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인터뷰
진보(Jinbo)
벌써 세 번째 만남이다. < KRNB >를 막 공개한 2012년의 진보, < Don’t Think Too Much >로 복귀한 2020년의 진보, 마지막으로 데뷔 20주년을 맞이한 2025년의 진보. 그간 넓은 영역을 바삐 아우르며 활동해 온 그는 다시금 새 음반과 함께 이즘 사무실을 찾아왔다.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정규 5집 < Jbfm >은 진보라는 예술가의 음악 세계를 모아 펼쳐 둔 라디오와도 같다. 작품을 듣는 내내 떠올랐던 그의 커리어 속 자취를 직접 확인하며 되짚어 보고 싶었다.
베테랑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존재감, 그것이 이번 인터뷰에서도 뚜렷하게 다가왔다. 근작을 시작으로 지난 디스코그래피를 천천히 살펴 나가는 시간 동안 곧은 심지와 놀라울 정도의 섬세함이 자연스럽게 대화 속에 녹아들었다. 개인 앨범, 합작, 프로듀싱, 레이블 그리고 유튜브 채널까지. 정말이지 많은 방향과 형태로 찍은 발자국을 오롯이 담기 위해 애쓴 만큼 그 흔적을 모두가 발견하기를 소망하며. 참고로 < Jbfm >을 곁들이면 더욱 좋다.

먼저 < Jbfm > 펀딩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것을 축하한다. 최근 많은 국내 블랙 뮤직 음악가들이 펀딩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는데, 직접 흐름에 몸을 맡긴 소감은 어떤가?
목표치에 도달한 덕에 걱정이 많이 해소되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주시는 팬들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어 굉장히 의미 깊은 경험이었다.
발매 전 TW레코즈에서 진행된 앨범 발매 기념 공개 방송에는 팬을 초대했다. 팬들과 함께 만나고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을 좋아하는 아티스트로서 가지고 있는 생각이 있는지.
팬들과 내가 같은 주파수에서 공명하고 있다는 걸 떠올릴 때마다 신기하다. 내 활동에 의미를 부여하고 계속할 수 있게끔 돕는 분들이다. (기억에 남는 팬들과의 에피소드가 있는가?) 과거 뉴욕에서 공연했을 때 만난 샘이라는 친구와 가까워져 < KRNB, Pt. 1 > 당시 프로모션과 마케팅 면에서 도움받았다. 덕분에 하입비스트에 소개되어 국제적인 미디어를 통해 이름을 알린다는 성과를 거뒀었다. 아직도 가까이 지내며 서로를 많이 응원하는 인연이다. 또 미국에 살며 아낌없이 응원해 주는 2명의 팬도 떠오른다.
지난 인터뷰에서 가볍고 담백하게 앨범을 내고자 한다는 소회를 밝혔었다. 1년 만의 복귀도 같은 이유에서일까?
한동안 상념과 욕심이 너무 많아 공개를 꺼렸던 적이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음악 발매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이후 스스로 매년 음반을 내겠다는 계획을 세워 현재까지 실천 중이다.
그렇다면 < Jbfm >은 언제부터 작업이 시작되었는가.
올 초 착수했다. 오히려 집중적으로 몰두했다면 2~3개월 안에 끝났을 텐데 자투리 시간을 주로 활용하다 보니 나로서는 길다고 느껴졌다. (굉장히 빠른 속도다. 혹시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인가?) 당장은 발매 이후의 일들을 처리하는 단계라 많이 바쁘다. 하지만 작품을 낼 때마다 보완점을 떠올리는 편이라 아마 무의식적으로는 벌써 구상 중이지 않을까.
< Jbfm >은 라디오 콘셉트를 적극 활용했다. 스킷도 연설과 영어 내레이션, 유머러스한 대사 등 정말 다채로웠는데, 이러한 장치를 배치한 진보만의 의도는 무엇인지 소개해 줄 수 있나.
앨범 전체를 하나의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 스킷을 배치했다. 음원 시대가 오며 수요가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음반을 듣는 즐거움은 죽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팬 분들에게도 < Jbfm > 청취가 마치 테마파크에서 티켓을 끊고 노는 것처럼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체험이 되었으면 한다. 물론 음악적으로 색깔이 다른 곡들을 연결하기 위한 장치이기도 하다.
과거 그런 수단으로 카세트 테이프 덱 소리나 바이닐 노이즈를 사용했다면 2025년에는 무엇이 있을지 고민하다 스마트폰 음성 메모를 떠올렸다. 그 과정에서 내 주책스럽고 비밀스러운 사생활이 좀 공개되었지만 (웃음) 지금을 잘 반영하지 않았나 싶다. (가장 오래된 것은 무엇인가?) 2018년의 파일인데, 술탄 오브 더 디스코 콘서트에서 샘플을 위해 녹음한 것으로 기억한다.
연속적인 작업은 아닐지언정 조각조각 모아왔던 영감이 앨범의 형태로 발현되었다는 느낌이다.
작곡 스케치를 발전시키는 경우도 있고, 단순히 팬들이라면 이런 소소한 일상이 궁금할 거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나 역시 좋아하는 예술가들의 음성 메모를 듣고 싶어서 더 그렇다. 완벽하게 정제된 모습보다는 그들의 습작과 실패를 통해 그 사람의 여러 모습을 느끼고 싶다. (음성 메모를 훔쳐보고 싶은 아티스트를 한 명 꼽아줄 수 있나?) 퍼렐이 떠오른다.
또 전작들, 가령 ‘Baby’의 팔로알토가 그러했듯 래퍼들의 피처링이 곡 혹은 음반의 주제 의식과 잘 맞아떨어진다고 느꼈다. 특히 ‘종살이’의 저스디스가 그러했는데.
‘종살이’를 다 만든 시점에서 저스디스의 ‘Vivid’를 듣고 감탄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임팩트 강하고 완성도 높게, 또 비주얼까지 완벽히 표현했다는 생각에 바로 저스디스에게 연락해 피처링을 의뢰했다. 내가 ‘Vivid’ 스토리의 연장선을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각도의 이야기가 나왔지만 나 역시 저스디스라는 아티스트를 매우 존중하기에 그대로 싣게 되었다. 다만 박자가 조금 어려워 뮤턴트라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편곡 작업까지 완료하였다.
오래 인연을 맺은 더콰이엇의 ‘Time of our lives’나 ‘고독한 남자’의 비지도 빼놓을 수 없겠다.
더콰이엇과는 데뷔 초부터 20년가량 알고 지내는 사이다. 그에게는 사람들이 울컥하는 지점을 건드리는 능력이 있다. 괜히 소울 컴퍼니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소울풀한 친구라 (웃음) 그의 색깔에 어울리는 비트를 만들어 함께하게 되었다. 비지 형 같은 경우에는 이 시대의 얼마 남지 않은 멋진 낭만주의자다. 낭만을 지닌 사람들은 고독할 수밖에 없고, 또 상처를 지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나와 비지 형이 같은 곡에 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속의 그늘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 느꼈다.

< Don’t Think Too Much > 이후로 주변의 여러 환경이 바뀌었다. 저스트뮤직에 들어가 컴필레이션을 함께했으며, 올 초에는 득남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이런 삶의 변화가 음악에 어떤 방식으로 투영되었는가?
눈매가 부드러워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나를 절대적으로 사랑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두 명 더 생긴 덕분일 것이다. 또 여러 경험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분명히 넓어지고 있다. 옛날의 나였다면 주책맞은 스킷도 다 뺐을 테고 ‘Times of our lives’ 역시 나오지 못했을 거다. 화성과 리듬을 모두 초월하는, 삶의 경험이 없다면 만들 수 없는 그런 가사와 멜로디기에.
어느덧 데뷔 20주년을 맞았고 이번 펀딩에서도 < Afterwork > 15주년 기념 LP를 함께 선보였다. 당시부터 < Jbfm > 에 이르기까지 음악관의 변화가 있었다면 알려 달라.
나다운 것에 집중하자는 마음이다. 과거 흑인 음악을 더 추구했다면 지금은 트로트스러운 멜로디가 떠올라도 굳이 거부하지 않고 나의 정체성을 여러 방식으로 보여주고자 한다. 기본적으로는 한국 사람이지만 스페인의 순례길을 걸을 때는 여지없는 순례자가 되는 것처럼, 스스로에 대해 솔직해져 나 자신을 표현하는 게 편안해졌다.
작년 허시와 발매한 < PoPoMo >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오랜만에 나온 참 멋진 소울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기존의 합작과는 다르게 싱어와의 협업인 만큼 작업 과정이나 방법에 대해 살짝 귀띔해 줄 수 있나.
허시가 먼저 데모를 만들면 각자 작사·작곡을 진행하고 나머지 편곡과 마무리는 함께하는 방식이었다. 즉흥 속에서 특이함을 찾는 나와 다르게 허시는 장르 문법에 충실한 스타일인데, 오히려 그 덕에 서로 코디를 해주는 것처럼 의외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주도한 허시의 한국어 가사에서는 섬세함이 잘 묻어났고, 반대로 나는 ‘BYOB’를 통해 그동안 잘 하지 않았던 지르고 긁는 보컬을 선보였다.
< PoPoMo >는 ‘한국형 소울’을 표방하는 작품이다. 발매 이후에 소울이란 장르를 대하는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꼈는가?
연주로 참여한 신드럼, 김승현, 누기 같은 친구들이 각자 세계관을 잘 넓혀 가고 있다. 소울 딜리버리나 플랫샵 같은 밴드 역시 맹활약 중이니 이러한 동료들의 움직임이 전부 소울의 인식 변화에 기여하는 것 같다. 대중들이 이런 음악을 일상적이고 또 편하게 접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본다.
한편 저스트뮤직 입단 이후에는 AP 알케미 컴필레이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시의 작업물 중에는 < AP Alchemy : Side A >에 수록된 ‘Future bounce’가 기억에 남는다. 공연 연출 중 다 같이 기차처럼 줄지어 무대를 도는 구성이 참 재미있었다. 여태껏 주로 혼자 음악을 해왔던 만큼 단체 생활이 반갑기도 했다. 학교에 다니는 듯한 느낌도 들고, 젊은 음악가들 사이에서 에너지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 Circle > 이후로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마인드 컴바인드의 귀환을 기대해도 좋을까?
1집과 2집 사이의 텀이 11년이기 때문에 더 숙성이 필요할 것 같다. (웃음) 아직 별도로 작업을 시작한 단계는 아니다.
K팝을 재해석한 < KRNB > 시리즈가 시작된 지 13년 째다. 신개념의 리메이크였던 기억이 나는데, 요즘의 K팝을 다시 재해석한다면 시도해 보고 싶은 음악이 있는지.
과거에는 K팝을 최신 사운드나 생경한 장르로 바꾼다는 목표가 있었는데 이제 K팝 자체가 최첨단이 되어 버렸다. 반대로 근래 나온 곡을 옛날 스타일로 풀어내는 식으로 관점을 바꿔야 할 것 같다. 최근 음악 중엔 ‘Golden’이나 제니와 리사의 곡도 떠오르는데, 오히려 한국적인 색깔이 많이 옅어졌기에 그러한 느낌을 되살리는 방향도 재밌지 않을까.

프로듀서로서 여러 아티스트와 수많은 협업을 진행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화나 인상 깊었던 순간을 꼽는다면.
예전에 빈지노와 한강에서 즉석 작업을 했던 적이 있다. 당시 만든 곡이 크러쉬의 ‘Friday야’와 빈지노의 ‘Aqua man’이다. 둘 다 애정을 쏟은 트랙인 만큼 특히 기억에 남는다. 또 한번은 크러쉬와 작업하며 듀엣으로 화음을 쌓을 일이 있었는데, 사실 따로 녹음한 후 합쳐도 되지만 꼭 같이 불러야 한다고 고집하더라. 그때 크러쉬의 아날로그적 성향과 다정한 면모를 여실히 느꼈다.
또 20년간 왕성히 활동하며 진보라는 이름을 내걸든, 내걸지 않든 수많은 음악을 세상에 내놓아 왔다. 그 중 특별히 애착이 가는 곡 혹은 앨범은 무엇일까?
< Summer Freak: Sun, Rain, Love >에 수록된 ‘다시 일어나’다. 채상병 순직 사건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아직 진상 규명이 되지 않은 죽음을 기리는, 또 그 희생자들과 가족들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다. 내게도 애착이 깊은 트랙이고, 음악적으로도 추모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기에 그런 관점으로 다시 들어주시면 색다를 것 같다.
유튜브 채널에서 진행 중인 ‘진보적 음악관‘ 콘텐츠도 정말 유익하게 보았다. 어떤 의미로 시작한 프로젝트인지, 그리고 지금까지 소개한 음악인 중 누구를 제일 좋아하는지 알려 달라.
영화나 스포츠와는 다르게 음악 부문에서는 담론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 느꼈다. 플레이어 관점에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심하다가 기존 정보의 재생산이 아닌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쪽을 선택했다. 사실 소개한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인물이기에 단 한 명을 꼽기는 어렵다. (웃음) 전면에 나서는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부터 엔지니어까지 한 음악을 만드는 모든 이들에게 존경을 표하고자 한다.
네오 소울을 기반으로 하는 음악가로서 최근 들려온 디안젤로의 타계 소식도 많이 안타까웠을 것 같다.
디안젤로는 소울을 다시 무대 위에 올려놓았다. 네오 소울이라는 명칭이 가진 뜻과 그의 행적을 생각해 보면 사랑을 멋진 것으로, 힙한 것으로, 심지어 상업적인 것으로 만든 게 그의 가장 큰 업적이다. ‘Make Love Great Again’, 그런 의미를 떠올리니 < Black Messiah >라는 표현도 이해가 가더라. 생존하기에 바쁘고 재미만을 추구하기 바쁜 현대 사회에도 다시금 메시아가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는 것 같다.
계속하여 흑인 음악을 추구해 온 아티스트로서 최근의 리스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힙하다는 말은 단순 외관에 대한 표현이 아니라 깨달음의 문제, 즉 눈을 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흑인 음악의 여러 분파 중 소울은 정신적 각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자신의 지적인 자각을 멋진 음악으로 승화시켜 거기에 사람들이 춤출 수 있도록 만드는 건 정말 위대한 일이니, 그러한 장르의 본질과 뜻에 대해서도 여러 방향으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아티스트, 곡이나 앨범을 말해 달라.
수많은 예술가 중 제일 마음을 열고 믿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단연 스티비 원더다. 엄청난 재능을 펼치면서도 사회적인 이슈에 대해 침묵하지 않았기에, 단순 뮤지션을 넘어 거의 성인의 반열에 오른 평화와 사랑의 전도자다. 곡 역시 나를 음악으로 인도한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를, 앨범으로는 < Songs In The Key Of Life >를 고르겠다. 지적인 자각, 영혼의 치유, 삶 속의 온갖 감정, 기술적인 혁신 등 모든 것이 담긴 마스터피스다. 과거 촬영차 남아공에 갔을 때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보며 ‘Joy inside my tears’를 듣는데 당시 나의 상황과 모든 게 맞아떨어져 눈물을 쏙 뺐던 기억이다. 그에게 아름다움 속에는 슬픔이 들어 있다는 배움을 얻었다.
진행: 손민현, 박승민, 박시훈, 정하림, 남강민
정리: 박승민
사진: 정하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