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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쉬베놈
2025

by 손민현

2025.10.15

3년 전 ‘딴따라’ 같은 단어 뒤 감춘 우리나라 댄스 음악의 역사와 미학을 발굴하는 진지한 작업을 기억하는가. < 뽕 >의 기원과 미학을 탐구한 프로듀서 250의 프로젝트가 박수받고 쨍한 전자음을 주력으로 삼는 하이퍼 팝이 시장을 점령하자 ‘한국 뽕짝’의 대부 이박사는 미래를 점지한 음악 예언가의 타이틀을 자연스레 얻었다. 동시에 B급 문화, 하이퍼 팝, 최근 음악 소비 방식이 한 데 묶인 이 무언가는 시대가 원하는 콘텐츠가 되었다. 머쉬베놈의 첫 앨범 < 얼 > 등장에 앞선 주변 배경과 맥락이다. 


발음대로 '멋이 밴 놈', 머쉬베놈은 뽕이나 멋을 넘어 그 상위 개념인 ‘얼’로 댄스 가요를 재해석했다. 이박사와의 이유 있는 합작 ‘돌림판’은 음악적으로는 머쉬베놈 랩이 가지는 유쾌함과 이박사의 아이코닉함을 갖춘 엄연한 랩 댄스 음악이자, 문화적으로는 B급과 양질 사이에서의 아슬아슬한 줄타기다. 테크노 연주는 네온사인 빛을, 그리고 과거와 현대를 넘나드는 언어 나열은 듣는 이들의 정신을 앗아간다. 혼미한 사운드, 말 장난, 아이코닉한 추임새 ‘좋아 좋아 좋아’를 듣다보면 어던 의미를 찾지는 못할지언정 둘 사이 공통점인 ‘신명’은 분명 발견하게 될 것이다.


’돌림판’이 한철 재미를 위한 싱글이 아니라는 근거는 이후에 등장한 이름, 거북이와 코요태에서 찾을 수 있다. 머쉬베놈은 달력을 2000년대 초반으로 넘겨 성장기에 추억으로 간직했던 댄스 음악을 그대로 가져왔다. 대중가요에서의 진지한 레트로 탐구 시도가 반갑지만 아쉽게도 첫인사는 어색하다. 랩과 곡 구성에 있어서는 기존 머쉬베놈 스타일과 유사한 후반부와 비교했을 때 디테일이 떨어지고, ‘오랫동안’과 ‘오토매틱’에서는 워낙 보컬 색채가 강렬한 혼성 그룹과의 합작인지라 그의 스타일이 잘 묻어나지 않았다. 


주목할 구간은 ‘띵띵땡땡’ 이후 시작된 후반부다. 정신의 줏대라는 사전적 정의에 맞게 그는 ‘얼’의 다른 면을 선보인다. 신바람 이상의 이 개념어를 표현하기 위해 민족의 토속적인 슬픈 감정으로 이어간 것이다. ‘날다람쥐’는 누군가의 구슬픈 이력서고 ‘오늘날’은 한 래퍼가 그린 한국 현대사며 마지막 트랙 ‘얼’은 눈물이 밀려드는 신파 장송곡이다. 내용은 허상, 어조와 표현이 본질이었던 한 래퍼의 서사가 단순한 재미로 끝나지 않고 놀라운 집중도를 부여할 수 있게 만든 건 바로 ‘한’의 정서다. 


영어와 라임을 섞은 타령과 같은 랩, 판소리를 닮은 추임새, 구수한 낱말선택 등이 혼합된 머쉬베놈의 개성은 탄탄하다. 그러나 이 확고한 토종 민속 스타일 랩을 단순히 소개하는 정규 앨범이라면 이 정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고뇌 끝에 < 얼 >은 댄스 음악에 대한 창의적 관점, 레이지와 라틴 등 외국 장르와 전통을 섞은 자유분방한 크로스오버를 담기로 택했다. 투박할지라도 랩의 울타리를 넘어 문화적 시각에서 조망할 필요성을 획득한 앨범이다.


 - 수록곡 -

1. 돌림판 (Feat. 이박사) [추천]

2. 몰러유

3. 오랫동안 (Feat. 거북이)

4. 오토매틱 (Feat. 코요태)

5. 띵띵땡땡

6. 날다람쥐 [추천]

7. 빠에

8. 오늘날 [추천]

9. 모나리자

10. 얼 [추천]

손민현(sonminhyu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