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븐틴의 2020년대를 상징하는 키워드는 과잉의 미학이다. 특히 활동곡마다 일관되게 꾸린 콘셉추얼한 사운드와 후크는 ‘파이팅 해야지’를 비롯한 유닛까지 확장되며 하나의 큰 기조를 형성했다. 모두가 덜어내기에 바빴던 이지 리스닝 유행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구축한 정체성은 이른바 “군백기”를 틈탄 디에잇과 버논의 만남에도 고스란히 이어진다. 그 틀이 언더그라운드 댄스 뮤직으로 달라졌을 뿐. 채영의 < Lil Fantasy Vol.1 >처럼 멤버들의 취향을 적극 반영한 참여진은 대형 산업과 지하 클럽이라는 양극단의 출신에도 불구하고 절묘한 타협점을 발견했다. 오래간 경력을 쌓은 아이돌이 자율성을 보장받았을 때 얼마나 인상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가? < V8 >은 이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다.
타이틀 ‘Singasong’은 올 초 프로듀서 메카톡(Mechatok)의 내한 당시 세븐틴 콘서트 관람부터 예고되었던 조합이다. 스웨덴의 힙합 콜렉티브 드레인 갱(Drain Gang)과의 협업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집단이 지닌 실험성과는 상반되게 부드러운 스타일을 지향한다는 이유로 마니아들의 비난을 받곤 했다. 하지만 이 유순함은 K팝의 손을 잡는 순간 응당 갖춰야 할 미덕으로 뒤바뀐다. 버논이 즐겨 듣는다고 밝힌 블레이드(Bladee)의 힘을 빼는 방식을 닮은 래핑은 키치한 신시사이저와 어우러져 근래 하이브 내의 여타 EDM 차용과 다른 결의 자극을 제공한다. 그간 퍼포먼스를 주무기로 삼았던 디에잇도 마찬가지다. KC 레이블과 교류하며 트렌드 최전선을 누비는 배드트리가 주조한 ‘컬러링’의 싱잉 랩에서 동시대 힙합의 문법을 소화하는 감각이 엿보인다.
균형을 유지한 채 제작자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낸 경우도 존재한다. 키라라의 작품 세계와 맞닿은 정서의 ‘미아’는 두 아티스트의 공통분모부터 피어올라 후렴 보컬을 맡은 한정인까지 다다랐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달려온 이가 외치는 ‘시간 없어, 누가 우리를 좀 말려야 해’는 개인의 고백을 넘어 보편성을 획득한다. 뒤처져서는 안 된다는 조바심을 솔직히 내비친 ‘Rat race’ 또한 동일한 울림을 공유하는 트랙이다. 가사에 녹아든 아릿함에 조응할수록 깊어지는 몰입감은 오프닝에서도 유효하다. ‘Fan’이 겹쳐 들리는 ‘Friend’, 그룹의 추억을 수놓은 구절은 킴제이와 밀레니엄표 일렉트로팝 위에서 소구력을 갖춘 팬 송으로 거듭난다. 다만 첫 4박자를 반복하는 특유의 기법을 기워 넣은 퍼렐 윌리엄스 타입 비트 같은 ‘Girlsnboys’는 완성도로나 통일성으로나 유일한 흠이다. 위대한 프로듀서의 게으른 기악.
K팝의 영역으로 들어온 최신 경향은 많든 적든 정제를 거칠 수밖에 없다. 소위 “돈이 필요한” 지점의 세밀한 구현은 가능할지언정 현실적 제약 탓에 종종 어중간한 절충안으로 귀결되기도 하는 과정이다. < V8 > 역시 이 명제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허나 회사에 전권을 일임하기보다 두 사람의 안목을 바탕으로 직접 설계자를 찾아 나선 끝에 놀라울 만큼 기민하고 자연스러운 음반이 탄생했다. 추구하는 음악적 방향과 이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정확히 이해했기에 실현된 결과물이다. 8기통 엔진을 한껏 가동한 22분간의 질주 후 남은 열기가 이들이 더 머나먼 곳까지 나아가기를 바라게 만든다.
-수록곡-
1. Friend [추천]
2. Beat
3. Singasong [추천]
4. 미아 [추천]
5. 컬러링
6. Girlsnboys
7. 8DM
8. Rat race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