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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
저스디스(JUSTHIS)
2025

by 박승민

2025.11.27

데뷔 이래 작업물 없이도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던 래퍼, 한때는 언더그라운드의 곧은 자존심으로 불렸던 래퍼, 동시에 자본의 손을 잡은 후 직접 팠던 함정에 빠져 버린 래퍼. 모든 수식어가 최근 힙합 신에서 가장 뜨거운 한 사람을 가리킨다. 소용돌이의 중심에 선 저스디스는 여러 미디어에 출연하면서도 줄곧 정규 2집을 예고해 왔으나 턱 부상이라는 예기치 못한 걸림돌을 계기로 그 양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난관을 스포트라이트로 바꾸는 것 역시 그의 능력이었으니, 전무후무한 규모의 홍보와 이에 뒤따른 열띤 반응은 오직 저스디스이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K팝 산업으로 편입되면서도 체계에 비판을 날린다는 모순, 사실 이는 지난 10여 년간 조각난 채 전시되었던 허승이라는 사람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마침내 세상에 나온 < LIT >은 어지러이 흩어진 파편 전부를 포함한 집합체다.


그간 부침이 있었다고 한들 저스디스의 테크닉은 여전히 수준급이다. 특히 경악스러운 오프닝 ‘LIT’은 오랜 기다림에 수반되는 기대감을 완전히 충족시킨다. 다층적인 질감의 베이스 위로 역사를 훑으며 박자를 밀고 당기는 스타일, 변주에 조응해 기어를 전환하는 퍼포먼스는 근래 나왔던 숱한 인트로 중에서도 단연코 제일 뛰어나다. 강점 중 하나인 스토리텔링은 ‘내가 뭐라고’에서 유감없이 발휘되며, ‘내놔’의 도입부는 앨범이 표방하는 장르인 재즈 힙합의 질감을 잘 살린 예시다. 수차례 존경을 표했던 빌리 우즈(billy woods)식의 드럼리스를 구사한 ‘Lost’에서는 피아노 사이로 브라스를 투입한 비트에 찍어 누르는 발음이 맞아떨어져 음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이처럼 작품의 핵심을 초반 몇 트랙만으로 구현해낸 한편 ‘돌고 돌고 돌고’ 두 번째 버스(verse) 도입부의 플로우나 'XXX'의 어색한 싱잉 랩같이 다소 작위적인 대목 또한 존재한다. 메시지를 강조하려다 도리어 래핑의 매력이 줄어든 경우들이다.


저스디스는 < LIT >에서 참으로 많은 가사를 적어냈다. 개인사와 신 내부의 이야기, 사회 문제 등을 축으로 하여 각종 사건과 그 소회를 풀어놓는 방식은 지극히 파편화되어 있다. 다만 이러한 담론이 특별한 시사점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전작들에서 종종 드러냈던 날카로운 통찰보다는 그저 현상을 나열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그 예로 ‘반대 손으로 폰 안에 아이돌 보는 아이들’‘코로나 사망률보다 한국 일본 자살률이 더 높아’(‘Interrude’) 등의 표현은 7년 전 < 4 The Youth >의 ‘Cooler than the cool’에서 유사하게 내놓았던 것들이다. 마약과 낙태를 비롯한 터부에 관한 언급도 점점 자극을 끌어내기 위한 단편적인 사용에 그치며 처음의 충격이 줄어들고 만다. 미로를 헤쳐나가는 감상자에게 동기 부여를 제공해야 함에도 음반을 지배하는 수사법이 이미 전반부에서 완성된 형태로 나타났기에 동어반복이라는 인상만 남긴다. 이를 탈피하기 위해 가져온 ‘Can’t quit this shit’ 속 일리닛의 피처링만 경이로운 플로우와 압축적인 메타포로 빛날 뿐이다.


그리고 이 같은 특성이 작품을 관통하는 이야깃거리를 만들었다. ‘번역 중 손실’이라는 제목에 맞게 오독을 전제로 무수히 산개한 메시지를 그러모아 이루어지는 해석. 만약 저스디스가 마지막까지 그 정체를 숨겼더라면 각 라인에 천착하고 스닉 디스의 표적을 찾는 퍼즐 맞추기가 단순 일회적인 유희로 소비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독의 키는 엔딩 ‘Home home’을 통해 너무나도 쉽고 얕게 제시된다. 논쟁적 인물 유승준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대사는 긴장감을 더하는 연출이 합쳐져 일견 생경한 듯하나 피상적이란 약점 하에서는 앞선 저스디스의 가사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앞서 길게 늘어놓았던 문제의식이 다시 짧게 반복되고, ‘This is your home’이라는 말과 함께 간단히 카메라를 청자에게 들이미는 순간, < LIT >은 끝내 스낵 컬처로 전락하며 스스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 LIT >은 반쪽짜리 음반이다. 이는 그의 분절된 서사에 관심을 가진 이들만 깊은 곳으로 끌어들이며 그 외의 타자를 몰아내는 배타성에서 비롯한다. 긴 롤아웃마저 구성 요소로 기능한다는 특징 역시 진입 장벽으로 작용했다. 요즈음의 한국 힙합 기조에서 잠시라도 랩 자체에 주목하도록 만든 점은 분명 의미 있지만 크나큰 피로감과 구조의 헐거움까지 소화하기란 쉽지 않다. 결국 저스디스의 혼란했던 행적이 고스란히 녹아든 산물은 온갖 지지대를 세우고 살을 붙이는 과정에서 그 자신조차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커져 버렸다. 끝으로 던질 수 있는 질문, 과연 < LIT >은 ‘그 자체로’ 뛰어난 작품인가? < 2 Many Homes 4 1 Kid >로 신 전체를 충격에 빠트렸던 2016년의 그라면 답했을 것이다. 수많은 해석의 여지가 곧 훌륭함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진실을. 복잡함은 완성도의 동의어가 아니다.


-수록곡-

1. LIT [추천]

2. 내가 뭐라고 (Feat. 범키) [추천]

3. 내놔

4. Lost [추천]

5. Don’t cross

6. Curse

7. Interrude

8. 유년

9. Vivid (Feat. 인순이)

10. Dusty mauve intermission

11. 돌고 돌고 돌고 (Feat. 라디)

12. Thispatch

13. Wrap it up

14. Can’t quit this shit (Feat. 일리닛) [추천]

15. Thisisjusthis pt.III

16. 친구 (Feat. DEAN)

17. 내 얘기

18. XXX

19. Lost love (Feat. DUT2, Street Baby & GongGongGoo009)

20. Home home

박승민(pvth05m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