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과 촌장의 중심축은 하덕규이나 전작 < 푸른 돛 >에서 함춘호의 기타 연주는 전설적이었다. 그들은 가사와 기타라는 두 언어로 1980년대를 꿰뚫는 메시지를 담았다. 이들이 창출한 시너지 효과는 대중에게 시인과 촌장이라는 이름을 알리고 둘의 공작(共作)을 명반 대열에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아쉽게도 < 숲 >에서 촌장은 떠나고 시인 홀로 남았다. 시인과 촌장이라는 팀 이름은 유지되고 있으나 사실상 하덕규가 주도한 앨범이다. 촌장의 빈자리는 이병우, 조동익 등 소위 동아기획 사단이 메웠다. 그 중에서도 조동익이 연주, 편곡, 프로듀스에 모두 참여하며 이전 함춘호 이상의 공을 세웠다.
다양한 기타(어쿠스틱, 나일론)를 사용하며 포크(Folk)라는 장르적 특성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았으나 이를 위시했던 전작과 달리 피아노와 스트링의 역할이 대폭 커졌다.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에서는 소폭이나마 신시사이저가 소리가 등장하고, ‘때’에서는 퍼커션 소리가 편곡의 큰 짜임틀을 마련하는 등 새로운 음악을 향한 실험적 시도가 엿보인다.
음악 지형도의 변화는 내부적으로도 이뤄진다. 깊은 내면에서 단어들을 발굴해 아름답게 빚는 능력은 여전하지만 노래가 표(表)하는 메시지는 뚜렷해졌고, 은유와 상징은 대폭 강화됐다. 가사는 시(詩)―어쩌면 가사의 원형일지도 모를―의 형태에 더욱 가깝고, 사용된 단어들은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어(詩語)다. 이처럼 농후해진 작가주의적 색채는 그를 진정한 ‘시인’으로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자신의 음악적 향방을 기독교 음악(CCM)으로 결정한 뒤 내딛은 첫 족적이라는 점에서도 의의를 갖는다. 이전 가사의 귀결점이 ‘비둘기’라는 메타포로 대표할 수 있는, 시대를 향한 고요한 저항이라면 이제는 “그리스도를 통한 그의 사랑”이다. 촌장의 부재에 더해진 종교귀의라는 그의 개인적 경험이 낱말에 의미를 압축해 넣어 가사는 더욱 단단해졌다.
이러한 정체성을 드러내는 곡은 당연 ‘가시나무’. 젊은 세대는 손을 모아 부르는 조성모의 모습을, 그보다 더 어린 세대는 MBC < 나는 가수다 >에 나와 록(Rock) 사운드를 등에 업고 처절히 부르던 자우림의 모습이 더 친숙할지 모른다. 많은 후배가수들의 리메이크를 통해 전 세대를 아우르며 ‘롱런’하는 곡이다. 그러나 화려한 편곡과 웅장한 무대장치로도 원전(Original)의 아성을 함락하기는 어렵다.
그의 ‘가시나무’는 피아노의 단선율과 옅은 종소리를 통해 노래가 펼쳐질 풍경을 보여준다. 정돈된 사운드가 듣는 이를 겸허하게 만들며 앨범의 몰입도를 단숨에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당신의 쉴 곳 없네’로 시작하는 자기성찰적 독백은 파이프 오르간의 힘을 빌려 종교적 색채를 입은 죄인의 회개로 변한다.
스스로를 ‘죄인’이라 규정하는 감각은 기독교적 세계관에서 출발한다. 이같은 창작자의 세계관은 직접적이진 않지만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밤해워’ 울 정도로(‘새벽’) 끊임없이 번뇌하는 모습과 ‘이젠 그만 돌아오고 싶다고’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호소하는 ‘돌아온 탕아’ 이미지를 통해 도처에서 드러난다. 연약한 인간을 구원하는 건 절대자의 몫이다. 이 존재가 그로 하여금 희망(‘새날’, ‘때’, ‘좋은 나라’)을 담은 선(善)한 노래를 부르게 한다. “이 판에 대한 칭찬을 그에게 돌린다”는 그의 말은 이 앨범이 절대자를 향한 그의 절절하고 환희에 찬 신앙고백임을 증명한다.
음악이 일종의 통로(bridge)가 될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음악이 만든 이와 듣는 이를 연결하고 있다는 믿음. 이들에게 음악이란 창작자의 경험과 고유한 감정이 담긴 소산물이자 응축물이다. 그는 여기에 더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사랑의 통로로서의 노래”를 하겠다고 밝힌다. 그의 다짐으로 음악이 ‘나’와 ‘너’를 이어줄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뿌리 깊은 믿음을 다시 한 번 확인받는다.
-수록곡-
1. 가시나무 [추천]
2. 새벽 [추천]
3. 새털구름
4. 나무
5. 새날
6. 때 [추천]
7. 새봄 나라에서 살던 시원한 바람
8. 좋은 나라
9. 푸른 애벌레의 꿈 [추천]
10. 숲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