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붐을 이뤘던 에로 영화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우선 영상이 감각적이다. <엠마누엘>과 <O양의 이야기>의 쥐스트 자켕은 <엘르>지의 사진 작가였고, <빌리티스>의 데이빗 해밀턴은 <보그>지 카메라맨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그 좋은 증거일 것이다.
사진의 프레임을 벗어나 스크린으로 눈길을 돌린 사진작가 출신의 감독, 이들에 의해 몽환적이고 눈부신 영상이 그 무렵 단내 나는 에로 영화의 핵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더할 나위 없이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영화음악을 빼놓을 수 없다.
그 영화음악 덕분에 이들 에로 영화들이 싸구려로 천대받지 않고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포상되어 아직도 우리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프랑스의 대표적인 영화음악 작곡가인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와 그가 음악을 맡은 영화 <빌리티스>도 바로 그런 이미지로 떠오른다.
유명한 테마곡 ''Bilitis''는 후에 팀 라이스가 노랫말을 붙여 ''The second time''이라는 제목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테마를 변주한 ''Les 2 nudites''와 ''L''Arbre'', ''L''Campagne''은 물론이고, 여성의 허밍이 꿈결처럼 와 닿는 ''Scene d''amour''에서 파생된 ''Melissa''처럼, 이 사운드트랙의 핵을 이루는 주된 테마는 바로 ''Bilitis''와 ''Scene d''amour''다.
영화의 첫 장면, 교복을 입은 소녀들이 자전거를 타고 숲속 길을 달려 갈 때 깔리던 ''Promenade'', 그 소녀들의 춤 발표회가 있던 풍경 위를 채워 넣던 ''Spring time ballet'', 빌리티스가 한 밤중에 옷을 다 벗고 나무 위로 올라가 ''바람이 나무 사이를 불 때 이는 진공을 몸 구석구석 느끼던'' 순간의 ''L''Arbre'', 남성 혐오증을 지닌 빌리티스가 멜리사에게 이끌리며 서로 사랑을 나눌 때 깔리던 ''Scene D ''Amour'', 그리고 영화 곳곳을 수놓는 영화의 메인 테마인 ''Bilitis'' 등 프란시스 레이 특유의 감미롭고도 서정적인 선율이 영화를 신비롭게 채워 넣고있다.
그밖에 ''I need a man, rainbow''처럼 프란시스 레이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조금은 빗겨난, 그런 실험적인 사운드가 사운드트랙을 더욱 풍성하게 꾸려내고 있다. 이야기보다는 몽환적인 영상과 그 영상 위를 탄력 있게 흐르는 음악 덕분에 기억에 남는 영화다.
그렇게 음악이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비로소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되었다. 24년만의 황홀하고 설레는 만남이다. 음반은 ''고전''이라고 칭송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새삼 확인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