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가상 두 세계에 공존하는 이들의 과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존재 증명이었다. K팝의 전형성을 깨뜨리면서도 그 가운데 위치한 극복과 공감의 정서를 음악에 녹여온 플레이브는 2025년 < Caligo Pt.1 >의 연작인 이번 앨범으로 가장 인간적인 면모를 펼쳐낸다. 사이버틱한 효과음, 시티팝으로 쌓은 전편의 디지털 분위기와 달리 2막을 이끄는 축은 아날로그다. 요즘의 아이돌 시장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순수한 고백이 다섯 명의 버추얼 아이돌과 세상을 잇는 네트워크로 등장한다.
앨범 단위 안에서도 장르적 시도를 서슴지 않는다. 꾸준히 대중성을 지향하는 한편 아카펠라로 채운 ‘꽃송이들의 퍼레이드’로 문을 여는 등 실험적 트랙의 배치는 과거 선보였던 아프로팝 ‘Watch me woo!’와 비슷한 행보다. 강하게 몰아치는 록 기반의 타이틀 ‘Born savage’의 맹렬함은 생경하나 뮤직비디오의 시각적 연출과는 맞물린다. 하이톤의 전자기타와 그에 버금가는 고음의 보컬은 묵직한 ‘Dash’의 결의보다 날카롭고, 세계관 속 대적자 ‘칼리고(Caligo)'에 맞서는 래핑은 한층 거세다. 장황한 서사를 청각적 임팩트로 대변한 셈이다.
분주한 변주 속에서도 수록곡의 정서는 한 방향을 가리킨다. 알앤비 보컬 쏠과 함께한 ‘흥흥흥’은 봄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수많은 듀엣곡의 향취가 가득하고, 뉴잭스윙으로 청량감을 의도한 ‘그런 것 같아’는 1990년대의 해변을 옮겨놓은 듯한 신나는 썸머송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대의 주파수는 다르지만 많이 불리고 사랑받은 당시의 문법을 설레는 고백과 따라 하기 쉬운 한글 가사를 눌러 담음으로써 이어받는다. 정체성과 같은 단단한 보컬로 넓은 스펙트럼을 소화하니 형식적 표방이라기엔 진심이 역력하다.
입력하는 대로 도파민을 출력하는 사운드 전자음 말놀이로 너도나도 흥분을 유도하는 작금의 K팝 신에서 진솔함을 고수하는 뚝심을 결코 가벼이 볼 수 없다. 복잡한 스토리에 비해 피상적인 타이틀 곡과 압축한 듯 짧은 러닝타임 등 기존의 장벽을 무너뜨리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언제나 그랬듯 익숙한 편안함에서 오는 진정성은 유효하다. 어둡던 전반부를 지나 사람 냄새를 풍기며 다가온 < Caligo Pt.2 > 속 온기는 시공간을 넘어 전달된다. 손보다 따뜻한 마음이 닿으니 플레이브의 실재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수록곡-
1. 꽃송이들의 퍼레이드
2. 흥흥흥 (feat. SOLE) [추천]
3. Born savage
4. Lunar hearts
5. 그런 것 같아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