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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istential
로빈(Robyn)
2026

by 한성현

2026.04.07

로빈의 일대기는 늘 해방이라는 단어와 함께한다. 1990년대 미국에서 활동하던 알앤비 팝 아이돌에서 전자음악과 인디 아티스트로 캐릭터를 리셋한 행보부터 그렇다. 댄스 팝의 교과서가 된 2010년 < Body Talk > 삼부작은 콘셉트 측면에서 인간을 초월한 사이보그를 꿈꿨고 2018년의 < Honey >는 상실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가 반영된 앨범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8년이 지나 돌아온 그는 자신을 둘러싼 갖가지 수식어를 탈피하고 더욱 본능에 기대는 존재로 거듭난다.

격렬한 댄스 팝이 로빈 음악의 외관을 상징했다면 정서적으로 그를 정의하는 것은 사랑의 아픔과 그리움이었다. 신보는 다르다. ‘Dancing on my own’과 ‘Call your girlfriend’, ‘Missing u’ 등이 선사한 ‘이별 댄스 앤썸의 아이콘’의 길을 반복하는 대신 흥분에 날뛰기 바쁜 ‘Dopamine’을 첫 싱글로 알렸다. 데뷔 초 ‘Show me love’와 ‘Do you know’라는 히트곡을 만든 작곡가 맥스 마틴과의 재회 트랙 ‘Talk to me’는 한술 더 뜬다. 혼자 누리는 즐거움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수화기 너머 파트너의 비대면 참여를 독려하는 가사의 수위는 늘 신체 운동에 기반한 팝을 만들던 전적을 생각해도 굉장히 노골적이다.

중년의 위기 혹은 늦바람으로 치부하기엔 열망의 화살표는 근원을 향해 있다. 관계 중 감지한 이별을 확인하는 ‘Really real’과 사랑에 대책 없는 인물임을 고백하는 ‘Sucker for love’, 이카루스처럼 날아가는 마지막 ‘Into the sun’이 보여주듯 육체라는 소재는 곧 더 큰 본질로 향하는 경유지다. 변화의 기원은 커리어 리부트 전 < Don’t Stop The Music >에서 발췌한 ‘Blow my mind’에서 찾을 수 있다. 연인과의 결합을 노래하던 구절은 어머니로서의 성장을 거쳐 개정판에서 젖먹이 아들의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눈빛이 되었고, 성적으로 들뜬 만큼이나 이제 그의 마음은 넓은 차원의 사랑까지 포용한다.

음반은 여러 가지로 해부하고 끼워 맞출 구석이 많다. 30분 내내 들뜨게 만드는 리듬과 마음에 깊이 닿는 목소리의 만남은 < Body Talk >와 < Honey >의 만남으로도 볼 수 있고, 전반적인 질감에서는 로익솝이나 제이미 엑스엑스 등 전자음악 뮤지션과의 협업이 남긴 영향도 보인다. 그렇지만 데이팅 앱도, 싱글 맘 신분도, 상담가도 다 꺼지라 일갈하는 타이틀 트랙처럼 < Sexistential >은 세세한 관찰과 분석이 어울리지 않는 작품이다. 그저 눈을 감고 무한대로 샘솟는 로빈의 팝 멜로디와 진동에 정신을 맡기면 된다. 존재의 확인이 거창할 이유 있나. 마음이든 몸이든 움직임을 느낄 때 우리는 살아있다.

-수록곡-
1. Really real [추천]
2. Dopamine [추천]
3. Blow my mind
4. Sucker for love
5. It don’t mean a thing
6. Talk to me [추천]
7. Sexistential
8. Light up
9. Into the sun [추천]
한성현(hansh990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