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범 이미지
개화
악뮤(AKMU)
2026

by 정하림

2026.05.12

작년 하반기 내내 울려 퍼졌던 '멸종위기사랑'이 떠오른다. 끝없는 혐오와 냉소가 판치는 세상, 자조적인 종말론을 합창한 한복판에서 반대로 가장 절실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제 이찬혁은 이러한 사랑을 악뮤로 전파한다. 따스한 햇빛을 비롯해 다시 일어설 용기가 누구보다 간절했을 이수현을 위해 그는 전곡을 단독으로 작사, 작곡하며 동생에게 희망을 건넨다. 먼 < 항해 >로 성숙을 이뤄냈던 7년 전보다 성장한 < 개화 >엔 한 시절에 마침표를 찍고 치유를 맞이하는 새로운 마음이 담겼다.


감정의 망망대해에 표류했을 시간 대비 앨범은 수수하고 담담하다. 그 자체로 평화로운 '소문의 낙원’을 건설하는 데엔 기본 박자에 충실한 드럼과 단출한 멜로디만으로 충분했고 슬픔을 긍정하는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은 악뮤식 발라드의 결을 따르며 복잡함을 거부한다. 이목을 끌고자 많은 것이 자극적으로 변해 가는 흐름에서 편안하게 가닿는 음반이 반갑다. 힘을 주기보다 빼기가 더 어렵지 않은가. 악뮤는 트렌드와 상관없이 쉬운 이해와 전달에 집중하며 이번에도 대중성을 지켜냈다.


평범한 소재에 의미를 부여하는 영감도 여전하다. 화폐 단위(bucks)와 벌레(bugs)의 유사한 발음에서 출발한 ‘벌레를 내고‘에선 작은 아이디어로 하루의 에피소드에 동심을 주입했다면, 캠핑하는 모습을 꾸밈없이 담은 ‘Tent’에선 조율이 덜 된 건반과 투박한 녹음본을 그대로 실어 한 편의 동화를 재생한다. ‘어린 부부’의 사랑을 확장해 화합에 도달하는 ‘옳은 사람’까지 소소한 풍경을 그들만의 시선으로 번역한 트랙에서 공감의 정도는 도리어 깊어진다. 그늘에서 걸어 나와 깨달은 삶의 태도가 시대를 채우는 말로 번지는 과정이다.


다만 주제를 다채로운 스타일로 풀어낸 < 항해 >나 뉴웨이브를 기조에 두고 콜라보로 각 아티스트의 색을 입힌 < Next Episode >에 비하면 음악 자체는 동어 반복에 가깝다. '봄 색깔'은 싱어롱 구간을 덜어낸 '물 만난 물고기'와 유사하고 '얼룩'은 '봄 색깔'의 후렴구 끝 음을 올려 살짝 변형하는 데 그친다. 관악기를 포함해 합주를 이룬 ‘우아한 아침 식사’는 구성적 측면에서 잔나비가 스치니 메시지의 선명도에 비해 소리에서 번뜩이는 재치가 덜하다. K팝이 득세하는 차트에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컨트리와 포크를 상단에 올려놓은 건 분명한 성과지만 신선함은 상대적으로 옅어졌다. 장르적 차별화로 박수를 보내기엔 악뮤는 이미 쌓아 온 것이 많은 팀이다. 


모든 창작은 결국 본인의 생각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이 개인적인 행위가 다수와 공명하려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하며 사회에 대한 탐구 역시 필연적이다. 정도와 시기는 달라도 모두가 저마다의 짐을 짊어지고 사는 사람들 사이를 한참 떠돈 끝에 악뮤는 누구나 머물 수 있는 피난처를 만들어 연대로 나아간다. 정해진 틀을 깨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창한 선언 사이로 일상을 따뜻하게 보듬는 위로가 만발한 순간. 특별하진 않지만 스스로에게, 또한 세상에 필요한 작품이었다.


-수록곡-

1. 소문의 낙원 [추천]

2. 봄 색깔

3. 벌레를 내고 [추천]

4. 기쁨, 슬픔, 아름다운 마음 [추천]

5. 햇빛 bless you

6. Tent [추천]

7. 어린 부부 

8. 옳은 사람

9. 우아한 아침 식사

10. 난민들의 축제

11. 얼룩

정하림(sielsia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