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를 강타한 < Short N’ Sweet >은 사브리나 카펜터의 무명 딱지를 완전히 거둔 기념비적 작품이었다. 대중은 열렬히 환호했고, 생애 첫 빌보드 싱글 차트 정상과 그래미 어워즈를 비롯한 각종 시상식에서 트로피를 끌어안으며 빠른 속도로 싹을 틔우는 데도 성공했다. 그 뒤는 본격 행진의 차례. 십 대부터 시작한 다섯 장의 디스코그래피와 마침내 빛을 본 한 장의 큰 히트, 물리적 시간 여유와 향수를 좇는 방향성까지 개성은 충분하다. 결국 남은 건 호평 세례가 빚어낸 차기작을 향한 군중의 기대와 그 부담을 스스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의 문제였다.
그렇게 한 해 만에 선보인 일곱 번째 정규 앨범 < Man’s Best Friend >는 방식 면에서 영리하다. 전작이 가진 장점이자 단점은 매무새가 정돈된 싱글이 즐비했다는 점이다. 곡마다 서로 다른 풍미가 느껴졌고, 새로웠기에 연결성이 부족할지라도 한데 모여 힘을 발휘하는 종합 선물 세트와 같았다. 직전의 성공 사례를 보아 장르 변화를 주긴 어려운 상황. 1970-80년대 팝의 문법을 기본 삼은 특유의 보컬 톤과 할리우드의 고전을 본뜬 연출만으로는 재차 반향을 일으키긴 어려울 것임을 인지해야 했다. 그러니 그의 초점이 싱글이 아닌 음반으로 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꾸준히 비춰왔던 퀴어 코드와 여성성의 주제를 구체화하고, 당당히 드러내며 작가로서의 폭을 넓힌다. “반려견은 인간의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때 사용하는 관용 표현을 문장상 ‘남성’으로 그대로 병기하는 재치와 위 사항의 연장선에서 선정성 논란이 불거졌던 앨범 커버 등이 그 예시다. 노랫말 또한 혹자에게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노골적인 것도 사실이다. 전체 수록곡 중 차트 순위를 겨냥한 ‘Tears’ 등 세 곡을 제하고 모두 성인 등급을 받았다는 점은 그보다 더한 가사 앞에서 오히려 약하게 와닿는다.
제재는 아무렴 좋다. 그러나 전하고픈 메시지가 제아무리 명징하다 하더라도 이것이 의도한 작품의 형태로 조화롭게 버무려졌는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컨트리와 신스팝, 1980년대 다이애나 로스 풍의 펑크와 디스코, 반세기 전의 소프트 팝과 작금의 피비알앤비(PBR&B), 1990년대를 휘감았던 뉴잭스윙이나 그 이후의 걸스 힙합까지 계속해서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는 있으나 이를 담을 음악 그릇은 제각기 뒤섞인 모습이다. < Short N’ Sweet >과 동일한 눈높이에서 바라보자면 물론 매끄러운 곡도 있긴 하지만 설령 이러한 접근이라면 오히려 내용이 과하다. 결국 균형의 문제인 셈이다.
구조와 소리 간의 밸런스가 서로가 가진 본유의 맛을 가리고 있으나 그럼에도 < Man’s Best Friend >는 현시점에 의미가 있다. 우선 어느 때보다 넉넉했던 환경 속 자신만의 울타리를 지어봤다는 사실은 다음 걸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더불어 그가 지향하는 색채가 여전히 수십 년 전의 그것과 달라지지 않다는 점에서 확고한 영역 굳히기로도 바라볼 수 있겠다. 다만 유사함은 지루함을 낳기 마련이다. 어떤 자극을 가져오더라도 엇비슷한 풍으로 들릴 공산이 크다는 한계가 점차 커진다. < Short N’ Sweet > 이전의 실패 경험만큼이나 성공의 사례도 쌓여야 한다는 현실 속 사브리나 카펜터는 아직 급하다.
-수록곡-
1. Manchild
2. Tears [추천]
3. My man on willpower
4. Sugar talking
5. We almost broke up again last night [추천]
6. Nobody’s son
7. Never getting laid
8. When did you get hot?
9. Go go juice
10. Don't worry I'll make you worry
11. House tour
12. Goodbye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