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색, 명도, 채도, 색상, 어감 따위의 미묘한 차이 또는 그런 차이에서 오는 느낌이나 인상. 프랑스어 뉘앙스의 정의다. 태어날 때부터 그 의미를 체득한 오케이루는 단어의 뜻을 앨범 전체에 투과한다. 고요한 앰비언트 속 반짝이는 신시사이저에서 느껴지는 인고의 시간. 2020년 믹스테이프 < Galore >의 원석은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지며 데뷔작 < Choke Enough >에서 진정한 보석으로 거듭났다.
오케이루의 결은 실제화된 전자 악기에서 차별점을 가진다. 이는 피아노와 첼로를 전공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실물 악기를 다룰 때 항상 같은 강도로 연주할 수 없다는 특성을 자연스럽게 익힌 경험이 가상 악기에도 적용되어 유사한 악센트를 형성한다. 마지막 두 트랙에서는 각자의 뉘앙스가 함께 발현된다. ‘Want to wanna come back’에선 신시사이저가, ‘Blade bird’에선 어쿠스틱 기타가 중심에 위치하며 서로의 조화를 구현한다. 충돌할 듯 퍼즐처럼 빈 곳을 채우는 두 악기의 융합은 풍성한 공간감을 십분 활용한다.
전자 악기의 실제화를 다른 관점으로 바라보면 사운드 질감 형성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의미다. 트랜스 기반 곡 ‘Ict’에서는 오르간이 떠오르던 ‘Galore’나 ‘Unearth me’를 트럼펫으로 새롭게 재현한다. 라틴 음악의 뎀 보우 리듬을 드럼 없이 구사한 초반부와 그 위를 관악기들이 유유자적하는 ‘Obvious’는 우아하고 정제된 피겨 선수들과의 라이브에 가장 적합한 곡이 되었다. 고조된 흐름을 환기한 후 번쩍이는 섬광들이 가득한 ‘Take me by the hand’까지 실연자에 가까운 태도로 만들어진 모든 곡은 청각 세포의 새로운 부분을 자극한다.
지향점이 뚜렷하기에 궤도를 크게 수정하지 않고 중심을 견고하게 유지한다. 확고한 개성의 피처링진은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 곡에 녹아들어 조성된 분위기를 저해하지 않는다. 단순히 곡 내부에서의 섬세함을 넘어 앨범을 조율할 수 있는 시야도 갖춘 것이다.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에도 적용된다. 각각 캐롤라인 폴라첵과 찰리 XCX의 프로듀서 대니 앨 할(Danny L Harle)과 에이 지 쿡(A. G. Cook)이 일부 가세했지만 의존하지는 않았다. 유명한 이름에 기대는 대신 시작부터 함께한 프로듀서 케이시 엠큐(Casey MQ)가 그대로 총괄 프로듀싱을 맡으며 연속성을 유지한다. 명확한 기조에 한 방울 첨가된 참여진의 색깔로 이전보다 청자의 범위를 넓힌다.
새로 접한 이들에겐 신선한 경험을, 5년을 기다린 이들에겐 한 단계 발전된 작품을 선사했다. 한 문장으로 쉽게 서술했지만 이는 실로 어려운 작업이다. 특히 자신의 방향을 관철하지 않았기에 더욱 의미 있다. 숨을 쉬기 힘들 만큼의 응축 과정이 있었기에 < Choke Enough >는 자신의 세계를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확장하는 데 성공했다.
-수록곡-
1. Endless [추천]
2. Thank you for recording
3. Family and friends
4. Obvious [추천]
5. Ict [추천]
6. Choke enough [추천]
7. (;´༎ຶٹ༎ຶ`)
8. Take me by the hand (Feat. Bladee) [추천]
9. Plague dogs
10. Forces
11. Harvest sky (Feat. underscores)
12. Want to wanna come back [추천]
13. Blade bi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