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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
산보
2026

by 남강민

2026.04.04

마음 맞는 이와 한가로이 걷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오랜 친구들을 모아 결성한 4인조 밴드 산보의 정규 2집은 걸음마다 피어난 수다로 가득하다. < 말괄량이 삐삐 > 속 주인공의 절친 이름을 제목으로 한 이번 앨범은 2024년 데뷔작 < 룸펜 >에서 선보인 생생한 이야기의 상대를 ‘아니카’로 좁힌다. 가까운 사이에서나 나올 법한 유머 섞인 횡설수설과 두서없는 투정의 연속이 그들의 깊은 관계를 대변한다. 불친절할 정도로 개인적인 고백에도 가슴 한편이 동하는 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각자의 ‘아니카’ 덕이다.

현장감 넘치는 스토리텔링이 시트콤과 비슷하다. 소소한 악기 구성과 또렷하지만 뾰족하지 않은 목소리는 인물 간의 에피소드와 독백 모두를 안정적으로 소화한다. 코미디와 비극을 모호하게 뒤섞은 대목도 극적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산마루’와 ‘앗차차’의 흥겨운 리듬에는 애타는 심정을 숨겨두었고, 안타까운 가사와 달리 신나게 지글거리는 ‘고상’은 극의 대미를 장식하는 클로징 송으로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 입 맞춰 노래하는 멤버들의 보컬 또한 어울림에서 오는 유쾌한 활기에 일조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리얼리티다. 과장된 연출보다는 현실감에 초점을 두며 솔직한 심경을 드러낸다. 미운 말로 투정하는 ‘약한마음’에는 후회가, 휘몰아치는 사랑 고백 ‘709’의 열렬함 속 아쉬움의 탄식이 보이는 것도 단편적일 수 없는 본심을 반영한 결과다. 모든 일을 함께해온 우리의 시간도 점점 줄어든다는 ‘저기요’의 씁쓸함까지 시퀀스의 일부이니 현재 진행형의 이 기록은 생명력을 얻는다. 20대 신인 밴드에 만연한 청춘 예찬, 맥락 만들기용 계절감도 경험담 앞에서는 관념적 사족일 뿐이다.

흐릿한 기승전결과 반복되는 멜로디가 심심한가 싶다가도 오히려 자극 없이 편안한 사운드가 산보식 단편선의 핵심임을 알 수 있다. 별도의 감정 유도가 아닌 허물없는 네 명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소중한 추억을 되새기게끔 만드는 설득력은 자연스러운 음악에서 더 빛을 발한다. 우정에 있어서는 백 마디 설명보다 기억이 가진 힘을 믿는 그들만의 화법. < 아니카 >의 공감대는 저마다의 서사를 겨냥한다.

-수록곡-
1. 산마루 [추천]
2. 고상 [추천]
3. 709
4. 약한마음
5. 거짓부렁
6. 저기요
7. 앗차차 [추천]
8. 럼블2
9. 그사람
남강민(souththriver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