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서 글을 써야 한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느껴진다. 시작부터 단호하게 경고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10곡, 30분 미만의 러닝 타임 속 까딱거리는 고개를 멈출 구간이 없다. 진중하고 회고적인 전작 < Chromakopia >가 발매된 지 1년이 채 되지 않은 시점, 드디어 모든 가면을 내려놓은 타일러는 많은 무술에서 상대를 타격할 때 힘을 빼라는 조언을 받아들여 정반대의 매력으로 가득한 한 방을 날렸다.
사운드가 중심으로 돌아왔다는 관점에서 지금의 타일러가 잘 다듬은 < Cherry Bomb >같다. 애초에 ‘I’ll take care of you’에서 동명의 본인 곡이 샘플로 사용되었다. 호불호가 극단적으로 갈리는 앨범의 전후를 살펴보자. 날것에 가까웠던 초기 3부작과 4장의 각기 다른 수작을 낸 시기는 그의 이미지와 대표하는 사운드를 어느 정도 정형화했다. 이를 타파하고자 소리 자체에 집중했던 시기처럼 이번에도 동일한 전략을 활용한다. 정도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여러 요소들을 깔끔하게 정리하지 않고 킥이나 보컬을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세부적인 방식에서도 닮아 있다.
분홍색 복면의 발걸음이 최고의 프로듀서를 목표로 아예 새로운 지점을 향했다면 이번엔 색채가 뚜렷한 그의 세계 모두를 포용한다. 바퀴벌레를 삼키던 발칙함이 녹아 있는 ‘Sugar on my tougue’는 음침했던 ‘Yonkers’ 신시사이저를 댄스 버전으로 순화한 듯 느껴지고 보들레르 경의 파괴적인 랩 트랙 ‘Lemonhead’의 모습은 연이어 몰아치는 ‘Mommanem‘과 ‘Stop playing with me’에서 발현된다. 타일러 특유의 부드럽고 여유로운 감성이 담긴 ‘Sucka free’와 ‘Ring ring ring’ 역시 팬이라면 누구나 반길 만한 트랙이다. 스토리텔링에 몰두하기보다 지금 당장 즐겁다고 느끼는 감각에 집중한 결과, 내재하던 다양한 매력이 한꺼번에 발산된다.
의도했든 아니든 오랜 찬사로 인한 압박감을 해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뛰어난 완성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다. 과거의 흐름을 현재에 적용하면 또 다른 변곡점을 기대해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위상을 만든 시작점 < Flower Boy >가 과도기의 다음 지점이었기 때문이다. 섣부른 기대감을 접어두더라도 괜찮다. < Don’t Tap The Glass >는 그 자체로 타일러의 디스코그래피에 기분 좋은 쉼표다.
-수록곡-
1. Big poe [추천]
2. Sugar on my tongue
3. Sucka free [추천]
4. Mommanem [추천]
5. Stop playing with me
6. Ring ring ring
7. Don’t tap that glass / Tweakin’ [추천]
8. Don’t you worry baby (Feat. Madison McFerrin)
9. I’ll take care of you (Feat. Yebba)
10. Tell me what it 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