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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nny Tale
베리코이버니(verycoybunny)
2026

by 신동규

2026.04.18

직감에 의존한 경향이 크다고 할지라도 적중률만 높다면 그만일 수 있다. 2022년 발표한 첫 정규 앨범 < Where’s The Exit? >가 그러했다. 한동안 흘러간 장르로 취급받던 팝 펑크가 다시 들리기 시작하더니 인디 신의 약진이 팬데믹 정체기의 혈을 뚫던 시기였다. 곧이어 밴드 붐을 논하기 시작했으니 일선에 선 여성 싱어송라이터의 활약을 기억한다. 베리코이버니도 마찬가지다. 시류와 발을 맞췄다. 그로부터 네 해를 건넌 오늘, 언더그라운드 시장은 꾸준히 몸집을 불려 왔다. 수많은 축제가 비처럼 쏟아졌고, 나만의 작은 가수로 불리던 음악인이 순위권에 얼굴을 비췄다. 적당한 환경과 충분한 재가열 시간. 그는 다시 한번 바람에 몸을 싣는다.


감을 유지하는 일은 어렵다. 더욱이나 손수 음악을 만드는 경우에는 나도 모르게 파놓은 구덩이에 빠져들 공산이 크다. 누구나 겪는 잔병치레라지만, 이럴 때일수록 제작자의 직관보다 놓여진 규칙에 눈을 맞추는 편이 체증 해소에 더 나은 방법일 수 있다. 앨범 미학 혹은 수록한 면면의 일관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베리코이버니의 두 번째 정규작은 자기 문법을 발견한 인상적 사례다. 보다 성숙한 접근이 돋보인다. 비주류 장르에 줄을 서는 한편 테임 임팔라 풍의 실험적 색채로 싱글 수준에 집중하던 이전 음반과 달리 착실히 구축한 동화 속에서 푸르게 날뛴다. 


‘White dopamine’부터 ‘Surviving summer’에 닿는 초입의 흐름이 열쇠다. 근래 인디 시장에서 부쩍 관심도가 높아진 슈게이징 요소 위로 특유의 웅얼거리는 보컬 매력을 조절하며 기교를 뽐낸다. 앞뒤로 배치한 스킷 트랙은 완충재로 작용, 이는 소리 자극과 가수의 개성 사이 빈틈을 파고들어 우화의 결을 살리는 동시에 듣는 이로 하여금 콘셉트 앨범으로 바라봐 줄 것을 재차 권유한다. 작년 < B급 미디어 >로 입지를 다졌던 박소은과 함께한 ‘Dream hacker’ 이후 점차 소강상태로 접어드는 전개는 결국 왕자와 공주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평이한 결말처럼 비치지만, 다듬어진 음향과 발전된 사운드스케이프, 무엇보다 연주의 힘이 이를 지탱하며 지루함을 덜어낸다.


열매는 하고픈 말과 작품에 대해 고민한 흔적 너머에 있다. 넌지시 끓는 점과 가까워지며 머지않아 등장할 새로운 기수를 찾던 첫 독집 발매 시기의 인디 신과 지금은 판도는 다르다. 대형 공연장 매진 사례가 늘어나고, 차트 높은 곳에 뿌리를 내리는가 하면 외신이 먼저 주목하는 등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증량에 성공한 모습이다. 모든 과거가 그랬듯 유행에 따라 엇비슷한 결과물의 양산도 늘어났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되레 소신의 음악을 펼치는 이도 있다. 짧은 길이와 비주얼 우선주의가 대표하는 고자극 시대에도 동화책은 필요한 법. 베리코이버니의 소품집이 유독 달가운 까닭이다. 


-수록곡-

1. Bunny tale

2. White dopamine [추천]

3. My name is [추천]

4. Help! [추천]

5. Surviving summer (Feat. jisokury)

6. Fluttering bridge

7. 화성 아이

8. Dream hacker (Feat. 박소은) [추천]

9. Dear. my star

10. Made in love

11. The wind ferry

12. 보이지 않는 7의 나라

13. Kairos

14. 운명 몽타주

15. 이건, 우리, 지금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