / 변명에 사용하는 에너지는 절약합시다” ('인생론' 中)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 뜨거운 물을 부으면 바로 되는게 아니라 / 5분을 기다려요 홍차 우려내듯이 /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 기다리는 즐거움을 내게 가르쳐주네 / 이젠 나도 조금 어른이 되어가나봐”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中)
“많이 웃는 하루를 보내도 / 오늘도 나는 잠 못 드는 / 이미 익숙한 새벽3시 / 샤워를 하고 좋아하는 향기의 로션을 천천히 바르고 / 요즘 제일 좋아하는 음악 들으면 나아질까” ('익숙한 새벽 3시' 中)
하얀 피부와 긴 머리가 클로즈업된 겉 사진만 본다면 '홍대 얼짱' 코드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 편으로 소담스런 록이자 진솔한 맨 얼굴의 포크이기도 하다. 홍대 앞에서 간만에 만나는 성기고 내츄럴한 여성이다. 그리고 이것을 마냥 중성적이거나 심심하게 놔두지 않는 섬세한 공감의 재미를 갖춘 앨범이다.
-수록곡-
1. 그대
2. 진공의 밤 [추천]
3. 요즘 가끔 머리속에 드는 생각인데 말이야
4. 날 사랑하는게 아니고 [추천]
5. 인생론 [추천]
6. 당신을 향한 나의 작은 사랑은 [추천]
7. 웨딩송
8. 푸름
9. 잊었지 뭐야
10. 익숙한 새벽3시
11. 두려워
12. 차가운 여름밤
13. 작은 자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