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서정 포크의 거목, 시인과 촌장ㅣ신동규의 시대연결

시인과 촌장

by 신동규

2025.10.16

모든 음악은 시대를 전제하고, 모든 시대는 저마다의 유산을 남깁니다. 그렇게 남겨진 수많은 선물은 대중으로부터 명곡, 명반 등의 칭호를 부여받고 끊임없이 호출되며 세대를 이어왔습니다. 분명 시간을 뛰어넘는 무언가가 담겨있기 때문일 겁니다. 협소했던 과거는 다양한 보기를 제공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음악을 진정으로 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만큼 많이 들리기도 했고, 찾기도 무지하게 찾았습니다. 이제 막 20대 중반을 넘어선 저의 경험담은 당연히 아니고요, 그 위 선배 세대가 전해 준 추억의 일편이었습니다.


반면 오늘날은 어떤가요. 너무 많은 선택지가 되레 역사의 축복이 현재에 닿는 것을 방해하는 건 아닌지 고민해 봅니다. 제아무리 지난날의 영광이 빛난다 하더라도 찾는 이가 없다면 계속되지 않겠죠. < 시대연결 >은 말 그대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국내외 전설들을 다시금 소환해 세대 간의 시제를 연결하는 데 힘을 보탭니다. 글은 지금 젊은 세대에게 맞춰 쓰일 것이며 ‘아, 이 정도는 알아야 하나보다. 한 번 들어볼까?’ 정도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겠습니다. 첫 회의 주인공은 서정 포크의 거목, 시인과 촌장입니다.



난데없는 전염병에 모두가 활기를 잃어가던 5년 전, 광화문 어느 건물 벽면에 붙은 글귀를 보았다. ‘세상 풍경 중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 /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맞아 그렇지. 탄식을 뱉었다. 음악의 본질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도 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에 그 목적과 해답이 있다면 모름지기 우리와 가장 먼저 얼굴을 맞댈 노랫말에 사실상 정수가 담겨있을 것이라며 나름의 답을 내렸다. 빼앗긴 일상 속 한줄기 힘이 된 문장. 이렇듯 잘 쓰인 가사 한 줄은 시대의 뒤바뀜 속에서도 민중의 부름을 받는다. 

시인과 촌장이 그렇다. 들국화가 촉발한 록의 새로운 바람이 1980년대 젊은이들의 발구름을 재촉했다면, 이들의 포크는 심적 동요를 불러일으켰다. 소박하면서도 명징한 함춘호의 기타, 진정한 시인 하덕규의 아름다운 낱말, 그 안에 담긴 본의, 아픔, 사랑 그리고 인간. 댄스 음악 시장이 본격적으로 개화하던 당시 방송 출연 하나 없이 전 세대를 아울러 선택받은 시인과 촌장은 곧 예술성과 서정성의 승리였다. 

시작은 하덕규와 오종수 둘의 만남이었다. 이들은 같은 시기 출간된 서영은의 단편소설 < 시인과 촌장 >에서 이름을 빌려 와 1981년 첫 선을 보였으나 그리 반응이 좋진 않았다. ‘짝사랑’과 ‘님타령’ 등이 대학가 등지에서 이따금 들리기도 했지만 인기곡이라기에는 부족한 수준이었으며 후자의 경우 1970년대 말 ‘그대로 그렇게’와 ‘가버린 친구에게 바침’으로 알려진 밴드 휘버스의 보컬 이명훈이 독집 활동 시기에 불러 오히려 그의 목소리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였다. 결국 원년 멤버 오종수는 생활상의 이유로 팀을 떠났고, 홀로 남은 하덕규는 긴 시간 휴지기를 가져야 했다. 

‘푸른 돛’, ‘사랑일기’, ‘고양이’ 등 두 번째 앨범에 실린 곡 대다수가 이때 쓰였다. 녹음만이 남은 상황, 전작과 같은 듀엣 구성을 원했던 하덕규에게 들국화 최성원은 함춘호를 소개했다. 1980년 전인권과의 활동으로 출발한 그가 2년 넘게 종적을 감추고 대구의 어느 라이브클럽에서 연주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었다. 하덕규는 곧장 그를 찾아가 그간의 작업물을 들려줬다. 함춘호는 “모처럼 그림이 그려지는 음악”을 만났다며 그길로 서울로 따라나섰다. 풍경이 떠오르는 음악이라. 둘 다 미술을 전공했기 때문이었을까. 머지않아 전성기를 맞이할, 이른바 시인과 촌장 2기의 출발이었다.


배경이 1980년대라는 점에 주목하자. 잠을 주지 않는 숱한 밤들 사이 울분도 아름다울 수 있다고 답한 두 청년의 나긋한 아우성이 빛난다. 함춘호의 합류로 완성된 < 푸른 돛 >은 알레고리와 은유의 미학이 두드러진 시대의 산물이자 서정의 극한이었다. 그 중심은 역시 가사. 이들의 음악 세계에는 유독 자연물이 많이 등장한다. ‘비둘기’, ‘고양이’, ‘무지개’, ‘진달래’ 등. 특히 비둘기는 앨범의 초입, 중간, 말미에 각각 ‘비둘기에게’, ‘떠나가지마 비둘기’, ‘비둘기 안녕’으로 배치되어 작품성을 더한다. 주지하다시피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다. 끝내 함께하지 못하고 인사를 고하는 마무리는 곧 당대의 전면을 비춘다. 

‘그 잿빛 날개는 너무 지쳐 있겠지만 다시 날 수 있잖아 / 
착한 사람들은 아직 널 사랑하는데’ (‘떠나가지마 비둘기’ 中)

‘햇빛을 쪼아먹고 살던 내 착한 비둘기는 나와 헤어져 / 
그가 살던 곳으로 날아가 새털구름이 되었어’ (‘비둘기 안녕’ 中)

세태의 아픔과 청춘의 호소가 정교하게 깃든 한편 그 모양새는 온순하고도 맑았으니 TV 출연 없이도 라디오를 통해 무수히 전파를 탈 수 있었다. ‘사랑일기’와 ‘풍경’이 대표적이다. 하덕규는 일상 속 눈 익은 장면들을 하나둘씩 포개가며 우리네 삶에 숨을 불어넣었다. 그러면서도 비둘기 삼연작이나 ‘고양이’의 이채로운 장치, ‘매’의 기타 연주 등 당시 국내 대중음악에선 찾아보기 힘들었던 전위적 요소를 접목해 예술성을 한계까지 끌어올렸다. 그가 직접 그린 앨범 자켓을 보며 때때로 평온함을 느끼곤 하지만 실상은 역사가 두고 간 상흔과 같다는 점을 매번 직시하게 된다.


시인과 촌장이 자신만의 저변을 넓힐 수 있었던 배경에 동아기획을 빼놓을 순 없다. 조동진, 김현식, 들국화, 빛과 소금, 봄여름가을겨울, 박학기, 장필순, 신촌블루스, 어떤날, 푸른하늘, 이소라 등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음악가들이 거쳐 간 이곳은 1980-90년대 언더그라운드와 메인스트림을 넘나들며 흐름을 선도한 예술공동체였다. 2집의 성공 이후 ‘연주자’에 뜻을 품고 홀로 나아간 함춘호의 자리를 어떤날의 조동익이 채운 것 또한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외에도 이병우, 허성욱, 김영석, 최성원 등 동료들이 한데 모여 늘 그래왔듯 제작에 힘을 보탰다.

1988년, 그렇게 세 번째 정규작 < 숲 >이 세상에 나왔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모든 곡은 하덕규가 직접 썼다. 뚜렷한 차이라면 시선의 종점이 달라졌다는 사실이다. < 푸른 돛 >이 눈앞에 놓인 현실에 신음한 결과였다면 이번 작품은 내면을 탐구한 고독의 소산과 같다. 소위 ‘팔칠년의 격동’을 지나며 하루가 멀다고 세상 모든 것에 분개하던 ‘나’를 돌아본 성찰의 시작. 하덕규의 기독교적 관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던 환경이었다. 2000년 조성모의 리메이크 앨범에 실려 큰 사랑을 받았던 ‘가시나무’를 비롯해 ‘새날’, ‘좋은 나라’는 끝없는 반성과 자각 끝에 태어난 명곡이다. 

‘새털구름’과 ‘새봄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은 ‘비둘기 안녕’과 ‘푸른 돛’의 소재를 잇고, ‘나무’에서 ‘숲’으로 갈무리되는 자아 성장의 서사는 작품성의 건재를 위시한 한국 포크 역사상 가장 값진 성취 중 하나다. 결국 < 숲 >은 불가피한 희생과 눈을 마주쳐가며 총구를 바깥으로 돌리던 당대 음악계에 ‘과연 나는 떳떳한가’,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새겨넣은 깨달음의 신호탄이었다. 


음악 앞에 기꺼이 발가벗겨진 하덕규는 이후 목회자의 길을 걸었고, 함춘호는 국내 최정상급 연주자가 되어 수많은 곡에 이름을 올렸다. 열두 해 만에 의기투합해 신보 < The Bridge >를 발매하기도 했으나 이를 끝으로 시인과 촌장은 짧고도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어둡고도 싸늘했던 기억, 동아기획의 깃발 아래 청춘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인 글과 말의 힘. 그 기저에는 인간을 향한 애정과 평화를 기다리던 소망이 배어 있었다. 

지난달 KBS < 전국투어콘서트 > 제주 편에서 오랜만에 두 사람이 얼굴을 비췄다. 방송은 25년 만이라고 덧붙였다. 이들의 무대를 보며 언제나처럼 당시를 경험해 본 적이 없음에도 가슴이 아팠고, 수차례 동경했으며 끝으로 감사했다. 한편 유독 이날은 오늘날의 우리 세대가 떠올랐다. 감정이 메마르고 표현에 인색한 사회, 공동체 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본인의 떳떳함을 위해 아무 기준이라도 붙잡아 하나를 둘로 가르며 편안을 찾는 실정, 그 와중 떨어져 나갔을 정(情)에 대한 것이었다. 

또 상업성만이 제일이라 믿으며 탐구가로서의 관념은 뒷전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물론 세상을 향해 쉼없이 외치고 있을 예술가들은 존재하겠으나 애초 그 방향으로 눈길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류 속 시인과 촌장의 유산을 머리맡에 둬 보는 건 어떨까. 설령 시대의 답이 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개개인의 생채기 난 마음을 치유할 효력은 여전히 굳건하다. 우리가 되찾았고, 앞으로 되찾을 것이 몇 해 전의 전염병 하나만은 아니지 않은가. 좋은 음악 앞에서 결국 하나로 모일 소리의 힘을 믿는다면 분명 후회없는 선택이다. 
신동규(momdk7782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