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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zier
보아(BoA)
2025

by 남강민

2025.10.12

데뷔 후 변하지 않은 거라곤 딱 하나. 멈추지 않는 것. 그가 독보적인 아티스트로 불리는 이유는 영광의 뿌리가 된 수많은 순간보다 쉬지 않고 걸어온 행보에 있다. 등장부터 < Girls On Top >까지의 개척, < Only One >으로 쌓은 정립의 챕터가 아무리 무겁더라도 꾸준히 한발 앞선 발목을 잡을 수는 없었다. 5년 만의 정규작 < Crazier >는 많은 걸 겪어온 지금의 보아를 있는 그대로 포착한 앨범이다.

특유의 채도 높은 표현과 여지를 남기는 해석이 교차한다. 이미 여러 장르를 소화해 온 만큼 펑크(Punk) 시도 자체에 만족하기보다는 관록으로 쓴 통쾌한 가사와 거칠게 다듬은 중저음 보컬로 전에 없던 쾌감을 연출하며 이전 20주년 앨범 속 직선적인 ‘Better’에 대비되는 ‘Crazier’를 전개한다. 주무기인 댄스 팝을 미니멀하게 압축해 색다른 강렬함을 갱신한 ‘Hit you up’과 히트곡 ‘Only one’의 향수에 아련함을 더하는 ‘Love like this’ 등 과거와의 연계 또한 자연스럽다. 새것을 고집하지 않는 여유가 지금의 그를 세운 것이 단순 플레이어로서의 실력만은 아니라는 말에 힘을 싣는다.

안목과 기획을 매끄럽게 연결하는 센스는 그가 여전히 현역인 이유다. ‘Up and down’이 젠지 세대의 감각을 담은 알앤비라면 ‘Like I like’는 제작자로 함께하는 엔시티 위시의 싱그러움마저 풀어낸다. 키링형 앨범과 시네마 클립 티저 등 자칫 과할법한 유행은 음악보다 프로모션에 드러내 효용 없는 소모를 피했고, 그룹 수준의 파트를 완수한 ‘Don’t mind me’로 세대 간 간극이 주는 이질감까지 완만하게 메웠다. 프로듀싱을 겸하며 동향을 짚어내는 감이나 트렌드를 녹여내는 완급조절은 세계관과 콘셉트에 아티스트가 수동적으로 기울 수 있는 K팝 신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단련의 산물이다.

트랙의 내구성으로 지난 시간을 증명한 것과 별개로 앨범을 관통하는 기념비적 서사는 보이지 않는다. 시작을 비롯해 커리어 대부분을 함께해온 이수만과 유영진 등 기존 프로듀서 부재의 영향이겠으나 오히려 보아의 색채는 그 어느 때보다 짙다. 둘 만큼은 아니더라도 그간 아티스트를 완벽히 학습한 기획진의 선택과 자작곡 ‘It takes two’, ‘How could’의 적절한 균형이 만든 울림은 전곡 작사 작곡으로 채운 2015년의 < Kiss My Lips >에 견줄 만하다. 

데뷔 25주년, 그리고 스물 한 장의 정규 앨범. 많은 이가 ‘레전드의 귀환’을 말하지만 언제나처럼 다음을 준비하는 그에게는 귀환보다 귀감이 어울린다. 모처럼 독립된 고유의 분위기가 견고한 만큼 25년을 아우르는 이야기가 없다는 점이 허전하지만 팬송 ‘Clockwise’로 전한 약속처럼 아직 맞이할 날들은 무수하다.​​ 무엇 하나 바뀌지 않은 게 없는 오랜 시간, 매일 새로운 장을 펼쳐내는 K팝에 보아는 당당히 기록을 세웠다. 기념의 무게가 다소 가볍다 한들 다음이 없는 것보다는 백번 낫다.

-수록곡- 
1. Crazier [추천]
2. Healing generation
3. It takes two [추천]
4. Don’t mind me
5. How could [추천]
6. What she wants
7. Up and down 
8. Love like this [추천]
9. Like I like [추천]
10. Hit you up
11. Clockwise
남강민(souththriver1@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