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심야는 한국 힙합의 철저한 별종이다. 엑스엑스엑스 시절부터 살롱 01을 끝으로 한동안 맥이 끊겼던 국내 익스페리멘탈 신의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했으며, 모두가 미디어에 매달렸던 2010년대 중후반 세태에 조소를 날린 탓에 그에게는 일종의 투사 이미지가 덧씌워졌다. 하지만 사회복무와 결혼을 거쳐 시스템 내부로 편입된 경험과 불교에 대한 탐구가 30대에 접어든 그를 새로운 국면으로 이끌었다. 계속 내비쳐 왔던 체념적 자세의 심화와 더욱 날카로워진 전자음악 중심 프로덕션이 6년 만의 정규작에 번뜩인다. 동시에 정돈되지 않은 형태로 결과물을 내놓았던 솔로 활동 초의 관습에서 벗어나 짜임새 또한 정교해졌다. 성숙과 달관이 함께 엿보이는 타협.
키를 잡은 프로듀서와의 조화가 빼어나다. 레이블 사운드서플라이서비스 소속 세 아티스트, 씨씨알과 씨제이비구오 그리고 마운트 엑스엘알은 2020년대 들어 김심야와 줄곧 호흡을 맞춰 왔다. 이들이 관여한 영역이 좁았을뿐더러 산개한 아이디어를 그대로 그러모았던 < Dog >와 비교했을 때 차이는 뚜렷해진다. 단적인 예로, 똑같이 드럼을 최소화한 두 인트로 ‘Drive slow’와 ‘Me life & nothing else’를 나란히 살펴보자. 비트에 밀착하기보다는 배경음 삼아 읊조릴 뿐이었던 전자와 달리 서늘한 사운드스케이프에 완벽히 녹아들어 각 마디를 또렷이 새기는 후자는 강한 몰입을 끌어낸다. 브레이크비트 위로 거침없이 랩을 뱉는 ‘T-h-i-r-s-t-y’의 도입부도 마찬가지다. 음반 내내 밀도 높고 견고하게 유지되는 주인공의 퍼포먼스는 < Moonshine > 이래로 가장 탁월하다.
음향과 래핑이 맞물리는 지점은 가사 면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긴다. ‘실컷 등지다 말고 왜 같은 걸 또 해 난’과 ‘비우고 지워 I move my feet, 의지 도려내 칼로’ 사이의 간극. 화에 차 있었던 전날을 떨쳐내려는 몸부림이 선문답 혹은 발원(發願) 같은 노랫말에 담겼다. 이 과정에서 겪는 번뇌가 트랙 배치를 통해 형상화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변화한 모습을 제시하는 두 곡 뒤 놓인 ‘T-h-i-r-s-t-y’와 ‘It’s that’은 타격감에 치중한 영어 랩과 공격적인 내용 전부 과거의 그와 닮았다. 이러한 끊임없는 충돌이 빚어낸 미학은 앨범 중간에서 절정에 도달한다. 음험한 기운을 두른 채 자조와 독설을 반복하는 ‘9 out of 10’ 직후 등장하는 ‘HDI HDI HDI HDI HDI HDI’는 낯섦을 단박에 쾌감으로 전환하는 순간이다. 잘게 쪼개어 흩뿌린 보컬이 풋워크 리듬에 섞이고, 돌연 나타난 소울 샘플이 분위기를 뒤집는다. 전작의 무질서를 의도한 혼돈으로 재구성한 결과다.
후반부는 익숙한 사운드에 몸을 맡기고 바뀐 태도를 피력한다. 앞선 트랙의 기조를 이어 유사한 결의 샘플을 사용하고 비트 스위치 구간을 두되 단순한 드럼을 뼈대로 한 ‘Zulu love’가 대표적이다. 그 안에서도 첫 번째 버스(verse)의 끄트머리에서 분노를 터뜨린 다음 긴 소강상태를 지나 ‘믿는 구석은 나의 믿음뿐, 가진 게 두 가지의 이름뿐’이란 깨달음을 풀어냄으로써 상술한 번뇌를 드러냈다. 시작에 비해 강렬함은 상대적으로 덜하나 기성 힙합의 문법을 따른 덕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선명하게 다가온다. ‘SOTS’ 속 ‘이제는 느껴 이 과정의 힘, 결과보다는 이 발전의 미를’이나 ‘부정과 혼란에 파업, 무를 느낄 때 난 감격’을 비롯한 가사는 10년 전의 김심야에게선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표현이다. 허나 이 각성은 엔딩에서 바로 깨어지고 만다.
‘원을 그려 다시 원점’ - ‘Keep counting’의 이 구절이 곧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또 세상에 맞서 날을 세웠던 자신조차 부정하는 말은 모든 것을 공(空)으로 되돌린다. 기실 윤회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은 그가 거듭 탐진치의 잔재를 시인한 시점에서 이미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리고 섣불리 가늠할 수 없는 열반을 향한 지난한 여정은 무언가를 좇고 포기하는 우리의 삶과 닮은 구석이 있다. 동일하게 종교에 기초하면서도 보편적인 울림을 전한 < Pop Is Cryin’ >이 그러했듯 < 도그마 > 역시 다소 복잡한 경로일지언정 끝내 한 곳으로 수렴하는 것이다. 외부와 스스로에게 얽매였던 자아를 내려놓고 걷는 길, 한때 굵은 선이 어지러이 찼던 캔버스가 텅 빈 채 붓질을 기다린다.
-수록곡-
1. Me life & nothing else [추천]
2. Move my feet
3. T-h-i-r-s-t-y
4. It’s that
5. 9 out of 10 [추천]
6. HDI HDI HDI HDI HDI HDI [추천]
7. Zulu love [추천]
8. Hanat dool set
9. SOTS
10. Keep counting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