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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ulu Pack
키키(KiiiKiii)
2026

by 정하림

2026.02.07

선공개로 내놓은 트랙 필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광활한 초원을 활보하던 소녀들이 'Delulu'의 도시를 거닌다. 이 신비로운 상상에 반짝이는 딥 하우스가 입혀졌으니 ‘4 walls’와 같은 과거를 기억하며 세련된 미감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의 눈길이 쏠리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 노래에 독특한 비주얼 요소를 더해 개성을 만드는 K팝 시장 내 판매 전략에서 키키는 작년 한 해 확실히 우위를 점했다. 당차고 주체적인 < Uncut Gem >, 우정으로 함께한 'Dancing alone'을 지나 < Delulu Pack >에선 그룹의 1년을 요약하듯 느낌표와 물음표가 공존한다.


유지된 콘셉트 사이 부각된 부분은 멤버들의 강점이다. 오류를 새 시대의 개성으로 변환한 '404 (New era)'에선 키야와 이솔의 묵직한 저음이 단조로운 비트 속 곡의 해상도를 높였다. 아련한 멜로디를 살려 용기를 불어넣는 'Underdogs'는 프리 코러스와 브릿지 구간에서 보컬 합이 돋보인다. 808 베이스, 변칙적인 드럼으로 하이퍼팝 색채를 가져갔던 'Groundwork'와 'BTG'의 노선이 다소 급진적이었다면 본작에서는 'I do me'의 몽환적인 요소로 독특함을 조금 눌러주며 타협점도 찾았다.


이미지가 강렬함에도 음악이 가리키는 이들의 모습은 아직 아리송하다. 하나로 모아지려 할 때쯤 정체성을 흩어지게 하는 후반부가 원인이다. 엉뚱한 매력이 드러나는 '멍냥'은 중독성과 별개로 그동안의 서사 밖에 위치해 있고 'Dizzy'는 심심한 구성이 반복되어 누구나 소화할 수 있을 정도로 무난하다. 흐름을 그대로 이어받은 'To me from me'에선 프로듀서인 타블로의 색이 더 진해 키키의 언어가 약하다. 선명한 초반부에 비해 갈수록 힘이 빠지니 갈피를 잡지 못해 적당한 안락함을 택한 건 아닐까 추측하게 된다.


흐릿한 마무리가 더 도드라지는 데는 짧은 시간에도 확연히 드러났던 청사진의 여파가 크다. 기분이 좋아지는 상쾌한 트랙과 이를 뒷받침하는 시각적 장치가 메시지와 잘 맞아떨어진 것이다. 덕분에 호불호를 불러왔던 반전 면모도 실험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가능성으로 치환되지 않았던가.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지점을 향한다면 망설이기보다 모험이 낫다.


-수록곡-

1. Delulu [추천]

2. 404 (New era) [추천]

3. Underdogs [추천]

4. 멍냥

5. Dizzy 

6. To me from me (Prod. TABLO)


정하림(sielsia2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