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겁게 내려앉은 공기의 암실에 두 사내가 눈을 치켜뜨고 있다. 한 사람은 성경을 든 채, 다른 사람은 하얀 가루를 든 채. 오랜 세월을 지나 조우한 형제 듀오 클립스는 이토록 이율배반적인 가치를 양손에 들고 나아간다. 그간 맬리스가 이름 앞에 ‘No’를 덧붙이고 신을 찾으며 잠시 멀어지기도 했으나 표방하는 정신은 여전하다. 날카롭게 벼려낸 가사가 빼곡히 들어찬 힙합 음반을 만들 것, 이 목표를 위해 패션 산업에 투신했던 퍼렐 윌리엄스가 다시금 지휘자로 나섰다. 지난날 넵튠스로 호흡을 맞췄던 채드 휴고와 갈라섰음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모습이다.
특유의 808 베이스와 샘플링으로 주조한 비트에 탄탄한 래핑으로 답했다. ‘So be it’의 음산한 아랍 루프와 역재생한 드럼 위에서 적을 공격하는 푸샤 티도 훌륭하지만 앨범 전반에서 더 인상적인 순간을 선사한 쪽은 형 맬리스다. 특히 아카펠라 랩으로 몰입감을 조성한 ‘M.T.B.T.T.F.’와 신시사이저 변주를 배경으로 순식간에 기류를 뒤바꾼 ‘So far ahead’가 압권이다. 켄드릭 라마와 타일러 더 크리에이터라는 현시대 힙합의 아이콘 역시 명성에 걸맞은 버스(verse)로 응답했으며 비트 스위치에 맞춰 등장해 무르익은 기량을 뽐낸 전설 나스는 후반부의 하이라이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참으로 완벽한 캐스팅이다.
종교와 마약이라는 두 주제를 축으로 온갖 비유를 버무린 고도의 작법은 < Hell Hath No Fury >의 영광을 재현한다. 수많은 레퍼런스를 자연스럽게 엮은 ‘Chains & whips’와 은밀한 거래의 현장을 묘사하는 ‘F.I.C.O.’ 등 음반의 어느 지점을 재생하든 뛰어난 가사를 단박에 찾을 수 있다. 코크 랩(Coke Rap)이 일종의 기믹처럼 여겨지는 현시점, 부모님을 추모하는 ‘The birds don’t sing’과 역경을 이겨낸 현재를 그린 ‘By the grace of God’을 양 끝에 배치해 구성을 나눈다는 선택도 유효했다. 이미 2년 전 보이스 오브 파이어와 ‘Joy (Unspeakable)’로 가스펠을 시도했던 퍼렐이지만 이를 앨범 단위로 융화시키기란 고된 일이기에 내린 결단이었고, 이는 결국 성공으로 돌아왔다.
훌륭한 랩 뮤직의 조건은 일견 간단하다. 좋은 비트에 좋은 래핑을 얹을 것. 이 단순하고도 까다로운 과업은 트리오뿐만 아니라 정도(正道)를 걷기로 정평 난 이들의 합류에 힘입어 끝내 달성되었다. 점차 주류에서 밀려나던 갱스터 랩과 원류에 충실한 퍼포먼스를 통해 이뤄낸 성과다. 20년 전의 명성을 기억하는 이든, 근래 장르에 입문한 이든 이처럼 뿌리 깊은 본질을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이것은 문화적으로 부적절합니다(This is culturally inappropriate)’ – 역설적이게도, < Let God Sort Em Out >은 이 문화가 그토록 열렬히 추종해 왔던 가치에 새로이 숨을 불어넣었다.
-수록곡-
1. The birds don’t sing (Feat. John Legend & Voice of Fire) [추천]
2. Chains & whips (Feat. Kendrick Lamar) [추천]
3. P.O.V. (Feat. Tyler, the Creator)
4. So be it [추천]
5. Ace trumpets
6. All things considered (Feat. Pharrell Williams & The-Dream)
7. M.T.B.T.T.F. [추천]
8. E.B.I.T.D.A. (Feat. Pharrell Williams)
9. F.I.C.O. (Feat. Stove God Cooks) [추천]
10. Inglorious bastards (Feat. Ab-Liva)
11. So far ahead (Feat. Pharrell Williams)
12. Let God sort em out/Chandeliers (Feat. Nas)
13. By the grace of God (Feat. Pharrell William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