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키 인터뷰

하이키(H1-KEY)

by 한성현

2025.08.05

어느덧 2년 반 전의 추억을 돌이켜 본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가 콘크리트처럼 견고한 차트의 벽을 뚫고 올라간 추운 겨울,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한 노래에 사람들의 마음이 동했고 이즘의 '2023 올해의 가요 싱글' 선정과 더불어 여러 매체에서도 하이키를 새로운 감동 서사의 주인공으로 지목했다. 좋은 음악과 포기하지 않는 집념이 결국 빛을 보리라는 믿음이 다시금 꽃을 피우는 순간이었다.


중소 기획사에서는 기적처럼 바라는 역주행을 하이키는 두 번이나 경험하는 중이다. < Lovestruck >의 타이틀곡 '여름이었다'가 입소문을 타며 K팝의 새로운 여름 앤썸 플레이리스트에 들어간 것. 덕분에 거센 장마와 극심한 폭염으로 얼룩졌음에도 네 멤버는 올해 미소 가득한 여름을 보내는 중이다. 공식적인 음악방송 일정 종료 직후 여운을 간직한 하이키를 이즘이 직접 만나봤다. 무더위에도 밝은 표정으로 그간의 커리어 이야기와 향후 활동에 대한 기대까지 솔직하게 말하는 이들을 보며 노력하는 자에게 걸맞는 행운이 찾아왔음을 느꼈다.



왼쪽부터 리이나, 옐, 휘서, 서이


늘 그래왔듯 이번 EP < Lovestruck > 수록곡도 스타일이 다양하다. 타이틀곡 ‘여름이었다’와 첫 번째 트랙 ‘Good for u’ 모두 록 사운드를 택했고 ‘내 이름이 바다였으면 해’는 1980년대의 가요 같다.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앨범에 대한 소회를 묻고 싶다.

리이나: 요즘 록 음악에 대한 소비가 많이 늘어나지 않았나. 그런 추세와 유행을 따라가는 방향성이었다. 그러면서도 공감을 이끌어내는 가사와 기억하기 쉬운 멜로디로 요약할 수 있는 하이키의 색을 녹여낸 곡이라 마음에 든다.


옐: 전에는 가사 전달을 중점에 뒀는데 이번에는 소위 ‘록적인’ 보컬을 담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보컬 선생님과도 시원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발성 연습을 많이 하라고 했다. ‘Good for u’는 내가 특히 좋아하는 곡이다. 들으면서 이번 타이틀곡이 되겠다 혹은 다음 활동 곡이 되겠다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그래서 요즘에 그런 록 스타일에 빠져 있다.


서이: 타이틀을 결정하기 전부터 EP를 녹음하는 바람에 여러 곡들을 동시에 익혀야 했다. 특히 ‘여름이었다’는 템포도 빠르고 음역대도 높아서 테크닉에 노력을 기울였다. 다행히 우리가 했던 음악적인 기반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어렵진 않았다.


9월 말에 ‘2025 Asia Top Artist Festival’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일반적인 음악방송 무대와 다르게 보여줄 수 있는 점은 무엇인가.

리이나: 감사하게도 크고 작은 페스티벌에 섭외를 받아 경험을 좀 쌓았다. 밴드 음악 성향이 짙은 우리 노래는 규모가 커지면 커질수록 신나서 우리가 더 뛰어다닌다. 공간 활용을 알차게 할 수 있는 것이 좋다.




하이키 음악의 차별점은 명확한 발음에서 비롯한 명확한 가사 표현이다. 평소에도 디렉팅에서 이 부분을 신경 쓰는가?

서이: 나는 비교적으로 트렌디한 음색 위주의 보컬이다. 우리 음악의 특징이 가사를 통한 대중과의 소통이라 작업할 때 그 쪽에 신경을 많이 쓴다.


휘서: 발음도 그렇지만 감정 표현에도 공을 들인다. 이건 일종의 연기라고 생각한다. 가사 전달력이 좋게 느껴졌다면 그건 우리의 연기력이 좋다는 의미 아닐까?


‘연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지점이라면 ‘뜨거워지자’의 ‘자기야 사랑해’ 파트 아닌가? 감정을 포착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서이: 곡을 쓴 홍지상 작곡가가 ‘지겨우면서도 권태로운 느낌’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그래서 눈을 게슴츠레 뜨고 부르면 좋겠다는 말을 했던 것도 기억난다. 이런 세세한 조언을 들으면서 가사의 무드가 단순한 지루함과는 조금 다른 결이라는 것에 유의했다. 특히 다음 가사가 옐의 ‘어, 나도’인데 정확히는 ‘어’까지 내가 한다. 사랑에 확인이 필요한 상황으로 보면 된다.


옐: 나는 관계를 끝내겠다는 결심한 것처럼 녹음해달라는 지도를 받았다. 어떻게 보면 정말 평범한 대답인데 상처가 될 수도 있는 말이지 않나. 식어버린 연인 관계를 열심히 상상했다.


노래를 부르는 입장에서 서로 보컬에 어떤 부분을 가장 신경을 쓰는지.

서이: 일단 감정에 집중한다. 같은 노래를 불러도 기술적인 측면에 집중할 때와 테크닉은 조금 미흡해도 감정을 많이 실었을 때는 후자가 훨씬 듣기 좋다고 생각한다. 연습 단계에서는 전자에 신경을 썼지만 데뷔하고 귀가 열리면서 표현하고 싶은 게 많아지다 보니 감정을 어떻게 더 넣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옐: 나는 감정을 많이 타는 목소리라 왔다 갔다가 좀 심해서 깔끔하게 감정을 나타내려고 더 노력한다. 최대한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녹음에 임한다.


휘서: 음색에 신경을 많이 쓴다. 호흡량 등에 따라 워낙 휙휙 바뀌기 때문에 노래를 듣고 멜로디와 음의 높이, 가사를 다 고려해서 어떻게 해야 음색이 가장 예쁘게 나올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리이나: 듣는 사람이 편안한지가 최우선이다. 호흡이나 발음 등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최대한 거슬림이 없게 하는 것을 주안점으로 삼는다. 모니터링 때도 모난 곳이 없는지를 많이 살핀다.


‘뜨거워지자’의 연출된 표현과는 반대로 하이키 노래 가사 중 정말 본인들의 이야기라고 느낀 것이 있을까?

옐: 나는 데뷔곡 ‘Athletic girl’이 생각난다. 콘셉트를 맞추기 위해 데뷔 전에 정말 운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런 시간이 있다 보니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 정말 내가 그런 ‘운동하는 여성’처럼 느껴졌다.


휘서: 역시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다. 사실 처음 데모는 길이도 훨씬 길었고 템포도 느려서 걸그룹에게 잘 맞는 곡일까 싶었다. 그런데 편곡을 통해서 키가 높아지고 직접 가사를 보면서 녹음하다 보니까 우리의 진정성을 담을 수 있었다. ‘악착같이 살잖아’도 그렇고 잘 버텨냈다는 전체적인 내용이 딱 하이키의 모습 같아서 당시 멤버들과 서로 공감이 많이 된다는 얘기를 했을 정도다. 작사를 해준 데이식스의 영케이 선배님이 우리를 만났을 때 노래를 잘 불러줘서 고맙다고 말해줬다.


‘악착같이 살잖아’는 정말 아이돌 음악에서 보기 힘든 가사다. 멤버들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이 반향이 있을 거라 예견했나?

서이: 솔직히 모 아니면 도라고 생각했다. 표현 자체도 요즘은 흔하진 않았고 어떻게 보면 날카롭기도 하다. 잘되면 공감을 정말 많이 받겠지만 반대로 익숙하지 않아서 대중에게 잘 다가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건물 사이에 피어난 장미’의 기적적인 역주행 이후 심적인 변화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리이나: 가수 데뷔 후에 우리가 사랑받을 수 있을지, 우리 노래를 사람들이 들어줄까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건사피장’이 잘되면서 내 목소리도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모르는 사람의 삶에도 들어갈 수 있는 힘을 가졌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자신감을 얻을 수 있던 계기다.


옐: ‘건사피장’이 다음도 이에 못지않게 잘 해야 한다는 약간의 부담감이 있었다. 이번 ‘여름이었다’가 좋은 반응을 모으면서 우리가 계속해서 대중에게 더 다가갈 수 있구나 하는 용기를 가졌다. 앞으로도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2024년 초 발매한 싱글 ‘Thinkin’ about you’는 부드러운 알앤비 스타일에 전체 영어 가사라 하이키 스타일과 많이 달랐다. 이 노래는 접근을 어떻게 취했는지.

서이: 확실히 한글과 영어가 발음 위치부터 차이가 많다. 한국어는 앞쪽에서, 영어는 목 뒤에서 소리를 내는 언어라 그런 면에 신경을 썼다. 그래도 연습생 시절에 해외 음악을 많이 불러봐서 크게 힘들진 않았다. 개인적으로 힙합이나 알앤비를 좋아하고 최근에도 조니 스팀슨처럼 그루브를 지니면서도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분위기의 음악을 듣는 편이라 덜 어려웠던 것 같다.


옐은 평소 부드러운 목소리와 달리 랩 파트를 맡을 때는 단단한 음색이 두드러진다. 보컬과 랩의 온도차에는 어떻게 적응하는가?

옐: 둘의 발성 자체가 많이 다르다. 보컬에는 감정 전달에 힘을 쓴다면 랩은 접지를 많이 하는 식이다. 음악에 랩 파트가 많지 않아서 이따금 갈피를 못 잡을 때가 있다. 그래서 연습을 꾸준히 하고 있다. 힙합 페스티벌도 가본 적이 있을 정도로 힙합을 좋아해서 그런 멋있는 곡도 해보고 싶다. 휘서: 옐의 말처럼 랩이 들어가고 퍼포먼스의 측면에서도 걸크러시로 멋지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앞으로 해보고 싶다. 연습생 때 그런 음악을 많이 불러서 가끔 그런 콘셉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다.


리이나와 휘서는 오디션/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연 경험이 있다. 거기서 배운 점은 무엇인가.

리이나: 17~18살 때 < 프로듀스48 >에 참가했다. 너무 어릴 때라 뭣도 모르고 새벽 4시, 5시 끝까지 남아서 연습을 했는데 그때 컨디션 관리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한편으로는 내가 이만큼 열심히 할 수 있구나 하고 내 한계치를 시험한 것 같다. 방송과 촬영이 돌아가는 방식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도 그때 친분을 좀 쌓아서 조유리나 르세라핌의 김채원, 허윤진 등과 만나면 항상 반갑게 인사한다.


휘서: 나는 데뷔 후에 < 퀸덤 퍼즐 >에 리이나 언니와 같이 출연했다. 연습생 시간이 워낙 길다 보니 보여주고 싶은 것을 많이 쌓아두고 있었는데 짧은 기간 동안 열심히 준비해서 내 여러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정말 신나고 재밌었다. 프로그램 끝나고도 ‘또 하고 싶다’는 말을 하니까 나 같은 사람을 처음 봤다고 기사까지 나더라. 정말 하나도 안 힘들었다.


리이나: 나로서는 이해가 안 된다. 너무 힘들던데. (웃음)




각자 아이돌의 꿈을 꾸게 한 모델은 누구인가?

서이: 매일같이 아이비 선배님 무대를 보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고 벽에 비밀 펜으로 가사를 쓸 정도로 좋아했다. 한 번에 시선을 확 모으고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모습이 정말 엄청난 선배님이다. 나도 저렇게 다들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 가수로의 첫 발걸음이었다.


휘서: 내가 중학생 때 데뷔했던 블랙핑크 선배님들의 음악에 강하게 꽂혔다. 특히 로제 선배님을 존경한다. 가사 표현만 보더라도 음악적인 생각과 깊이가 남다른 사람이라 나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다.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고 동물을 사랑하는 로제 선배님이 좋다. (웃음)


옐: 소녀시대와 포미닛 선배님들을 보면서 처음 아이돌의 꿈을 꾼 것이 시작이다. 그 후에는 이효리 선배님을 보면서 나도 저렇게 크고 싶다는 마음을 먹었다.


리이나: 소녀시대, 카라, 수지 등 좋아하는 분들이 정말 많아서 롤모델이 매일 바뀌었다. 특히 소녀시대 선배님은 인터넷에 ‘Kissing you’, ‘Gee’ 뮤직비디오를 봤던 기억도 나고 동방신기 선배님은 뉴스에서 출국할 때 공항이 마비가 되었다는 내용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한 마음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마지막은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멤버 각자의 인생 곡을 뽑아달라.

옐: 찰리 XCX의 ‘360’. 한창 자신감이 떨어졌던 시기에 이 노래를 듣고 마음가짐이 확 바뀌었다. 가사도 그렇고 들을 때마다 위축된 신영이의 모습에서 모든 걸 떨쳐낸 옐의 모습으로 변하는 기분이다. 에너지가 필요할 때마다 듣는다.


서이: 듣고 나서 정말 많이 울었던 아리아나 그란데의 ‘Needy’를 고르겠다. 평소 음악을 들을 때 가사에 집중하는데 ‘Needy’는 인트로를 듣자마자 노래에 완전히 몰입했다. 멜로디만으로 나를 움직이는 노래다. 평소 성격상 감정을 잘 안 표현하는 편인데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가장 솔직한 내가 된다.


휘서: 딱 하나 뽑기는 어렵지만 당장은 로제 선배님의 ‘Toxic till the end’가 생각난다. 부를 때마다 즐겁기도 하고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느껴지는 무언가가 있다.


리이나: 너무 어려운데 두 개도 가능한가? (웃음) 첫 번째는 내 롤모델인 소녀시대 선배님의 ‘다시 만난 세계’다. 어디를 가나 이 노래를 불렀을 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 적이 없었던 내 오디션 필승 곡이다. 이 노래 덕분에 연습생을 거쳐 가수를 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프랭키 밸리의 ‘Can’t take my eyes off you’. 정말 자주 듣는 곡으로 어떤 일을 하든지 이 노래만 있다면 온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언제나 사랑받고 있는 기분을 들게 하는 마법 같은 곡이다.




진행: 소승근, 손민현, 신동규, 임동엽, 한성현

정리: 한성현

사진: 신동규

한성현(hansh9906@naver.com)