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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
신지훈
2025

by 박승민

2025.12.23

더 개인적으로, 더 단출하게. 미생에서 벗어나 완연히 성숙했음을 알린 정규 1집 < 별과 추억과 시 >는 오래된 장면을 연한 물감으로 그려낸 추상화와도 같았다. 다만 과거의 특정한 정경을 자세히 묘사하기보다 당시의 감정을 음률에 실어 스며들게 하는 작법이 비단 신지훈만의 방식은 아니었으니, 이제 이 젊은 작가는 그간 숨겨 뒀던 이야기를 통해 곁으로 다가가기를 택한다. 전날의 기억을 찬찬히 묶어 펴낸 시집 < 평화 >는 커버 아트로 사용한 뭉크의 < 태양 >만큼이나 찬란히 반짝인다.


오프닝 ‘아반떼’부터 바뀐 문체가 드러난다. 어쿠스틱 기타 한 대로 시작한 반주와 함께 첫 차의 추억을 열거할 때 순식간에 가까워진 거리는 덤덤히 노래하는 이별을 한결 애타게 만든다. 주변 사물을 소재로 사용하는 솜씨가 빛난 ‘밀크티’와 ‘수영장’ 역시 일기를 읽는 듯한 여운을 남기는 단편들이다. 유년기와 성인이 된 현재를 각각 우유와 홍차에 빗댄 일상적 비유, 섬세한 도입부 이후 긴 호흡으로 털어놓는 두려움의 정서가 각별한 까닭은 결국 목소리에 있다. 속내를 오롯이 전달하는 옅은 떨림이 포크라는 장르의 흥취를 소박하게 비추어 내는 것이다.


전작의 ‘구름 타고 멀리 날아’를 연상케 하는 ‘평화’의 성대한 편곡도 좋지만 이대로라면 소품집 이상의 감흥을 자아내지 못할 터. 의표를 찌른 최대 변주는 타이틀 ‘소년시절’에서 나왔다. 전주부터 밝게 울려 퍼지는 신시사이저와 명료한 일렉트릭 기타가 또렷이 한 시대를 가리킨다.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쏘아 올려 1990년대까지 이어진 팝 록의 역사, 그 시절의 조각을 되살려 떠나간 젊음에 보내는 작별 인사는 근래의 청춘 찬가나 복고와는 분명 다르다. ‘기억들은 바래져서 더 아름답지만’이라는 가사로 담아낸 시선은 ‘추억은 한 편의 산문집 되어’가 그러했듯 한때의 부족함마저 감싸안는 따스함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2020년 ‘꽃무늬 벽지’로 처음 발아시켰던 새싹이 끝내 열매를 맺었다. 갈피를 잡기 위해 분투했던 지난날의 노력이 ‘자유비행’의 ‘여기서는 그토록 넘을 수 없던 아픔들이 아주 작아 보여’란 노랫말로 구체화되는 순간 와닿는 감동은 그의 발걸음을 따라온 모두가 공유할 울림이다. 출발선의 흔적에 더해 두 작품 사이 3년의 세월을 설명하기에도 충분한 변화가 < 평화 >에 녹아 있다. 개화는 기다림만큼의 아름다움을 동반한다. 지금의 신지훈도 그렇다.


-수록곡-

1. 아반떼 [추천]

2. 평화

3. 서랍 속 엔딩

4. Komorebi

5. 밀크티 [추천]

6. 수영장 [추천]

7. 나무에 기대어

8. 소년시절 [추천]

9. 엔딩크레딧

10. 자유비행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